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자신을 하나님께 드림
정상적인그리스도인의생활
2009-03-11 , 조회 (326) , 추천 (0) ,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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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장들에 이어서 이제 우리는 드림의 참된 성질을 살펴보기로 하자. 우리 앞에는 로마서 6장 후반부  곧 12절부터 마지막 절 까지가 있다.

6:12-13절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 에게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이 두 구절 말씀 안에 어떤 동작을 나타내는 단어는 드림이다. 13절. 16절.19절 에서 도합 다섯 번 사용 되었다.  많은 사람들은 드리다 라는 단어를 헌신의 의미로만 생각하고 그 내용을 자세히  연구해 보지 않는다. 물론 드림에는 헌신의 의미가 들어있다. 그러나 이것은 보통 우리가 이해하는 것과는 다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우리 옛사람과 .그 기능과 지혜- 천연적인 지혜와 힘. 기타 재능을 주님이 사용하시도록 그분께 드리라는 뜻이 아니다.

 

  13절을 읽을 때 이점이 즉시 분명해질 것이다.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산자같이 라는 용어를 주의하라. 바울은 너희 자신을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산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라고 말한다.

이말씀은 헌신의 기점을 우리에게 설명해준다. 왜냐하면 여기서 헌신은 옛 창조안의 어떤 것에도 속하지 않은. 죽음과 부활을 거친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드림은 우리의 옛사람이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안 결과이다. 하나님이 정하신 순서는 1.알고 2.여기고3. 하나님께 드림. 이다.

 

  내가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참으로 알았을때. 나는 자연히 내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게 된다.(6.11절)  또 내가 죽음에서 그와 함께 부활한 것을 알때 나는 자연히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자로 여기게 된다.(11절)    이것은 십자가의 두방면 죽음과 부활이 모두 믿음으로 영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 도달할 때 뒤따라오는것은 바로 그분께 드리는 것이다. 부활 안에서 그분은 나의 생명의 근원이시다. 실지로 그분은 나의 생명이시다. 나의 모든 것은 내  소유가 아니라 그분의 것이기 때문에 내가 모든 소유를 그분께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내가 죽음을 거치지 않은다면 하나님께 드릴 만한 것이 없게 되고 또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만한 것이 없게 된다.

  이것은 그분이 이미 십자가 위에서 옛 창조에 속한 모든것을 정죄하셨기 때문이다. 죽음이 그분께 드릴수 없는 모든 것들을 다 제하였으며. 오직 부활만이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게 한다.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말은 오늘  이후로 나의 온 생명을 주님에게 속한 것으로 생각한다는 뜻이다.

 

                           세째 단계 : 자신을 드림

우리는 이 드림이 우리 몸의 지체들과 관계된다는 것을 주의해야한다. 앞에서 우리는 이미 우리 몸을 더이상 죄에게 드리지 말아야 함을 보았다. 바울은  "너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여러분의 지체들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드리십시요" 롬6;13절. 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지체와 능력이 완전히 그분께 속한다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신다.

내가 내자신에게 속하지 않고 그분께 속함을 발견하는 것은 매우 큰일이다. 만일 호주머니 속에 내 소유로 십 실링이 있다면 나는 그 돈을 처리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만일 그 돈이 다른 사람의 것이거나 다른사람이 나에게 보관한 것이라면 나는 그것으로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살수 없고 감히 잃어버리지도 못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싱활은 바로 이 점을 아는데서 시작된다.

  오늘날 그리스도가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자신에 대하여 살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하여 살아야 한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또 우리의 시간과 금전 혹은 재간이 우리의 것이 아니라 주의 것임을 알기 때문에 그것들을 함부로 자기 뜻대로 쓰지 않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우리 가운데 우리가 그분께 속하기 때문에 돈 한푼.한 시간  혹은 어떤 지혜와 체력을 다른 데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한다는 느낌을 가진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한번은  한 중국인 형제가 기차를 타고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가 있는 객실 내에서 믿지 않은 사람 셋이 카드로 오락을 즐기려고 하고 있었다. 한 사람이 부족해서 그들은 그 형제에게 같이 하자고 요청했다. 그는 여러분들을 실망시킬 생각은 없지만 저는 함께 동참할수 없습 니다. 그것은 내가 내 손을 가지고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말샜다.

