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십자가의 경계
정상적인그리스도인의생활
2009-03-03 , 조회 (266) , 추천 (0) ,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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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상 왕국은 하나님의 왕국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갈망 안에서 체계적인 체계인 그분이

창조한 우주 곧 그 아들 그리스도를 머리(골 1;16-17) 삼은 우주를 갖고 계신다.

  그러나 사탄은 인간의 육체를 사용하여 대적하는 체계를 세웠는데. 성경은 이것을 "이세상"이라고 부른다. 이체계아래 우리가 포함되어 있고 사탄 자신이 그세상을 다스린다.

그러므로 사실상 사탄은 "이 세상 임금"(요 12;31)이 되었다.

                        두 창조

  이 때문에 첫 창조는 사탄의 손에 의해 이미 옛 창조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의 관심은 

더이상 첫 창조가 아닌 두번째 창조에 있게 되었다. 그분은 하나의 새 창조 새왕국 새 세계를 가져오셨다. 이 새 창조 안으로는 옛 창조와 옛 왕국와 옛 세계 안의 어떤 것도 가져올수 없다.

  이제 문제는 이 대립되고 대적하는 두 왕국 중 우리가 어디에 속하느냐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물론 우리가 어느 왕국에 속하느냐에 대해 모호하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그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

(골1;12-13)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를 하나님의 새 왕국 안으로 이끌기 위하여 그분은 우리안에서 새로운 일을 하셔야 한다. 그것은 바로 우리를 새창조로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새 왕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게 된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요 3;6). 혈과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고전 15;50). 당신이 어떤 교육을 받고 얼마나 교양이 있든지 또는 얼마나 개선하든지간에 육체는

여전히 육체이다. 우리가 새 왕국에 적합한가는 전적으로 우리가 어느 창조에 속하느냐에 달려있다.

  우리는 옛창조에  속하는가.아니면 새 창조에 속하는가.

우리는 육체로 난 자들인가. 아니면 영으로 난 자들인가. 우리가 새왕국에 적합한가는 결국 우리의 근원 문제에 달려 있다. 문제는 선한고 악한가에 있지 않고 육체냐 영이냐에 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니". 육신은 결단코 다른 것을 낳을 수 없다. 옛 창조 안에 있는 어떤것도 결코 새 창조 안으로 가져올 수 없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일임을 참으로 깨닫는다면. 우리는 결코 옛창조의 어떤 것으로도 새 창조에 공헌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위해 우리를 얻고자 하신다.

  그러나 그분은 낡은 원래의 우리들을 그분의 계획 안으로  이끄실수 없다. 그러므로 먼저 그분은 십자가로 우리를 제하시고 그런다음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신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므로 우리는 새로운 성품과 새로운 기능을 지니고 새로운 왕국. 새 세계로 들어갈수 있게 되었다.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이전것을 해결하시는 방법이다. 그분은 우리 옛사람을 완전히 한쪽으로 제쳐

놓으신다. 또한 하나님은 부활로 말미암아 그 새 세계 안에서 우리가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 에게  부여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생명 가운에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4).

 

  우주 가운데 가장 큰 부정은 십자가이다. 하나님은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분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모든 것을 일소 하셨다. 그반면에 우주 가운데서 가장 큰 긍정은 바로 부활이다. 부활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분이 원하신 모든 것을 새로운 영역 안으로 이끄셨다. 그러므로 부활은 새창조의 벽두에 서 있는 것이다.

  사람이 첫왕국에 속한 모든 것들을 끝내는 십자가와 두번째 왕국에 속한 모든 것을 가져오는 부활을 보는 것은 복된 일이다. 부활 이전에 시작된 모든 일은 반드시 제거되어야 한다. 이는 부활이 하나님의 새로운 기점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앞에 두 세계가 있다. 하나는 낡은 것이고 하나는 새로운것이다. 낡은 세상 안에서 사탄은 절대적인 통치권을 가지고 있다.  옛창조 안에서 당신이 선한 사람일 수도 있지만. 당신이 옛창조에 속해 있을때 당신은 사망의 정죄 아래 있는 것이다.

  이는 옛 창조에 속한 것들 중 새 창조 안으로 가져 올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도 없기 때문이다.

십자가는 옛 창조에 속한 모든 것들이 죽어야 한다는 하나님이 선포이다. 첫 사람 아담에 게 속한 것 중 십자가 이편으로 가져올수 있는 것은 한 가지도 없고 모두 저편에서 끝나야 한다.

