그리스도를 누림
영적성장과 성숙
2010-04-22 , 조회 (353)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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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누림

 

Ⅰ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누림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하나님을 우리의 누림으로 아는 합당한 지식이 참으로 부족하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많은 것들을 들을 수 있지만,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 전체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우리의 누림이심을 보여 준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또한 그분의 충만을 소유하고 계신다(엡3:19). 그분은 우리가 누리기에 충만하시다. 그분의 충만은 그리스도의 풍성의 표현이며, 그리스도의 실제는 영 안에 있다. 우리는 말씀의 계시로 인해 이것을 안다. 그리스도의 풍성은 말씀 안에 계시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우리 영 안에서 하나님을 우리의 누림으로 인식할 수 있다(요4:24).

 

 

 

 

1. 구약 안에서 주님을 누림

 

 

 

 

하나님은 자신을 사람이 먹을 수 있는 생명나무로 제시하셨으며(창2:7-9), 어린양으로(출12:4), 무교병과 쓴 나물로(출12:8), 만나와(16:14-15), 생수(17:6)로 제시했다. 또한 좋은 땅에서는 그 땅의 풍성한 소산물로(신8:8-9), 성막 안의 모든 제물들로(레6:8-7:34)로 제시된다. 시편 23편은 주님이 우리의 목자이심을 말하며,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잔치상으로 누리는 것을 말한다. 34편은 우리가 주님을 맛볼 수 있음을 말하며, 36편은 주의 집의 살진 것과 기쁨의 강을 누리고 마실 수 있음을 말한다. 또한 예레미야 17장은 우리가 물가에 심겨진 나무임을 말한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누림이 되는 하나님을 말한다.

 

 

 

 

2. 신약 안에서 주님을 누림

 

 

 

 

마태복음의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떡 부스러기(15:21-28)와 누가복음 15장의 살진 송아지, 요한복음의 성막(1:14), 어린 양(29), 사다리(51), 생수(4:14), 생명의 떡(6:35), 빛(8:12), 길과 실제와 생명(14:6), 문(10:9), 그리고 목자(11)이시다. 고린도 전서의 유월절과 무교병(5:7-8), 만나와 생수(10:3-4), 주님의 상(14-22), 베드로 전서에서의 말씀의 젖(2:2), 계시록에서 생명나무(2:7), 감추인 만나(2:17), 잔치(3:20), 혼인 잔치(19:7-9), 마지막으로 생수와 자라는 생명나무(22:1-2)가 있다. 이 모든 것은 우리의 누림이신 하나님을 말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이러한 관점으로 성경을 읽고 연구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어떻게 하나님이 우리의 누림이신가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그분을 먼저 누려야 한다. 그럴 때 참된 경배가 있고 섬김이 있다. 우리는 우리의 누림이신 하나님의 항목들과 그분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알아야 한다.

 

 

 

Ⅱ 하나님의 충만과 그리스도의 풍성

 

 

 

1. 충만과 풍성의 차이

 

 

 

하나님은 사랑과 빛과 거룩과 의이시다. 하나님은 또한 생명, 능력, 지혜, 긍휼, 인자, 은혜, 평강, 신실함, 인내, 기쁨, 영광 구원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소망, 존귀, 영광, 아름다움이시다. 그분은 풍성의 하나님이시다. 풍성에서 충만이 산출된다. 건강한 미국 남자는 미국의 충만인데, 이는 그가 미국의 모든 풍성을 먹고 소화하였기 때문이다. 에베소서 1장 23절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그리스도의 충만이라고 말한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을 누림으로 그리스도의 충만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풍성을 누려 마침내 충만이 된다. 풍성은 내용이요 충만은 나타남이자 표현이다. 충만은 모든 풍성의 표현이며 모든 풍성은 충만의 내용이다. 풍성은 내용이며, 충만은 표현이 있는 내용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만으로부터 풍성을 받는다. 풍성과 충만의 차이는 물컵으로 예시될 수 있다. 물이 들어 있는 컵은 물의 풍성을 가지고 있지만, 이 풍성은 물이 흘러넘치도록 컵에 채워질 때까지는 볼 수 없다. 우리가 받는 것은 충만이 아닌 내용이지만, 우리는 충만에서 나온 것을, 즉 충만으로부터 나온 것을 받는다.