  이어서 이말을 들은사람들은 놀라며 그에게  당신의말은 무슨 뜻입니까 라고 물었다. 그는 "내 이두 손은 내것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그는 그들에게 생명안에서 그의 주권이 양도된 것을 설명해주었다. 이형제는 그의 모든 지체가 완전히 주님께 속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이 참된 성결이다.

바울은 "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롬 6;19)고 말한다. 실제적인 활동에서 우리는  자신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거룩히 분별되어 주님께 드림

  성결이란 무엇인가. 많은 사람들은 그들 안에 있는 악한 것들을 제해 버리면 거룩케 될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우리가 거룩하게 된는 것은 하나님께 성별됨으로 되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의 택함을 받아 공중 앞에서 기름부음을 받으면 거룩하게 되었다.그후부터 그는 하나님께 택정함을 받은자로 여김을 받게 된 것이다. 동일한 방법으로  심지어 동물이나 물질적인 것들. 예컨대 어린 양이나 성전 안의 금까지도 같은 방법으로 거룩케 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거룩케 되는 것은 그들 속에 있는 악한 것을 제함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주님을 위하여 준비될때 이로써 거룩하게 될수있었다. 히브리어에서 거룩함은 분별된 것을 가리킨다. 참다운 거룩은 여호와께 거룩인 것이다.(출 28;36).   내가 내자신을 주님께 드릴때  그것이 바로 거룩이다.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나를 온전히 그분의 것이라는 인식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나자신을 드린다는 이것은 간주하는 것과 같이 그렇게 분명한 일이다. 나의 생애 가운데는 내가 나 자신을 떠나 주님께로 간 날이 틀림 없이 있을 것이다. 그날부터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에게 속하지 아니하고 그에게 속하여 있는 것이다. 그 말은 내가 복음전파자나 선교사가 되기 위하여 나 자신을 바친다는 뜻이 아니다. 아-슬프다, 많은 사람들이 선교사가 된 것은 그들이 자신을 하나님께 진실로  바쳤기 때문이 아니라 현 논의의 의미에서그들이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인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 위하여  전적으로 다른 것 즉 십자가에 못박히지 않은 중생하지 않은 그들 자신의 기능을 그들의 말대로 헌신한 것이다.그러나 그것은 참다운 헌신이 아니다.

  그러면 우리는 무엇에 헌신할것인가.기독교의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들 행하고 그분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을 하기 위해서이다.

다윗에게는 많은 용사들이 있엇다. 왕이 그들에게 지시한 직책에 따라 장군 된 자도 있었고 문지기 된 자도 있었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우리의 분깃의 일을 해야 한다.

장군이든 문지기이든 우리 스스로 택하지 말아야 한다. 만일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이 당신에게 정한 길이 있는 것이다. 곧 디모데 후서 4장 7절에서 바울이 말한 달려가야 할길이 있다. 하나님은 다만 바울을 위하여 그가 달려갈 길을 정하셨을 뿐 아니라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이 가야 할 길은 정해 놓으셨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그에게 정하신 길을 알아야 하고 또한 그 가운 데서 행해야 한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응당 주님께 주여 당신이 나를 위해 정하신 길을 알고 그안에서 행하고자 하는 갈망을 위하여 내 자신을 당신께 드립니다.라고 말해야 한다. 이것이 참된 헌신이다. 만일 우리 일생의 종착지에서 바울과 같이 나의 달려갈 길을 다 마쳤다고 말할수 있다면 우리는 얼마나 축복을 받은 사람인가.    나는 일생의 종착지에 이르러 우리가 걸어온 길이 잘못된 길임을 발견하는 것보다 더 비참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우리가 임으로 우리 생명을 지배할수 있을 지라도 우리의 생명는 하나뿐인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자기의 기쁨을 구한다면 우리의  생할은 결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수 없다. 나는 어떤 경건한 그리스도 인으로 부터 내 자신을 위하여는 아무 것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하여는 모든 것을 하리라.고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당신은 하나님 외의 어떤 것을 원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중심삼는 것이 당신의 갈망인가. 당신은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이  당신에게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시다."(롬 12;2)고 말할수 있는가.       

