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신성한 통치의 원칙을 보고...
사역의말씀
2010-11-29 , 조회 (288) , 추천 (0) ,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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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행정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부터 비로서 시작되었습니다.

200만명이나 되는 사람들 안에서 하나님은 그분의 행정을 모세를 통해 수행하셨습니다.

직접 하나님을 대면한 모세를 통하여, 모세 이후에는 대제사장들을 통해 수행하셨습니다.

구약을 통해 하나님은 그분의 통치를 백성들 가운데서 어떻게 수행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특히 여호수아와 엘르아살(민27:21) 관계를 통해 하나님의 통치의 그림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행정은 하나님 자신에 의한 직접적인 다스림과 통치인 신정(神政)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오셔서 통치하고 다스리고 관리하시지만 어떤 대리인을 통해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대리인이 구약에서는 제사장과 장로들이었습니다.

이 대리인들은 율법과 우림과 둠밈이라는 판결흉패를 통한 하나님의 즉각적인 말씀으로 행정을 수행했습니다.

그러므로 원칙적으로 하나님의 행정은 우림과 둠밈을 통해 받은 말씀으로 집행했습니다.

 

이를 위해 제사장인 엘르아살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 들어가 하나님의 즉각적인 말씀을 받는 책임이 있었고,

인도하는 장로인 여호수아는 이 받은 말씀으로 백성 가운데서 행정을 집행하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사실 우림과 둠밈이라는 판결흉패의 그림은 너무나 세밀하고 경이롭다고 표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에봇을 입고 판결흉패를 걸고 견대를 차고 하나님께 직접 나가는 실행을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번거롭기도 하겠고, 꼭 두사람이 동역이 있어야 하겠고, 어쩌면 두려움도 있을 것입니다.

 

신약에서의 하나님의 행정도 구약과 똑 같습니다.

그런데 구약에서의 두사람의 역할을 신약에서는 한사람인 장로가 해야 합니다.

또한 구약의 헌법인 율법은 신약의 헌법인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대치되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교회 안에서 사도들의 가름침은 헌법과 같이 최고의 권세로서 존중되어야 합니다.  이런 말씀들을 기초로 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신성한 통치는, 항상 있는 기록된 말씀과 즉각적으로 하시는 말씀에 의해 이루어 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행정과 통치가 교회 가운데 수행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먼저 행정관인 장로들이 주님의 임재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말씀이 단지 장로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선한 갈망을 가진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임재 안에 나아 갈때,

우리는 주님의 가슴으로 상징되는 사랑하는 역량을 공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사랑하며, 그러한 사랑하는 역량을 가지고 그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서 그분을 앙망하면서,

흉패의 보석들 위에 있는 글자들, 곧 교회의 모든 지체들을 읽는 것입니다.

교회의 지체들을 신성한 타자기의 글자들로 취함으로, 거기에서 단어, 절, 문장, 단락, 장들이 우리에게 오고,

우리는 이 즉각적인 말씀을 따라, 무엇을 행하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행해야 할지를 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들!

이 말씀이 달콤하고 놀랍지 않습니까?  저는 이 말씀을 대할 때 안에서 솟아 오르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이 느낌은 저를 다시 소생시킵니다. 다시 주님의 면전에 나아가고자 하는 갈망을 불러 일으킵니다.

주님께 나아가 주님과 많은 대화를 하고자 하는 입맛이 다시 살아 나고 있습니다.

최근에 과연 내가 교회를 섬기고 성도들을 섬길 수 있는 자인지 주님께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폭로 될 때마다, 낙심되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 길을 몰라하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주님의 말씀하심도, 인도하심도 없고, 또 형제님들을 만나 교통해도 별로 느낌이 없는 것 같고, 소망도 없고...

그런 상황에서 이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저에게 어떤 말씀을 하신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할지, 어떻게 할지, 언제 할지는 기록된 말씀에서는 발견할 수 없거나,

실제로 집행하는 방법과 시기는 분명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주님의 즉각적인 말씀이 필요합니다.

 

이 즉각적인 말씀을 얻기 위해,

우리는 주님의 임재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합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시간이 충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 하실 때 까지, 기다리며.... 주제 넘게 먼저 말하지 않고....

주님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지, 또한 주님께서 우리들 가운데 무엇을 하시고자 하는지 알기위해...

그 동안 바쁘지도 않으면서, 내 자신을 위해서만 시간을 사용하고, 주님을 앙망하는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돌이킵니다. 저의 시간을 분별해 드리기 원합니다. 내 의지를 사용해서, 몸의 행실들을 죽음에 넣으며...

 

두번 째는, 내가 판결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고자 한다면, 우리의 자아, 옛사람, 세상에 속한 것들을 모두 판결받아야  합니다. 이런 심판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알 수 있도록 그 길을 밝혀 줄 것입니다.

 

세 번째는, 그리스도의 머리의 권위를 존중하며 함께 교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5장에서의 보여준 그림은, 우리가 함께 교통할 때,

십자가의 공과를 체험하며 많은 영적인 토론을 해야 하고, 솔찍하고 강한 증언을 해야하며,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확증을 하는 결론을 얻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때 누구도 주제넘지 않도록 하고, 성령께서 의장이 되실 수 있도록 머리의 권위를 존중해야 합니다. 이런 회의는 결국 한마음 한 뜻으로 우리를 이끌 것이며, "성령과 우리는 ...좋다고 여겼습니다"(행15:28) 에 이르고,

"교회가 격려의 말에 기뻐 할 것입니다"(행15:31) 라는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이 때 교통은 수정같이 말고 투명해야 하며, 동의 하지 않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고,

어떤 것도 감추거나 은폐하려고 은밀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로의 체면을 세워주거나 마음에 어떤 느낌이 있는데 무조건 아멘하는 예스멘이 되어서도 안되고,

마음 상하는 것이나, 정치하는 것, 세상적인 것, 부정확한 것,

동기와 의도가 순수하지 못한 것들을 처리 받으며,

자신을 배우는 자세로 더 겸손히 낮추고, 더욱 조절되고, 온전하게 되는 공과를 통과 해야 합니다.

 

헌법과 같은 말씀을 추구하며 교통할 수록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딤전3:15) 알게 하고,

정말 교회 안의 장로직분의 중요성이 새롭게 인식되고 있습니다.

단지 이 말씀들이 정죄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되겠고,

실제로 우리 존재를 만져서 우리의 실행들이 바뀌기 원합니다.

또한 건전하고 건강하고 합당하고 강한 장로직분을 위해 함께 기도하며,

감독의 직분을 맡고 싶어하는 선한 일을 갈망하는 젊은 성도들이 일어나기를 위해 아울러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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