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국제장로집회 메시지#8 말씀과 부담
사역의말씀
2010-10-11 , 조회 (276) , 추천 (0) , 스크랩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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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8은 진리 안에서 주님의 회복을 앎입니다.

 

이 말씀을 전하신 ron 형제님은 간략하게 주님의 임재안에서 3가지 항목을 다룸,

1. 어떤 의미에서, 어떤 방식에서 주님의 회복 안에 있나? 집회장소에 있다고 본질적으로 있는 것은 아니다. 외적으로, 물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실재적으로 머무는 것이 필요하고,  옛 창조, 시간, 공간안에, 지방교회 안에, 이런기회에 함께 모일만하다. 어떤 사람은 물론 저는 집회, 특별집회, 훈련 다 참여했고, 봉사하고, 제정적으로 돕고 있다. 본질, 본성, 역사에 있어서 볼 때 외적인 방식으로 머물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있지 않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은 하나의 조직체로 보고 ceo같다. 그는 많은 인터넷을 통해 공개적으로 많은 비방을 하고 있느데, 한 때는 장로였다. 그가 생명 안에서, 진리 안에서 본질적으로 회복 안에 있었을까? 성도들을 돌볼때 그들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것이 우리 안에 세균으로 동일하게 있기에 바울은 우리 자신도 그런 일에 연류되지 않을 까 염려해야 한다고 함, 그런 행동을 나타낼 때 우리 자신은 회개해야 한다. 우리 안에 잠재성이 가능성이 우리 안에 있다. 주님을 앙망한다. 주님의 회복을 본질적으로 알기를, 또한 있기를..

 

2. 어떤 방식으로 주의 회복을 아는가?

아마도 외적인 실행의 방식, 주님의 행함, 외적인 것, 하나의 입장으로 모임, 알리지 않고 헌금함, 계급제도가 없는 것등을 알고 있다. 사역을 따르고,  RSG모임에 있으나,  생명 안에서, 진리 안에서 주님의 회복을 아는가? 내재적인 의미로 알아야, 강조점은, 주님의 부담은 우리가 아는 방식에 관한 것, 생명자체를 아는 것 만으로 부족하고,  과정을 거치신 삼일하나님으로 우리가 체험, 분배, 하나됨, 살아 나타남, 유기적인 구원 안에서 모든 단계를 거치게 한다는 것은 체험적으로 그분 안에서 아는 것이 우리의 초점임, 사실상 생명자체 안에서 사는 것을 아는 것이 필요함, 생명이신 삼일하나님 안에서 회복을 알아야 함

 

3. 진리안에서 주의 회복을 아는것이다.

진리는 최고봉의 이름, 결코 작게 보지않으나 강조점은 진리자체 안에서 알아야 함, 진리 안에서 알아야 , 빛 안에 있는 것처럼, 주의 회복이 진리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함, 주님께 물어야 함, 진리는 빛이신 하나님이 비추시는 것이요, 어둠가운데 성경 안에 있는 교리에 비춤으로 교리가 실재가 되어 그 결과 생명의 풍성을 가져오고 심지어 생명수의 강으로 흘러 넘치게 함, 진리란 빛의 비춤, 하나님 자신이 빛으로 비추는 것, 성경 안에 가르침과 교리를 마땅히 알아함, 평균적인 지성이 있다면 알수 있으나, 아직은 교리다. 다만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부터 시작한다. 빛이 그위에 비출 때 자아가 다만 몸의 대적이라는 것을 볼 뿐만아니라 실재적으로 구체적으로 비춤으로써 모든 사례에서 자아가 교회생활 안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나타난 사례에 대해서 빛을 비추게 되는 것, 다만 교리에 머물지 않게 되는 것임. 생명의 풍성함은 생수의 흐름같은 흐름을 가져옴, 각 사례에 대한 느낌, 강들로 흘러간다는 느낌을 가질수 있음. 더 많은 빛, 실재, 생명의 넘침, 강들을 얻게 됨. 생명을 진리 없이 받을 수 없음, 생명과 영을 강조하고 진리를 같이 강조, 아니면 빗나갈 수 있음, 생명이 아닌 것을 따라갈 수, 진리가 모든 것을 통제하고 분별을 가져옴. 진리 안에서 주의 회복을 아는 것은 빛 안에서 성경을 아는것임, 성경을 진리 안에서 아는것, 성경의 내용은 하나님 자신이지만 성경 자체는 교리임, 연구, 기도로 먹을 때, 빛비춤을 통하여 항목 하나하나를 진리, 실재가 되게 생명을 가져오게 함. 우리가 사역을 말씀을 적용하고 발전시킬수 있다는 것이 감사함.

 

현재 내가 아는 것에 만족할 수 없다. 니, 이형제님이 아는 것과 동일하지 않습니다. 이 본 안에서 본 것처럼 볼 수 있도록 온전케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견고하게, 흔들리지 않게됨, 이 빛이 생명이 진리가 되어 존재의 일부가, 회복자체로 생명과 진리인 삼일 하나님으로 조성됨, 어떤 진리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기를, 이 진리가 내 체험과 실재가 되었나?

 

개요에서,

주님의 회복이 전적으로 생명과 진리의 문제라는 것을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생명과 진리가 회복의 특징이다. 생명은 사람에게 도달하시기 위해 삼일 하나님께서 거치신 모든 과정 안에 계신 그분 자신이고, 진리는 실재이신 하나님 자신이다.

진리라는 단어는 실재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하나님 편에서 진리는 계시되신 하나님이고, 우리 편에서는 실재화되신 하나님이다.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을 계시하실 때 그것이 진리이고, 우리가 하나님을 깨닫고 만질 때 그것이 또한 진리이다.

