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왜 나를 사랑하시는가?(2)
양육&목양
2010-05-19 , 조회 (511) , 추천 (0) ,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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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김원식 형제님께 보낸 메일에 대하여

형제님으로부터 다시 회신이 왔습니다.

아직은 모든 것이 분명해 보이지는 않지만

주님 자신이 저와 성호현 형제님의 인내가 되시어

끝까지 신실하게 목양하게 하시길 간구합니다.

모쪼록 이러한 오고감이 결실로 연결되기를 기도합니다. 아멘!

주, 예수님! 형제님의 마음을 만지소서~~.

그 눈을 열어 주시고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서~~ 아멘!!

 

 


 


- 회신 내용 -


형제님의 궁금함을 한꺼번에 다 해결해드릴 수는 없을지도 모릅니다. 사람인 우리는 무한한 하나님을 다 깨달아 알 수 없고 또 그렇게 요구하지지도 않는다고 생각 합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의 신성한 계시인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또한 그 사랑에 강권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고 믿습니다(고후 5:14).


하나님께서는 계획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경륜(엡 3:9, 딤전 1:4)이라고 말하죠. 지난번에도 말씀드렸듯이 그것은 하나님과 사람이 연결되고 연합되고 합병되어 하나님과 사람의 영원한 합병체인 새 예루살렘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데 이러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성취하는 데에는 절대적으로 사람의 동역이 필요하다는 점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경륜을 방해하고 거역하는 하나님의 대적인 사탄을 멸망시키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했고, 그래서 사람을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람이 실패하자 하나님 자신이 육체를 입고 사람으로 오셔서(요 1:14)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사탄을 유죄 판결 하셨습니다. 결국 다시 오시는 주님은 신부로 단장된 교회와 함께 사탄에 대한 심판을 집행하시고 하나님의 영원한 대적이자 성도들의 원수인 사탄을 불 못으로 던져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주의 주인이시고 중심이시고 둘레이십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시는데 있어서 사람과 의논하지 않으셨지요. 다만 그분은 목적을 가지고 계셨고 이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계획을 세우셨고 이러한 설계도에 따라 오늘까지 그분은 이 우주를 운행하고 계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그분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사람을 창세전에 사랑하셨고 그래서 선택하고 예정하신 것입니다. 로마서 9장 14절부터 24절까지에 보면 하나님은 조물주이시므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그릇을 만들되 귀히 쓸 그릇을 만들 수 있고 천히 쓸 그릇을 만들 수 있으며, 이에 대해 피조물인 사람이 하나님을 힐문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예로서 이삭의 아이들이 어머니 리브가의 태속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은 에서를 미워하였고 야곱은 사랑했다고 했습니다(롬 9:11~13). 마찬가지로 우리도 찬송가에서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그 사랑을 알기도 전에 먼저 사랑했고 그래서 선택했고 또한 예정하셨다는 것입니다(엡 1:4,5). 그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써 그 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셨습니다(롬 5:8). 

 

우리의 사랑은 어떤 조건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사람의 사랑을 헬라어로 스톨게, 필레오, 에로스의 사랑이라고 일컫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이며, 값없이 주는 이유가 없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우리는 헬라어로 아가페의 사랑이라고 일컫는 것이지요. 자격이 없는 자에게 값없이 주시기 때문에 그것은 은혜인 것입니다(엡 2:8,9). 이 사랑은 완전하지는 않지만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모성애)에서 엿볼 수 있지요. 어떤 상황에서든지 자연적으로 흘러나오는 모성애는 참으로 큰 사랑이지요. 그러나 인간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과는 비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사람의 사랑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 친구간의 사랑인 우정, 남녀 간의 사랑 등 이 모든 사랑은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그림자 일뿐 결코 사랑의 본질이신 하나님의 사랑과는 견주어 볼 수는 없다고 봅니다. 사람의 사랑은 상대적이라서 합당한 조건이 성립될 때에만 사랑하게 되지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한다고 하셨지요(아 8:6,7). 주신 분은 이유 없이 주셨는데 무엇 때문에 그 이유를 찾을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우리 인간의 타락한 타고난 본성 안에 하나님께로부터 도망하고 싶은 거역적인 본성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형제님께서 하나님의 사랑을 인간의 사랑 수준으로 이해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그 사랑의 이유를 발견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은 교리적인 문제로 접근하기보다는 체험적으로 접근해보는 것이 열쇠가 될 것 같습니다. 어떤 음식이나 과일을 먹어본 사람만이 그 맛을 알 수 있듯이 아무리 사랑에 대하여 많은 말을 하고 지식을 가진다 할지라도 그 사랑을 직접 체험해보기 전에는 결코 그 사랑을 다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 사랑은 체험해본 사람만이 아는 달콤한 사랑입니다. 나의 어떠함이나 나의 실패나 나의 거역이나 나의 변덕이나 나의 상태나 나의 타락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다 포용하고 덮어주는 그 사랑, 나를 위해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넓고 길고 높고 깊은 큰 사랑(엡 3:18,19)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요. 찬송가에도 나오듯이 그 사랑을 다 측량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 하네 저 높고 높은 별을 넘어 이 낮고 낮은 땅위에......”

