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국제장로집회 메시지#3 말씀과 부담
사역의말씀
2010-10-05 , 조회 (252) , 추천 (0) , 스크랩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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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시지#3번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서의 하나님의 통치의 원칙을 보고, 사도들과 장로들과 교회들의 교통 안에서 그리스도의 머리의 권위를 존중함"입니다. 특히 어떻게 머리를 존중하며 교통하며 결정하는 가를 강조하셨습니다.

 

제임스 리 형제님은 서론에서 "모든 형제님들 안의 참된 부담은 장로훈련집회를 일반적인 일이 아닌, 존재를 바꾸고자 하는, 실행을 바꾸고자 하는 부담,  좋은 말씀을 듣고 집에 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교회생활, 인도직분 수행의 전환이 필요, 주님의 몸의움직임의 방해가 되지 않도록,  당연하게 , 형식적, 의식적으로 받지 마시고 심각하게 받으시기를..

 

제목에서 하나의 윈칙과 적용을 보여줌, 먼저 통치 원칙을 보아야 한다. 모든 나라마다 정부의 어떠함은 통치의 강함에,교회안에서도 하나님의 통치가 있다. 우리가 섬기는 교회는 하나님의 통치아래, 통치는 표현되고 대표되어야, 우리의 인식은 교회를 섬기러 올 때 회사 CEO로 오는가? 은사가 있다고, 능력이 있다고 할수 있나? 우주안에 통치가 있고 하나님이 유일한 머리요 왕이다는 것이 전부다. 우리는 자격과 역량이 있다고 왕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의 봉사가운데 자리잡아야 함, 그렇지 않다면 부패, 자신도 교회도 파괴될 것이다. 자신의부담을 나타내는 장소가 아니다.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마음, 섬길수 있는 특권이 있지만 엄중한 일이다. 우리의 재능, 은사를 나타낼 수 있는 기회가 아니고 하나님의 통치를 만져야 하고 하나님이 유일한 왕이 되셔야 한다.

 

하나님의 통치의 원칙의 인식의 필요. 하나님의 통치가 교회 안에 있다. 내가 교회 안에 제일 오래 있었기 때문에, 나의 아버지가 장로, 동역자기에 이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님, 나는 의사이고 좋은 가정, 아버지가 장로이기에 장로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관념이 새롭게 되는 것이 온전케 되는 것의 한 부분, 바뀌고 조절되어야, 교회가 멈추고 축복 받지 못하는 이유는 새롭게 되지 않고, 완고함, 기질 때문이다. 우리가 수고, 봉사하든 축복이 없다. 하나님의 통치가 반드시 세워져야 한다. ... 우리는 하나님의 생각을 읽어야 한다. 다만 기도하고 영을 돌이킴으로서만 아니라,  우리는 성도들을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읽어야 한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교회 안의 인도하는 형제님들은 내가 장로다, 내가 다 할 수 있다고 주제넘게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이 배역한다고 말하지 말고 왜? 성도들이 이렇게 표현하는가? 이것이 당신에게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일 수도 있다. 다만 개인적인 기도를 통해서만 아니라, 하나님의 타자기인 백성들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을 읽어야 한다."

 

개요에서,

구약에서 하나님의 행정은 하나님 자신에 의한 직접적인 다스림과 통치이다. 이러한 직접적인 다스림이 신정이다. 독재자에 의한 전제정치도 아니었고 민중에 의한 민주 정치도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직접 하나님의 백성을 통치하시고 다스리시며 관리하시지만 어떤 대리인들을 통해 그렇게 하신다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행정은 언제나 우림과 둠밈을 통해 받은 신성한 말씀하심에 따라 장도들이 집행했다. 하나님의 통치는 그분께서 즉각적으로 하시는 말씀과 항상 있는 기록된 말씀이 더해진 것에 의해 이루어진다. 즉각적으로 하시는 말씀은 제사장들이나 신언자들을 통해서 왔으며, 이렇게 하시는 말씀은 직접적인 행정관들에 의해 집행되었다.

 

신약에서의 장로들은 하나님에게서 즉각적인 말씀을 받는 제사장들인 동시에, 그들이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집행하는 행정관들이다. 신약에서 하나님의 왕국에서 헌법은 사도들의 가르침이다. 주님의 임재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주님께서 즉각적으로 하시는 말씀을 받는다.

 

사도행전 15장에서 우리에게 합당한 머리의 권위와 인도직분을 보여준다. 모든 사도들과 장로들은 각자가 인도자나 머리로서가 아니라 한 형제로서 처신 하면서 그리스도의 머리의 권위를 존중했다. 인간적인 머리의 권위나 인도 직분이 없었고 주제 넘는 행동도 없었다.

 

사도행전 15장은 하나님의 행정에서의 몇 가지 기본적인 원칙들을 계시한다.

1. 교회들 가운데 우두머리 교회가 없었다. 한 몸안에서 동등했다.

2. 어느 교회도 혼자서 결정하지 않았다. 교통 없이 결정을 내리는 주제넘은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3. 사도들뿐 아니라 장로들도 교회들을 대표한다.

4. 사도들과 장로들 가운데서 많은 토론이 있었다. 영적이기 위해서는 토론을 피해야 한다는 생각은 잘 못된 것이다.

5. 성령께서 그 회의를 주재하고 계셨고, 결정은 왕의 임재이신 이러한 주재하시는 분에 의해 내려졌다. - 겉으로 보기에 사도들과 장로들이 결정한 것 같지만, 사실상 그 결정은 그들과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 내리신 것이다.