우리가 이사실을 빨리 볼수록 좋다. 이는 하나님께서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를 위해 옛창조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 놓으섰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속한 모든 것을 그의 아들에게 돌리셧다. 그런다음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그로므로 아담에게 속한 모든 것은 이미 그분 안에서 제거되었다. 하나님은 온 우주를 향하여 이렇게 선포하신 듯하다. "나는 이미 십자가로 말미암아 나에게 속하지 않는 모든 것을 한쪽에 제쳐놓았다, 옛창조에 속한 너희들도 그 안에 포함하여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우리중 이런 판결에서 벗어날 능력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점은 우리를 침례의 문제로 이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받은 줄을 알지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롬 6;3-4) 이말씀에는 무슨 중요한 의의가 있는가.

 

 성경에서 침례는 구원과 관계 있다.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막 16;16) 비록 우리가 성경에 근거하여 침례의 중생를 말할 수는 없지만 침례의 구원을 말할수 있다. 구원받는다는 말은 무엇인가. 구원은 죄나 죄의 권세와 무관하며 이 세상 체계와 관계된다

  우리는 사탄에 속한 세상 체계 안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 받는 것은 사탄의 세계로 부터 나와서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하여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베드로는 여덟 사람이  "물로 말미암아 구원 얻었다"(벧전3;20).라고 말한다. 이 예표는 십자가의 의미를 더욱 설명해준다. 노아와 그의 일가는 믿음으로 방주에 들어가 패괴한 옛 세상으로 부터 나와 새로운 세계안으로 들어갔다. 이것은 그들이 이로 안하여 익사를 면한 것에 중점이 있지 않고 그들이 패괴한 세상으로 부터 나왔다는 데 중점이 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다.

  이어서 베드로는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벧전 3;21) 고 말한다. 바꾸어 말해서 하나님은 침례로 표명된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 악한 세대에서 당신을 구원하신다. 또한 당신의 침례로 말미암아 이 점을 확증하셨다. 침례의 한방면은 그분의 죽으심에 합하고 옛창조를 끝내는 것이다. 그러나 침례의 다른 방면은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들어가고 새창조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롬 6;3) 당신이 물속에 들어갈때 당신의세상도 함께 물속에 들어간 것이다. 당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일으켜 질 때 당신의 세상은 이미 멸절된 것이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의 감옥에서 간수에 이렇게 말했다 "주예수를 맏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또한 그들은 간수와 그의 일가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 주었다. 간수와 그에게 속한 사람들은 죽시 침례를 받았다,(행 16;31-34) 그들이 이렇게 행한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께 속한 백성과 영적인 권세 앞에서 그들이 심판받은 세상으로부터 구원되었다는 것을 간증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였다. 

그러므로 침례는 단지 물을 뿌리거나 물에 잠기는 문제만이 아니다. 침례는 우리 주님의 죽음과 부활과 관계된 너무 큰일이다. 또한 두세계와도 관련된다. 무릇 이교를 신봉하는 나라에서 사역해본 사람은 침례로 야기되는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알 것이다.

 

참고: 행 10:47-48.  이 사람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았는데 물 침례받는 것을 누가 막을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베드로는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침례를 받으라고 명령하였다.

    막 16:16.  믿고 침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믿지 않는 사람을 유되 판결을 받을 것입니다.

믿는것은 죄들이 용서받기 위해서 만이 아니라. 거듭나기 위해서 노예구주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로써 믿는 이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되고 삼일 하나님과의 유기적인 연결안에서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된다. 그러므로 침례 받는 것은 노예구주의 죽음을 통하여 장사됨으로써 옛창조물을 끝내고 노예구주의 부활을 통하여 일으켜짐으로써 하나님의 새 창조물이 되는 것을 확증하는 것이다.

  이같은 침례는 요한이 전파한 회개의 침례보다 훨씬 전진된것이다. 믿고 침례 받는 것은 하나님의 충만한 구원을 받기 위한 완전한 한 단계의 두 부분이다.

믿지않고 침례 받는 것은 헛된의식 일 뿐이며. 믿기만 하고 침례 받지 않는 것은 내적인 구원에 대한 외적인 확증이 없이 다만 내적으로만 구원 받는 것이다. 이두가지는 병행되어야 한다. 더욱이 물 침례는 성령 침례와 함께 해야 하는데 이것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바다(물)  와 구름(그영) 가운데서 침례받은 것과 같다.

(고전 10;2.12;13).