  

우리를 낳아 주신 그분을 향해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때마다(롬 8:15, 갈 4:6) 우리 깊은 속에서는 무언가 모를 신성한 흐름이 느껴지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고 나 또한 영안에서 그 사랑에 반응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는 양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으로 낳은 친 아들들이기 때문에 같은 배에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형제자매들을 볼 때마다 자연스럽게 사랑하고 싶고 가까이하고 싶고 무엇이든 베풀고 싶고 사랑하게 되지 않나요?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예지에 따라 우리는 선택되었고 예정되었으며, 이 점에 있어서 우리에게는 선택권이 사실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사랑 안에서 우리는 선택되고 예정되었고 또한 시간 안에서 부름 받았고 교회생활 안에 두어 졌지요. 그리고 우리는 결국 변화되어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영광스런 단계에까지 이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설계하셨기에 결국 그렇게 될 것입니다(롬 8:29,30). 누가 이 사랑을 끊을 수 있겠습니까(롬 8:35~39)? 우리는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에 반응하여 감사하고 받아들이고 그 사실을 누리는 것입니다. 만일 우주 가운데 하나님을 받아들인 사람이 없다고 가정한다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없다고 가정한다면, 하나님의 계획은 틀어지는 것이고 그분은 실패하신 분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도 실패가 있을까요? 사탄이 아무리 교활한 수법을 쓸지라도 하나님의 지혜와 그분의 오묘함을 다 알 수도 없고 결코 이길 수도 없지요. 하나님은 시간 안에서 다만 사탄에게 잠시 허락해 주었을 뿐이지만 결국 그는 실패할 것이고 거듭난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영원 안에서는 새 예루살렘에 있게 될 것입니다.


로마서 8장 6절에 보면 육체에 둔 생각은 죽음(사망)이지만 영에 둔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마다 생각을 영에 두지 않으면 온갖 의심과 불안함과 초조함과 적대감과 우울함과 나약함과 공허함과 외로움과 쓸쓸함과 좌절감과 패배감과 원망스러움과 죄의식과 서글픔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고 이것이 바로 사망의 느낌인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순간순간 마다 생각을 영으로 돌이키고 영안에 둔다면 우리는 평안하고 안정되고 행복하고 만족감이 있고 달콤한 사랑 안에 거하며,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되고 모든 의심은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형제님! 우리는 우리 안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심을 일으키는 자 사탄이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자는 창세기 2장에서 아담 대신 하와를 찾아와서 하나님에 대해 의심을 불러 일으켰고 6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사람들 특히 믿는 성도들 안에서 의심을 불러 일으켜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하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누리지 못하게 방해하고 우리를 사망의 느낌 안으로 가둬버린다는 것입니다.


