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국제장로집회 메시지#6 말씀과 부담
사역의말씀
2010-10-08 , 조회 (404) , 추천 (0) , 스크랩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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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6은 자아와 타고난 옛 존재를 알아야 함입니다. 이메시지에서 무엇보다도 우리의 자아가 폭로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전하신 에드 막 형제님은 [마7:13~14]에서 파멸로 이끄는 문은 넓고, 그 길이 널찍하여 들어가는 사람이 많으며,좁은 문, 생명으로 이끄는 문은 좁고 그 길이 비좁아 찾는 사람이 적다,  많다는 것과 적다는 것에 동그라미,  우리는 어떤길을, 많은 사람이 가는 길을, 아니면 적은 사람이 가는 길을 원하는가? 주님이 회복안에서 주신 길은 좁은 길이다. 우리 마음이 이런 말씀을 들을 때 뛴다. 주님의 회복안에서 우리는 좁은 문으로 들어와서 좁은 길을 가고 있다. 많은 지방마다 broadway(넓은길)이라는 것이 있다. 이 세상에 미국에 있다.

 

[마2:12]에서 박사들은 주 예수님을 만나본 후에 다른 길로 갔다. 우리도 주의 회복에서 주님을 본 후에 결코 동일한 길을 가지 않고 다른 길을 간다. 훈련 후에 결코 동일한 길을 가지 않고 훈련에서 본 바에 따라 다른 길을 가기를 기도, 마16장에서 베드로는 놀라운 계시를 받았고 주님은 그 계시 위에 교회를 건축한다고 하심,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신을 부인하고 혼 생명을 잃어버리하고 하심, 이 구절에 그리스도와 교회, 사탄의 체현과 몸의 대적인 자아에 대한 계시도 있음, 몸이 계시될 때 사탄의 체현이 나타나서 자아가 교회의 대적임을 봄, 자아는 독립을 선언하는 혼, 베드로가 한 일은 하나님에게서 독립하여 자아 안에서 한 말로 엄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형편없는 자아를 어떻게 이길 것인가? [마17장]에 변형산에서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포함한 대체물임, [눅9장]에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오직 예수만 보였다. 이 집회에서 오직 주 예수님만 보고 그분의 음성만을 듣고있다.

1. 어떤 것도, 어떤 사람도 보지 말고 오직 예수님만을 보는 것이다.

2. 또한[막 9:29] 기도 외에는 그 어떤 것으로도 쫒아낼 수 없다. 이것은 기도야 말로 참으로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다. 기도의 뜻은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며, 아무것도 없으며,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선언, 기도야 말로 자신을 부인, 기도란 더이상 내가 아니요 그리스도라는 선언,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함, 길게 기도 할 필요가 없다. 오! 주 예수님! 이 자신을 부인하는 기도임,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 성숙했다고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멈출수 없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멈출 때 기도를 멈추는 것이요, 자기 부인을 멈추는 것임, 이것은 좋은 소식입니다.

3. 영을 훈련하는 것이다. 영을 훈련하지 않는 다면 결코 자신을 부인 할 수 없다. 영을 훈련하여 주를 의지할 때 혼생명을 거절하고 서로를 돕는 것이다. 영 안에서 자유하게 되고 자기 의, 자아 의식(나는 성숙한 사람), 자기 책망, 우월감, 자기 영광을 벗을 수 있음

4. 형제, 자매를 의지하는 것, [빌1:19] 바울은 그가 감옥에 있었을 지라도 몸의 의식은 결코 몸 안에서 분리 되지 않고, 성도들의 간구를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넘치는 공급이 온다는 것을 알았음, [고후11:30~33]바울은 사도의 직분을 변명할 때 약함을 자랑, 사도가 광주리를타고 도망친 것을 사도의 표로 여김, 내가 할 수 없다는 것, 한 사람이 천을 쫒고 두사람은 만을 쫒습니다.

 

자아의 방면,

1.주관하는 자아- 형제들이 모일 때 항상 상황을 주관함,소그룹이든 장로, 봉사들이 모이든 다만 함께 섞여야 함

2.변호, 변명하려는 자아- 다른 사람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만 한다면 결코 교회를 건축할 수 없다. 사랑 안에서 참된 말을 할 줄 알아야 함.좋은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솔직한 말을 할 수 없다면 교회는 전진할 수 없음

3.뒤로 물러 가려는, 숨는 자아-  NEE형제님은 '누구도 숨지 않게 하소서'라고 기도함, 르헤미아 같이 합당하게 진취적이어야 함

 

자아의 표현,

1. 주관적인 것 - 결코 사실에 근거하지 않고 자기 생각, 느낌을 말함, 자기 중심적인 사람, 말에 동의하지 않으면 화를 냄.