 

  여기의 문제는 우리의 의지이다. 우리의 강인하고 고집센 의지는 반드시 십자가로 보내야 하고 우리 나신은 주님께  온전히 드려야 한다. 만일 우리가 천을 재봉사에게 주지 않앗다면, 우리는 결코 그가 우리를 위하여 옷을 만들어 주기를 바랄수 없다. 만일 우리가 건축 재료를  건축자에게 주지 않았다면. 결코 그가 우리를 위하여 집을 지어주기를 바랄 수 없다. 같은 원칙에서. 만일 우리가 우리 생명을 하나님께 드려 서 그분으로 우리 안에 거하시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코 그분이 우리 안에서 그분의 생명을  살아 나타내시기를 바랄 수 없다. 우리는 아무런 보류나 다툼이 없이 그분께 자신을 드려 그분의 인도를 따라야 한다. 내가 다시 말하거니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

 

                               종인가 노예인가

  만일 우리가 아무런 보류함 없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다면 가정에서나 일에서나 교회 관계에 있어서나 우리 개인의 견해에 있어서 많은 조절이 있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어떤 것을 보류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분의 손가락은 한가지 한가지 그분의 것이 아닌 것들을 지적하시면서."이것들을 제해 버리라".고 말씀하실것이다.

  이 때 당신은 원하는가 하나님께 대항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분에게 순복하는 자가 지혜롭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하나님과 다투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분이 어떤 것을 원하실때 우리는 종종 다른 것을 원한다.  많은 일에서 우리는 우리의 평강을 잃어버릴까봐 무엇을 연구하고 기도하고 생각할 담력을 갖지 못한다.

  비록 우리가 이런문제에서 탈피할 수 있을지라도  우리가 이렇게 할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멀리하게 된다. 하나님의뜻을 떠나기란 종종 쉬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자신을 그분께 맡기고. 그분의 뜻에 따라 그분이 우리를 다루시도록 하는 것만이 복된 일인 것임을 기억하라.

만일 우리가 종종 자신이 하나님께 속하고 우리 자신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는다면 이것은 너무나 좋은 것이다. 세상에서 이것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다. 어런 느낌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끊임없는 임재를 느끼게 한다. 여기에 조건이 매우 뚜렷하다. 만일 내가 그분의 임재를 느끼려 한다면.나는 반드시 그분께 점유되었다는 느낌을 가져야 한다. 내몸에서 그분의 주권이 일단 설립되면 .나는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무엇을 할 담력을 갖지 못할 것이다. 나는 내가 그분의 유일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롬 6;16).  여기서 말한 종은 사실상 노예이다. 6장 후반부에서 이 단어가 수차 언급되었다. 종과 노예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종은 다른 사람을 섬길지라도 그가 섬기는 사람에게 자기의 주권을 양도하지 않은 사람이다. 만일 그가 자기 주인을 좋아하면 그를 섬길수 있고 싫어하면 다른주인을 찾을 수있다. 그러나 노예는 그렇지 않다. 노예는 다른 사람의 종일뿐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의 소유물이기때문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주님의 노예가 될 수 있는가 그분 편에서는 그분이 나를 사신 것으로 말미암고  내 편에서는 나 자신을 그분께 드림으로써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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