  막 16;16절의 하반절은 믿지 않고 침례받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유죄 판결이 단지 믿지 않는 것과만 관계될 뿐이며 침례받지 않은 것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을  가리킨다. 믿는 자체만으로도        유죄 판결에서  구원받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사람의 내적 구원의 완성을 위하여 믿음에는 외적 확증인  침례가 필요하다.

베드로는 계속해서 침례가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 3;21)고 말했다.

만일 누가 우리에게 묻지 않는다면 우리는 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이 무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답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고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미 말씀하셨다. 십자가로 말미암아 그분은 우리에게. 우리와 세상과 옛창조 그리고 옛 왕국에 대한 심판을 알려주섰다. 십자가는 단지 그리스도 개인에게 속한 개인적인 십자가가 아니다. 십자가는 만유를 포함한 십자가요 당신과 나를 포함한 공동의 십자가이다.

 

  하나님이 이미 우리 각 사람을 그의 아들 안에 두셨고 그의 안에서 우리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

마지막 아담 안에서 그분은 이미 첫 아담의 모든 것을 청산하고 완전히 일소하셨다.

나는 옛 창조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에 대해 어떻게 응해야 하는가. 침례를 요청하는 것이 나의 응답이다. 왜 그런가 . 로마서 6장 4절에서 바울은 침례는 곧 장사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으므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침례자체는 죽음이나 부활이 아니다. 그러나 침례가 장사이기 때문에 침례는 죽음과 부활과 서로 연관이 있다.

어떤 사람이 장사될자격이 있는가. 당연히 죽은사람이다. 그러므로 내가 침례받기를 요청한다는것은 내가 이미 죽었기 때문에 나는 오직 무덤에 들어가기에만 합당하다고 선포하는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사람은 장사를 죽음의 방법으로 취한다. 그들은 장사를 통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 내가 강하게 말하거니와. 우리눈이 열려서 우리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고 또한 그분과 함께 장사 된 것을 보지 못했다면. 우리에게는 침례받을 권리가 없다.우리가 물 속에 내려가야하는이유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우리가 이미죽었음을 시인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일을 간증하는  것이다.하나님의 질문은 간단하고도 명백하다. 그분은 그리스도가 이미 죽었고 또내가 너를 그의 안에 포함시켰다. 이 사실에 대하여 너는 어떻게 말하느냐고 말씀하신다. 나는 어떻게 답해야 하는가 .

  나는.   " 주여 당신이 이미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습니다. 당신이 나를 당신의 죽음과 장사에  넣으신 것에 대해 나는 예 라고  말할 뿐입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

  그분이 이미 나를 죽음과 무덤에 넣으셨기 때문에 내가 침례를 청하는 것은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부활로 인해 새 생명 안으로 들어감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롬 6;5).

이제 부활의 다른 상징이 있게 되었다. 이는 새로운 것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았다. 그러나 그의 부활에 들어간 것은 침례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다.

주님을 찬미하자. 부활로 말미암아 그분은 내 안에 들어오시어 새 생명을 나에게 나누어 주셨다. 주님의 죽음에서 우리가 강조하는것은 내가 그리스도안에 있는 것이다.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부활 생명을 나에게 준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나는 어떻게 이 새 생명을 얻는가 . 바울은 그와 연합하여 라는 용어로 이에 대한 좋은 설명을 우리에게 주었다. 헬라어에서 연합이라는 단어에는 접붙임이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이것은 부활로 말이암아 그리스도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심을 설명하는 한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제공한다.

 

  하나님은 이미 모든것을 다 이루셨다.이 세상에 천만인의 생명 안에 접붙여진 열매 맺는 유일한

생명이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새 생명 이라고 부른다. 새 생명이란 전에 사람에게 없었던 생명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나의 천연적인 생명이 완전히 변했다는 뜻이 아니라 다른 생명 곧 전혀 새로운

생명인 하나님의 생명이 나의 생명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미 그 아들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옛 창조를 제하셨는데 그 목적은 부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의 새창조를 가져오기 위해서이다. 그분은 이미 흑암의 권세로 향하는 낡은 문을 닫아버리고 그의 사랑의아들의 나라로 우리를 옮기셨다.

  나의 영광는 바로 이미 완성된 일 안에 있는데. 그것은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나의 침례는 이 사실에 대한 공개적 간증이다. 이것은 입을 열어서 하는 간증이 나의 구원을 위함인 것과 마찬가지이다."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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