2. 자만감 - 항상 다른 사람이 자기 아래 있기를, 항상 다른 사람이 자기를 높이기를 원함, 결코 다른이에게 영광을 주지 않음

3. 자기사랑 - 항상 자기만을 주의, 자기를 중심으로 놓음, 제일 좋은 것을 자기에게 주어야 함,

4. 물질적인 것을 사랑함 - 음식, 돈, 소유물이 다 자기 우상이 된 사람, 작은 유리컵이 깨져도 화를 냄.

5. 자기높임 - 물질적인 것만 아니라 영적인 것도 다른 사람을 시기함,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실패할 때 좋아함.

 

이런 자아의 각 방면에서 구원 받는 유일한 길은 영을 훈련하는 것, 기도가 자아를 부인하는것이요 , 가장 좋은 기도는 오! 주 예수님 주님의 이름 을 부르는 것임

 

개요에서,

자아는 사탄의 체현이다. 자아는 혼에 사탄적인 생각, 곧 사탄의 생각이 더해진 것이다.

자아는 하나님에게서 독립을 선언한 혼이며, 자아는 몸의 원수이다. 주님을 의지 하지 않은 채 스스로 무언가를 할 때마다 우리는 자아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을 의지할 뿐 아니라, 몸, 곧 형제자매들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가 형제 자매들에게서 독립하여 단절될 때, 우리는 주님에게서 독립하여 단절되는 것이다.

 

몸에게 가장 큰 어려움과 좌절을 주고 몸을 가장 많이 반대하는 것이 자아이다. 자아는 독립적인 '나'이다.

우리가 몸 안에서 건축되고자 한다면, 반드시 자아를 유죄판결하고 부인하고 거절하며 버려야 한다.

우리가 자아를 버릴 때에만, 몸을 가질 수 있고 몸의 참된 지체들이 될 것이다.

 

"옛사람"은 우리의 존재 자체, 곧 창조되었으나 타락한 사람을 가리킨다. "나"는 옛사람이 자신을 부를 때 쓰는 호칭이다.

"혼 생명"은 옛사람의 생명이다. "타고난 사람"(타고난 조성, 타고난 존재)은 우리의 타고난 능력, 역량, 힘, 재능, 방법들, 지혜, 지식이다.

자아는 의견, 좋은 것과 싫은 것, 그리고 선택으로 나타난 혼 생명을 의미한다. 생각, 감정, 의지의 문제.

 

주님의 회복 안에는 자아와 타고난 옛 존재를 위한 여지가 조금도 없다. 주님의 회복 안에서 우리는 자아와 함께 그 의견과 선호와 선택을 반드시 십자가에 못 박고 거절하며 부인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타고난 옛 존재에 속한 것은 그 무엇도 교회생활 안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반드시 인식해야 한다.

 

주님의 회복은 십자가를 지고, 자아를 부인하고, 혼 생명을 잃어버리며, 그리스도를 사는 문제이다.

우리가 주님의 회복이 무엇인지를 알고, 회복 안에는 자아를 위한 여지가 조금도 없다는 것을 안다면, 우리는 십자가를 질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것은 십자가에 머무는 것을 의미한다.

장로들은 이것을 보아야 한다. 그럴 때 이것이 장로들에게 다스리고 통제하고 지시하는 이상이 될 것이다.

 

사역의 말씀에서의 발췌,

질문 : 교회 안에서 봉사하고 있는 이들 안에서의 참된 변화와 타고난 능력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습니까?