 

우리는 토론하고, 사실들에 관해 증언하며, 말씀 안에서 확증을 얻어야 한다. 이럴 때 성령께서 우리를 올바른 결정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이것이 사도들과 장로들과 교회들의 교통 안에서 그리스도의 유일한 머리의 권위를 존중하고 존경하면서 하나님의 행정을 지속하는 합당한 길이다. (행15:28)

 

사역의 말씀에서의 발췌,

우리는 반드시 어떤 것도 감추지 말고, 독립적으로 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열고 토론하기를 배워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반드시 화를 내지 않고 토론 하기를 배워야 한다. 이것은 쉽지 않다. 내가 교회 안에서 봉사를 시작한 초기 시절에 이러한 중점에 관해 많이 배웠다. 내가 봉사한 처음 몇 년간 나는 토론의 방식으로 많이 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가 나의 성질을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토론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내 성질이 처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자격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주님께 사용될 수 있도록 나의 성질이 순수하게 되지 못한 것 때문에 주님께 회개했다. 나는 또한 내가 잠잠한 이유를 형제들에게 고백했다. 결국 나는 화를 내지 않고 토론하기를 배웠다.

 

우리는 형제들과 토론할 때 주장하지 말아야 한다. 주장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성질에 지배당하고 있다는 표시이다. 사도행전 15장은 많은 토론이 있었다는 것을 기록하지만, 우리는 또한 거기에 주장하는 것이 없었다는 것을 안다. 왜냐하면 25절은 그들이 한마음 한뜻이 되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주장하는 것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우리가 천연적이고, 성질이 있고, 자아 안에 있는 한, 우리의 의견을 고집할 것이다. 합당한 방식으로 토론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십자가의 공과가 많이 필요하다. 우리가 이러한 공과를 배우지 못한다면 우리의 토론은 싸움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은 토론을 해야 한다. 실지로는 우리가 영 안에서 약하고 아직 우리의 성질에서 자유롭게 되지 못했기 때문에 말 할 엄두를 못 내면서도, 하나를 지키기를 원하기 때문에 침묵하는 것이라고 핑계를 대서는 안 된다.

 

사도행전 15장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은 모두 많은 영적 체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토론에 참여할 자격이 있었고, 화를 내지 않고 토론을 했다. 그들이 주장하지 않고 토론했으므로 최종 결정이 설령 그들의 처음 의견과 반대된다 할지라도, 그  최정 결정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토론에서 우리가 한 말이 제쳐질 때, 마음이 상하지 않기는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화를 내거나 주장하거나 마음 상하지 않고 토론하기를 반드시 배우야 한다. 정부의 일을 하면서 종종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거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해 정치를 한다. 그러나 사도행전 15장에서 마음 상하는 것도, 체면을 세워 주는 것도, 정치를 하는 것도 없었다. 형제들은 열려 있었고 진실했다.

 

사도행전 15장에 있는 정상적이고 합당한 원칙들을 실행에 옮기기는 상당히 어렵다. 수술을 하려면 외과 의사는 반드시 자격을 갖추어야 하고, 그와 그의 수술 도구들은 반드시 소독하여 깨끗하게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그의 환자에게 세균을 가져와 환자를 더 아프게 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역자들과 장로들의 교통에 참여하려면 우리는 반드시 자격을 갖추어야 하고 깨끗하게 되어야 한다. 사도행전 15장에 있는 원칙들을 실행에 옮기려 할 때, 우리는 자신이 십자가의 공과를 배우지 못하고 정결하게 되거나 철저히 다룸 받지 못했다면, 자격을 갖추지 못하고 준비되지 않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가 토론에 참여하는 것은 문제가 될 것이다. 우리가 토론에서 마음이 상한다면 이것은 우리가 육체 안에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가 육체 안에 있지 않다면, 우리의 체면을 지키는 것을 주의 하지 않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존중하는지의 여부를 관심하지 않을 것이다. 정중한 것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것은 사실상 육체를 위해 정치 하는 것이지만, 육체는 동역자들과 장로들의 집회에서 입지가 없다. 사도행전 15장에 있는 본은 십자가의 공과를 배운 사람들에 의해서만 실행 될 수 있다. 초기의 사도들과 장로들은 십자가의 공과를 충분히 배웠기 때문에 그러한 토론을 할 자격이 있었다. 그들은 할 말이 있다고 느꼈으므로 그 토론에 참여했지만 주장하거나 화를 내지는 않았다. 그 결과 토론은 마음 상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한 마음 한 뜻으로 끝났다(25절). 그러므로 특별히 동역자들과 장로들 가운데서는 십자가의 공과를 많이 배워야 할 필요성이 있다.

 

이 말씀을 듣고,

많은 때 형제님들과 함께 만나 소위 교통이라는 것을 많이 했었지만, 사도행전15장의 상태에 이르지 못했음을 봅니다. 이번 말씀을 듣고 저 자신에게 많은 전환을 가져왔습니다. 권위에 순종하고 의견이 없는 좋은 형제로 보이기 위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여 내 마음도 상하지 않도록, 다른 사람의 체면을 살려 주어 나중에 좋은 평을 듣기 위해, 또한 영적인 체 하려고 많은 때 정치하며 침묵하며 가장하며 좋게 포장하며 말을 한 것을 돌이킵니다. 봉사자들이 전부 이런 상태라면 주님이 어떻게 그 교통과 결정에 함께 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 형제님도 초기에 화를 참지 못해 수년동안 공과를 통과했다고 했습니다. 모든 지방에서의 주님을 섬기는 형제님들의 교통이 육체를 처리 받은 많은 토론이 되기를 원합니다. 담넘어 악수하는 식의 영적인 교통보다는 숨김없이 하나님을 왕으로 삼는 서로에게 여는 교통이 너무나도 절실히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다만 이 말씀을 공과를 통과하지 않은 상태에서 천연적인 본성안에서 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도 있습니다. 저도 배우기를 원합니다. 공과를 통과하기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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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부분을 돌이키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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