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크는 주의 회복을 기독교의 희망이라고 보고 있다고 앤드류 형제님에게 이야기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형제님은 회복 또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였고 그 중간 정도라고 하였습니다... (서울교회 소식지 중에서) 주의 회복에서 교회생활을 한지 이제 13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서 한가지 특이한 것은 초기에 본으로 여겼던 분이 있었고 지금은 또 다른 형제님을 본으로 여기고 있다고 여겨지는 데 그 차이가 무엇인가 곰곰 생각하여 보니 그것은 다름이 아닌 은사 있는 형제님과 분량 있는 형제님에 대한 부분이라고 느껴졌습니다. 물론 다 귀한 형제님들입니다만..아마도 이것은 집 안에서도 아이가 자라면서 장래 희망이 달라지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여겨집니다.. 초기에는 은사 있는 형제님이 매우 누림직하고 그 형제님만 보였는데 이제 가만히 눈을 뜨면서 보니까 잘 보이지 않던 분량 있는 지체들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은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으로서 그 용도는 교회 건축입니다. 은사가 정말 중요한 것이고 성경에 건축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분량 있는 지체의 그 분량에 대해서는 큰 주의를 하지 않을 수 있다 여겨집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회복 안의 핵심은 분명하게 잡히지는 않지만 은사와 생명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존재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즉 은사와 분량은 모두가 교회 안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 귀함에 있어서는 어떠한 구분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은사는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나 에베소서4장 8절의 은사 그리고 고린도전서 14장의 영적인 은사인 신언의능력으로 성경에 나타나 있고 분량은 전적으로 생명과 생명공급에 의한 것으로 요한복음 10장 10절(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욱 풍성히 얻게...)과 에베소서 4장 13절(충분히 성장한 사람...그리스도의 충만의 신장의 분량...) 에 나타나 있습니다. 은사는 타고남에 더하여진 추구에 의하여 얻어지는 반면.. 분량은 태어남과 자라남에 의한 것 즉 정금길가의 생명나무처럼 자라는 것이라 여깁니다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것이지만 분량은 하나님으로 조성된 어떤 것이며 심지어 은사는 교회를 건축하는 도구에 가깝다고 보면 분량은 교회를 이루는 구조 그 자체라는 느낌이 듭니다 은사는 자칫 자랑하거나 교만할 수 있지만 분량은 자랑하거나 주장하지 않아 마음을 편하게 하여 주며 은사는 자칫 머리의 위치를 취하고 야심이 숨어 들 수 있지만 분량은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주님의 머리 되심 아래 숨습니다. 은사도 물론 몸 안에서 귀하고 존중 받아야 하고 주께 감사함이 크지만 교회 안에서 참으로 귀한 본으로 여겨져야 하는 부분은 분량이라 느낍니다. 은사는 가르치는 데 능하지만 분량은 생명을 공급하는 데 능하며 은사가 진리 방면에 가깝다면 분량은 생명방면에 가깝다 여겨집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은사 있는 몸의 지체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한 분량 있는 지체들을 산출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은사는 주님이 쓰시는 도구이지만 분량은 목표이신 주님 자신이라 느껴집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말합니다. “그 분께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에 포로가 된 이들을 포로로 이끌어 가셨다가 사람들에게 은사들로 주셨습니다(엡 4:8) 그 분께서 어떤 사람들은 사도로 어떤 사람들은 신언자로 어떤 사람들은 복음 전하는 이로 또 어떤 사람들은 목자 및 교사로 주셨습니다.(엡4:11) 이것은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여 그 사역의 일을 하게 하려는 것 곧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엡4:12)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믿음에서의 하나와 하나님의 아들에 관한 온전한 지식에서의 하나에 이르게 하고 또 충분히 성장한 사람이 되게 하여 그리스도의 충만의 신장의 분량에 이르게 하려는 것입니다. (엡 4:13) 행크가 지난번에도 "A" 형제님께 하였던 말이 기억납니다.. "주의 회복은 다른 어떤 곳에서도 가지지 못한 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기도로 말씀 먹기와 신언입니다.. " 영적인 은사인 신언함에 더하여 화려하지는 않지만 주의 이름을 부르며 또한 기도로 말씀먹기로 생명수 강가의 나무처럼 자라남으로 말미암아 얻어지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신장의 분량이 교회 안에서와 또한 행크같은 FOR들에게도 소중하게 여겨지고 있음에 참 감사함이 있습니다. 아멘 감추인 만나님 블로그에서(http://blog.chch.kr/inhim/197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