 

 

 

 

하나님의 어떠하심의 모든 항목들은 하나님의 풍성이며, 이 모든 항목들은 충만을 산출한다. 그리스도는 이 충만을 받아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에 참예한다. 그럴 때 그리스도의 내용이 된 이 풍성은 그분의 충만이 되며, 그리스도의 이 충만으로부터 우리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받는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풍성으로 채워질 때, 우리는 그리스도의 충만이 된다. 우리는 충만을 받지 않는다. 대신 충만으로부터 우리는 풍성을 받는다. 그래서 그분의 충만으로부터 우리 모두는 충만 위에 충만이 아닌 은혜 위에 은혜를 받는다. 성령에 의해 우리의 속사람이 강건해질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채워지도록 우리 존재의 각 부분에 그분의 집을 만드실 수 있다(엡3:16-19)

 

 

 

 

2. 그리스도의 풍성

 

 

 

 

성경에 있는 그리스도의 풍성의 항목들은 하나님의 항목들보다 훨씬 더 많다. 하나님의 모든 어떠하심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문이라거나 어린양이라거나 제물들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리스고는 문이시며(요10:9), 어린양이시며(1:29), 모든 제물들의 실제이시다(히10:5-10).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또한 온전한 사람이시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성육신의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분께는 십자가에 못박히심과 부활과 승천의 요소들이 있다. 그리스도는 또한 길이시다(요14:6). 그리스도는 우리가 하나님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실 뿐 아니라 또한 우리가 사는 길이시다. 요한복음 10장은 그리스도께서 문이심을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구약의 양들을 보호하시기 위한, 즉 보호 안에 있게 하는 유대교 안으로 들어가는 문이셨다. 그리스도는 또한 우리가 어떠한 종교의 우리에서 나와 풍성한 초장이신 그분 자신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시다.

 

 

전에 이 종교는 우리의 보호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 그것은 하나의 굴레가 되었다. 그때 그리스도는 우리를 종교의 굴레로부터 해방하여 그분이 우리의 초장이되실 수 있도록 문이 되셨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누리고 있다면 그분은 우리에게 문이시고 초장이시며, 우리는 우리밖에 있다. 그리스도가 없다면, 우리는 우리 안에 갇혀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누림(3) - 말씀과 영, 자아부인과 영의 훈련

[말씀과 영을 통해 그리스도의 풍성들을 누림]

 

 

 

 

1. 요한복음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풍성들

 

 

 

 

1장 -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1), 성막, 하나님의 독생자(14), 하나님의 어린양(29), 메시야

 

(41), 이스라엘의 왕(49), 사다리이신 인자(51)

 

2장 - 성전(21)

 

 

3장 - 놋뱀(14), 신랑(29)

 

4장 - 생수의 샘(14)

 

5장 - 종교, 곧 유대교의 대체

 

6장 - 생명의 떡(35)

 

7장 - 초막절

 

8장 - 빛(12), 나는 …이다(24,28,58)

 

10장 - 문(9), 목자(11)

 

11장 - 부활과 생명(25)

 

12장 - 밀알(24)

 

13장 - 발 씻기심

 

14장 - 길, 진리, 생명(6), 실제의 영(17)

 

15장 - 포도나무(1)

 

20장 - 생명의 호흡(22)

 

 

 

 

2. 말씀과 영

 

 

 

 

요한복음의 처음은 말씀이고 마지막은 생명의 호흡이다. 생명의 호흡은 실제의 영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풍성들이 모든 항목을 누리려 한다면, 우리는 말씀과 영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은 모든 풍성이 말씀 안에 있고, 그 말씀은 요한복음 시작에 있으며, 그 영은 요한복음 끝에 있기 때문이다. 외적으로 우리는 말씀을 가지고 있으며, 내적으로 우리는 영을 갖고 있다. 바깥의 말씀은 안의 영이다. 본래 그분은 우리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신 말씀이었다. 이제 그분은 우리 안의 영이시다. 우리가 손에 말씀을 갖고 있고 우리 영(spirit)에 그 영(Spirit)을 소유하고 있음을 인해 주님을 찬양하자.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을 누리기 위해 우리는 밖으로는 그 말씀을, 안으로는 그 영을 접촉해야 한다.

 

 

 

 

 

 

[자아를 부인하고 영을 훈련함으로 그리스도를 누림]

 

 

 

 

1. 말씀과 영을 통해 그리스도의 풍성들을 누림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영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누림이 되시고 우리에게 모든 것 되심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말씀이신 그분의 아들 안에 표현되고 체현되신다. 어떤 사상이 말로 표현될 때, 그 사상은 체현된다. 우리의 말은 우리의 관념을 표현하며, 우리의 추상적인 사상의 구체적인 체현이다. 우리에게 모든 것으로 우리의 누림이 되시고자 하시는 바로 그 하나님이 그분의 아들 안에 표현되고 체현된다. 육신이 되신 말씀이신 그 아들은 삼십 삼년 반 동안 땅위에 서 하나님의 나타남이셨다. 그런 다음, 그분은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하셨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그분은 육신에서 영으로 변화되셨다. 그분은 생명 주는 영이 되셨으며, 생명을 주는 이 영은 우리 안으로 불어넣어진 생명의 호흡이다.