모쪼록 형제님께서 마음을 열어 그 사랑을 받아들이시고 하나님의 그 사랑을 마음껏 누리며, 처음 사랑(하나님께 대한 첫째가는 사랑)을 회복하시기를 기도합니다(계 2:4). 이 순간 형제님을 위해 영원한 구속을 성취하시고 이제는 형제님의 깊은 속 영안에 살아 계시는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아바 아버지를 간절하고도 달콤한 방식으로 부른다면 그 사랑은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 예수님! 아바, 아버지! 이렇게 부를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과 생명의 관계를 맺은 친 아들들만의 특권입니다. 형제님도 많이 누리시길 바랍니다. 아멘.



- 다시 받은 질문 내용-


형제님의 정성스런 메일 잘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는 조금도 어긋남이 없다고 생각 합니다

내가 이해가 부족하고 성경지식이 없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 합니다

아직도 내가 이해되지 못하는 부분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한다는 이유입니다

더우기 하나님 자신이 창조했다는 사실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말하자면- 장미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장미꽃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에게 그러한 매력이 있냐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자신이 만들어 놓고 말입니다

물론 자신이 그려놓은 그림을 사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만들어 놓은 조각을 사랑하듯 말입니다.(그건 변함이 없지만)

그런데 인간은 수시로 변하기도하고 계속, 죄를 짓고 그러잖아요.- 영원한 속죄를 해놓으셨지만...

무엇이 매력 있고 좋아서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냐는 거지요.. 사랑은 아름다움 인데 말입니다

인간의 사랑과 하나님의 사랑은 비교할 수도 없겠지만, 분명히 사랑의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원받기 전에 속죄함을 그냥 받아들이면 될 것을- 자기가 무슨 값을 하고 받으려 하는 것 하고는 다릅니다. 그건 보혈의피가 확실하게 있으니까 그걸 이해하게 되면 완벽하게 되는 거니까요? 하나님께서도 성경어디에 분명히 인간을 왜 사랑하게 되었나를 기록해 놓으셨으리라 믿습니다.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내가 지옥에 가지 않고 천년왕국에서 누리는 행복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다면 순전히 이기주의적이지 아니겠어요? 이수일과 심순애의 이야기에 김중배의 다야몬드 처럼요!

사랑은 교감으로 흐른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그를 알기 전 그가 나를 먼저 사랑했다는 그 사랑자체가 궁금합니다.- 대상도 있기 전에 사랑을 할 수 있냐는 겁니다. 물론 창조 전에 계획하고 계신사실은 성경 속에 나타나 있습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죽음에서 건져준 사실만으로 피차 사랑의 교감을 가질 수 있는 건지요? 감사와 고마움은 있겠지만....어디 까지나 인간의 생각입니다만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이해의 차이, 수준이나 생각의 차이도 있겠지만 저 개인에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 말씀을 찾고 싶습니다.. 형제님께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시어 충분한 답변을 해주셨는데도 저로서는 아직도 묘연하기만 합니다.. 물론 이해도 해주시리라 믿구요.. 저의 심정은 이상과 같습니다.. 교회에 나가고 안나고 하는 것 하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직접 만나서 얼굴도 보고 이야기 하는 것도 좋겠습니다만, 메일을 통하여 만남이- 서로의 의견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고 또한 잘못된 부분은 교정도 할 수 있어서 저로서는 편안한 것 같습니다..아무쪼록 항상 건강하시고- 송구스러운 부탁입니다만 저 같은 사람이 그러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도록 계속 도와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성 형제님의 개인적인 의견도 듣고 싶습니다. 형제님 감사합니다!





트랙백:  수신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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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답글

주~예수님 형제님의 꾸준한 당신의 진리의 교통을 통하여 김원식 형제님을


완전하게 얻어주시고 그저 단순하게 주님을 향한 마음을 주시기 원합니다.


당신을 신뢰 합니다.아멘!

드림
답글
퍼가요~♥
코너스톤
답글

 아멘 아멘 아멘!  주님 김원식 형제님을 아룁니다.  주님, 긍휼히 여기시고 그 눈을 뜨게하여 흑암의 권세에서 하나님의 아들의 사랑의 빛의 나라안으로 전이되는 신성한 전이가 일어나게 하소서!

코너스톤
답글

우리가 그분을 전파하여 온갖 지혜로 각 사람에게 권면하고 각 사람을 가르치는 것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충분히 성장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골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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