진리는 빛을 비춤, 곧 빛이신 하나님의 표현이다.

진리는 성경의 사실들 위에 신성한 빛이 비춰져, 이러한 사실들에 대한 하늘에 속한 이상이 우리 존재 안으로 방영되어 들어온 것이다.

진리 안에서 주님의 회복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진리의 방식으로 성경을 알아야 한다.

다만 교리가 안에서가 아니라 진리 안에서 성경을 알 때, 우리는 빛을 비춤을 받고, 이러한 빛을 비츰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생명을 얻는다.

진리는 교리들 안에서 전달되지만, 교리들 안에 있는 진리는 오직 그 영의 비춤에 의해서만 실재화 될 수 있다.

그 영께서 우리에게 비추실 때 우리가 아는 교리들은 진리가 되고, 이 진리는 빛을 가져오며, 빛은 생명을 가져온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합당한 방식으로 많이 기도해야 하며, 우리의 전 존재를 주님께 열어드려야 한다. 이러한 식으로 우리가 더 많이 기도할수록, 그 영께서 더 많이 우리에게 비추시어 교리들을 진리가 되게 하실 것이다.

어떤 교사가 우리에게 진리를 공급하는지 아니면 단지 교리만을 공급하는지는 그의 가르침이 우리에게 하나님을 공급하는지에 달려있다.

진리를 아는 목적은 우리가 생명의 풍성과 생명의 넘침을 얻고자 하는 데 있다.

우리가 삼일 하나님과 성경을 알고 생명과 진리를 가지며 빛으로 충만하다면, 우리는 참으로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것이다.

 

사역의 말씀에서의 발췌,

우리에게 진리가 있으려면 반드시 먼저 교리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생명이 부족한 기독교의 일꾼들과 근본주의적인 교파들도 여전히 도움이 되는데, 그것은 만일 그들이 정확한 교리를 전파한다면 결국에는 그러한 교리들이 진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교리가 없이는 진리가 올 수 없다. ...교리를 통해 우리는 진리를 본다. 교리가 우리 안에서 진리가 된 것이 빛의 비춤이고, 빛은 생명이다.

 

우리는 생명과 진리 안에서 주님의 회복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삼일 하나님 안에서와 성경 안에서 주님의 회복을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매일 성경공부를 해야 하는데, 그것은 성경에서 우리가 먼저 교리를 받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빛춤을 통해 교리는 진리가 되고, 우리 속에서 신성한 빛을 비춤이 된다. 그럴 때 우리는 빛과 합하게 되고, 빛은 우리에게 생명이 된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주님의 회복은 활동이나 운동이나 그리스도인의 일반적인 일이 아니며, 빛 안에 있는 생명과 진리의 문제이다. 우리가 삼일하나님과 성경을 알고 생명과 진리를 가지며 빛으로 충만하다면, 우리는 참으로 주님의 회복 안에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주님을 추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우리가 주님의 회복 안에서 행하고 가르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마음이 상하여 우리를 비난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피할 수 없지만, 언제든지 진실하고 굶주리고 주님의 마음을 추구하는 니고데모와 같은 사람이 몇 명은 있다. 주님은 그러한 이들에게 그분 자신을 계시하고, 그들은 그분의 회복의 일부가 된다.

 

진리 안에서 회복을 알려면, 우리는 교리의 방식으로뿐 아니라 진리의 방식으로 성경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진리 안에서 성경을 알 때, 빛 비춤을 갖게 되고, 이 빛 비춤이 우리로 생명을 얻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생명을 갖느냐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진리를 아느냐에 달려 있다. 무지한 믿는 이는 주님을 극도로 사랑한다 할지라도, 진리에 있어서 부족하기 때문에 생명의 풍성을 가질 수 없다.

 

이 말씀을 듣고,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어떤 방식으로 주의 회복 안에 있는가?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말씀은 지금 저의 회복 안에서의 교회 생활을 다시 한번 돌아 보게 하였습니다. 기독교에 오랬동안 있다가 주의 회복에 들어 올 때의 그 인상은 참으로 신선한 충격 그 자체 였습니다. 날마다 집회가고 소그룹으로 모일 때마다 집회하는 방식이나 지체들의 입에서 나오는 놀라운 말씀들이 새로웠고, 빛나는 형제 자매님들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이제 십 수년동안 주의 회복에 머물며 이것은 주의회복은 아닌데 하는 것들이 있어 왔지만 그 느낌을 확증 시켜 주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이 번 집회를 통해 저는 다시 주의 회복을 본질적으로 알고 자 하고, 또한 그 본성 안에서 생활하고자 하는 갈망이 생겼습니다. 우리는 물질적으로나 외적으로 참 하나의 터에 돌아와 지방교회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모든 집회를 참석하고 있고 기독교에서 실행하고 있지 않은 것들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외적으로는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고 기독교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여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인해 주의 회복에 있다고 할 수 없고, 주의 회복을 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라는 사람은 주의 회복에 있지만 참으로 내적으로 본질적으로 본성 안에서 주닝의 회복 안에 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회복은 활동이나 운동이나 그리스도인의 일반적인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명과 진리 안에서 주의 회복을 알아야 합니다. 주의 회복을 안다는 것은 실재이신 빛이신 생명이신 삼일 하나님을 체험하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생명은 진리에서 옵니다. 따라서 우리는 빛 비춤 안에서 진리를 추구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성경 한항목씩을 주님께 가져가고 빛 비춤을 받아 실재로 적용하고 우리의 체험이 된다면 그것은 우리의 생명이 될 것이고 생명의 풍성함으로 생명의 강으로 흘러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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