 

 

오늘 그리스도는 말씀이실 뿐 아니라 그 영이시다. 그분은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말씀이시며, 우리가 깨닫고, 누리고, 체험할 수 있는 그 영이시다. 그래서 말씀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영 안에서 깨달아져야 한다.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읽고 영을 접촉하는가를 배워야 한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들을 알 수 있다. 영을 통해 우리는 말씀 안에 계시된 그리스도의 모든 풍성들을 깨닫고 체험할 수 있다.

 

 

 

 

2. 그리스도를 체험하고 누리는 길

 

 

 

 

요한복음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표현되고 체현되신 것과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참예하고 누릴 수 있도록 영으로서 실제가 되셨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요4:23, 24) 때문에 그분의 모든 어떠하심은 영 안에 있다. 비록 하나님이 많은 항목이실지라도, 그분은 한 실질이시다. 하나님은 빛이시지만, 이 빛의 실질은 영이다. 하나님은 생명이시지만, 이 생명의 실질은 영이다.

 

 

우리가 그분을 접촉하고, 경배하고, 누리고, 체험하려 한다면, 우리는 우리 영 안에서 이러한 것들을 해야 한다. 먼저 우리 영이 거듭나야 하며, 그 다음 우리가 하나님을 접촉할 수 있도록 우리 영을 훈련해야 한다. 요한복음은 또한 우리의 혼을 미워하고, 우리의 혼을 잃어야 함을 말한다(요12:25). 이것은 영과 혼의 큰 차이를 보여 준다. 영은 거듭나야 하고(요3:6), 주님을 접촉하도록 훈련되어야 하지만, 혼은 잃어버린 바 되고, 부인되어야 한다. 이것은 삼일 하나님을 누리는 길을 보여 준다. 우리는 우리 영을 사용하고 혼을 부인해야 한다. 내적인 방식으로 주님을 따르기 위해 우리 영의 내적 느낌을 주의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누림(4) - 주님을 누리기 위해 마음을 훈련함

* 주님을 누리기 위해 마음을 훈련함

 

 

 

 

1. 우리 마음에서 우리의 누림을 위한 영이신 그리스도

 

 

 

 

우리는 우리 마음에서의 그 영의 움직이심을 보아야 한다. 갈라디아서 4장 6절은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고 말하며, 에베소서 3장 17절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그분의 집을 만들고 계신다고 말하며, 고린도 후서 4장 6절은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에 빛을 비추시는 분임을 말한다. 이 구절들은 그 영이 우리 마음에서 움직이고 계심을 말한다. 그 영은 우리의 누림을 위해 계시므로, 그분은 우리 마음에 관련되신다. 로마서 5장 5절은 우리가 그 영을 누리는 것이 마음 속의 사랑의 문제임을 보여 준다. 그 영의 역사하심은 우리 영 안에 있지만, 우리의 누림을 위한 그 영은 우리 마음에 있다. 우리의 영은 누리는 기관이 아니라 역사하는 기관이다. 누리는 기관은 마음이다.

 

 

그래서, 영은 우리의 마음이 그분을 누리도록 하나님을 영접하고 접촉하기 위해 역사하는 기관이다. 우리는 우리 영으로 하나님을 접촉하지만, 우리의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하고 누린다. 우리는 우리가 마음으로 그분을 사랑하고 마음의 모든 부분을 차지하시도록 그분께 입지를 드리기 전에는 그분을 누릴 수 없다. 그럴 때 우리는 그분을 누릴 것이다. 마가복음 12장 30절은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라고 말한다. 마음은 혼과 생각을 포함한다. 생각은 혼 안에 있고, 혼은 마음 안에 있다. 우리의 온 힘은 우리의 물리적인 힘을 가리킨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존재, 즉 우리 마음으로부터 우리 혼과 생각을 거쳐 우리 몸으로까지 주 우리 하나님을 사랑한다. 우리는 그러한 명확하고도 상세한 방식으로 주님을 사랑해야 한다.

 

 

 

2. 우리 마음과 우리 영을 훈련함으로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누림

 

 

 

 

우리의 누림이 되시기 위해 그리스도는 영이셔야 한다. 요한복음 6장은 그분이 생명의 떡이시며, 그 떡이 셩명 주는 영임을 말한다. 그분은 우리의 누림이 되시기 위한 영이시다. 영은 우리의 마음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미리 맛봄과 첫열매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우리는 어떻게 우리 마음과 영을 훈련함으로 생명 주는 영이신 그리스도를 누리는가를 배워야 한다. 마태복음에 있는 주님의 왕국 헌법의 공포에서 그분은 「영 안에서 가난」하기를 말하고 「마음이 청결」할 것(5:3, 8)을 말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깨끗해야 하며, 우리는 영 안에서 가난해야 한다. 영 안에서 가난한 것은 영 안에 주님이 들어오실 수 있는 수용력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영 안에서 비워짐으로 그리스도에 관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더 많은 수용력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마음이 깨끗하고 단순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을 접촉하고 영접할 수 있도록 우리 영을 훈련해야 하며, 우리가 그분을 더욱더 영으로 누리고 체험할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을 처리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누림(5) - 기도를 통해 누림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를 누림