답변 : 참된 변화에는 십자가의 표시가 있을 것입니다. 역량 있고 윤리적인 사람이 구원받고 교회생활 안으로 들어왔을 때, 인도하는 형제들은 그에게서 십자가의 표시를 보지 못한다면 그의 능력이 타고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천역적으로 역량이 있지만 윤리적이지 않은 사람이 구원받고 교회 안으로 들어올 경우, 윤리적인 사람이 될지 모르지만 천연적인 채로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십자가의 표시는 없을 것입니다. 최근의 소요에서 많은 사람이 십자가의 표시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타고난 능력에 속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회복을 안다면, 우리의 옛 존재는 십자가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있는 십자가의 표시와 타고난 능력을 분별하는 우리의 능력은 우리 자신이 얼마나 십자가를 체험했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옛 존재를 반드시 제쳐 두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많은 기독교 교사들이 자아의 의미조차도 알지 못한다. 그 결과 많은 교파가 옛 존재를 장려하고 세우고 사용한다. 이러한 상황에 우리는 애통해야 한다. 주님의 회복은 교파에 속한 기독교와는 다른데, 왜냐하면 주님의 회복 안에서 옛사람은 무덤 외에는 갈 곳이 없기 때문이다. 주님의 회복을 알려면 우리는 우리의 옛 존재가 끝나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비록 주님의 회복 안에 우리의 옛 존재를 위한 여지는 없지만, 새 창조의 의미에 있어서, 교회 안에는 우리를 위한 여지가 있다. 거룩하게 되고 변화되고 같은 형상을 이루고 영광스럽게 되고 있는, 거듭난 사람들인 우리를 위한 여지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타고난 사람을 위한 여지가 어디에도 없음을 보아야 한다.

 

이 말씀을 듣고,

사탄의 체현이요, 하나님에게서 독립을 선언한 혼인 자아가 몸의 대적이요 우리 타고난 옛 존재의 표현임을 보았습니다. 특히 자아의 방면과 표현을 볼 때 제 자신이 속하지 않은 부분이 하나도 없음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자아로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교회 생활 역시 그런 생활이었습니다. 주의 회복 안에는 자아을 위한 여지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 동안 쉽게 자아로 몸을 건축하려 했던 무모한 일들을 돌이킵니다. 이 자아를 어떻게 부인하고 처리하겠습니까? 노력이나 결심은 그 동안 많이 해 왔지만 역사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에 사역을 통해 제시한 길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다 잘 알고 잘 실행하는 것 같았는데, 형제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영을 훈련하는 것, 자아을 부인하는 기도의 참된 의미, 가장 효과적인 짧은 기도인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새로워졌습니다. 이제 내 자아가 발동될 때 마다, 자아로 인해 할 수 없음을 인식할 때마다, 내 자아로 인해, 다른 사람의 자아로 인해 고통스러울 때 그때가 더 영을 훈련 할 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필사적으로 영을 훈련하고, 할 수 없음을 알고 기도하며, 깊은 속에서 주님의 이름을 더욱 간절히 부를 필요를 느꼈습니다. 일평생 졸업할 수 없는 생명의 실행들을 주님의 긍휼로 잊지 않기를 간구합니다. 내가 혹 생명이 성숙해서 주님을 부를 필요가 없다고 착각하지 않기를.. 영을 훈련하는 것은 생명이 어리고 가벼운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기를, 모일 때마다, 아니면 골방을 얻어서 기도하고자 하는 목마름이 사라지지 않기를 주님께 구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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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그분 앞에서 자아가 드러날 때마다 빛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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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교회생활 년수가 갈수록 자신이 늙어가고 자아가 살찐것에 대한  빛비추심이 있었습니다.


밖에 많은 외적인 실행 열심 봉사~~~은 저로 자아를 살찌우게 했고 지체들과 건축하여 몸에 하나를 실행하지 못하게 했을 때가 너무도 많았습니다>


밖에 나타난 교회생활의 여러 방면은 우리로 주님의 생명과 본성을 얻게 하여 몸의 하나의 표현을 가져오기 위해 지체의 기능을 발휘하는 것일 것입니다.


많은 날 내 안에 계신 주님 지체들안에 계신 주님을 관심하지 않고 밖에 많은 교회생활만을 관심하여 너무도 하락의 생활을 하였습니다.


주님께 돌이킴니다.


사역의 말씀과 지체들의 교통과 중보기도가 있고 은혜의 시대에 불러주셔서 기회를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저도 주님의 긍휼과 은혜를 구함니다.


하락된 저에 속 존재을 주님으로부터 치료하심을 받고 주님을 생명과 중심으로 몸의 하나를 관심하며 주님을 표현하는 기능을 통하여 건축되는 살아있는 지체가 되게 하소서!!

디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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