 

 

 

 

1. 우리의 말씀 읽기를 기도와 섞음

 

 

 

 

어떤 것을 행하는 데는 항상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우리는 가장 좋은 길을 알기 원한다. 기도하는 가장 좋은 길은 말씀을 읽을 때 기도와 섞는 것이다. 말씀을 읽을 때 생각이 앞서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 영을 사용하여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를 지어내느라고 우리의 생각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온전하지 못한 문장과 구절들로 기도하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가 친근한 사람들에게 친밀하게 말할 때에는 형식적으로 무엇인가를 지어내려 하지 않으면서도,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는 친밀하게 기도하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형식적인 어떤 것을 구성한다. 이것은 우리 영을 죽이고, 우리의 생각을 훈련하도록 돕는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님과 함께하기를 배워야 한다. 기도하면서 우리는 말씀을 일고 있으며, 말씀을 읽으면서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기도와 말씀읽기가 함께 섞이는 것이다(엡6:17,18)

 

 

그리스도인의 생활은 종교적인 생활이 아니라 항상 그리스도를 누리는 생활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일상적인 행함과 그리스도인 생활의 합당한 모든 미덕들은 그리스도를 누리는 데에서 나온다. 에베소서 5장과 6장은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과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아비가 자녀를 돌보는 것, 종이 상전을 섬기는 것과 상전이 종을 합당하게 대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합당한 인간의 삶은 내적으로 그리스도가 채워지는 데에서 나오는데(엡5:18), 그것이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다. 심지어 에베소서 끝에 나오는 영적 전쟁도 그리스도를 누리는 데에서 나온다. 그리스도를 누리는 두가지 방법은 말씀과 기도이다. 우리 모두는 어떻게 말씀을 다루는가를 배워야 하고, 어떻게 그리스도를 영으로 들이마시는가를 배워야 한다. 기도함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동역하며, 그분이 우리를 통하여 무엇인가를 역사하실 수 있도록 근거와 기회를 드린다. 하나는 말씀을 읽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읽는 것을 기도와 함께 섞어야 한다.

 

 

 

2. 기도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누림

 

 

 

 

기도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을 배우려면, 옛 방식의 기도를 그만 두어야 한다. 우리는 그분을 찬양하기 위해 기도하고, 그분을 열렬히 사랑하고, 그분께 감사하며, 그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분을 들이쉬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자주 우리는 탄식하며, 「오, 주여, 오, 주여…」라고 기도해야 한다. 이것은 가장 좋은 기도이다. 참된 기도는 우리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므로, 주님은 우리를 위해 무언가를 하실 것이다. 진정한 기도는 그 영이신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 안으로 역사되고 움직이심으로 우리가 그분을 향해 열고 그분을 호흡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 자신의 어떤 것을 표현할 수 있도록 그분이 나가시고 들어오실 수 있는 자유로운 길을 그분께 드려야 한다.

 

 

계시록은 성도들의 기도들이 향이신 그리스도를 담는 대접들 또는 향로임을 보여준다. 우리의 기도 안에 향이신 그리스도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로 오르신 그리스도와 함께 기도들을 드림으로 매일 향을 태워야 한다.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는 향이신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를 위한 향로와 대접들과 담는 그릇이 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를 소유하고 있지만, 하나님께로 오르시는 향이신 그분을 소유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기도해야 할 것을 주님께 묻기를 배워야 한다. 당신이 기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기도하지 말고, 당신의 기도 안에서 그분이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주님께 물어야 한다. 이것이 창세기 18장에서 주님이 아브라함을 방문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한 기도이다.

 

 

 

합당한 기도는 기도하는 사람을 통한 주님의 말씀하심이다. 이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표현하기 위해 그분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그분을 들이마시는 기도를 하도록 배워야 한다. 만일 우리가 무엇을 기도할지를 모른다면, 우리는 탄식하며, 「오, 주여, 저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모릅니다. 오 주여…」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가장 좋은 기도를 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종류의 생활과 친밀한 기도를 한다면 우리는 온종일 주님으로 보양되고, 신선하게 되며, 강화될 것이다. 데살로니가 전서 5장 17절은 쉬지말고 기도하라고 한다. 오직 이러한 기도를 통해서만이 우리는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기도하는 것은 영적으로 호흡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계속해서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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