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까지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하나님이 우리를 다스리시는 모든 일의 동기이자 설명으로서 논의 하였다. 우리가 로마서에서 말한 그리스도인의 체험의 각종 단계들을 보기 전에 다시 한번 주제를 떠나서 성령의 임재와 사역에 대해 말해보자.
이것은 우리의 모든 체험에서 우리의 생명과 봉사를 효과 있게 하는데 결여 되어서는 안될 힘인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로마서 두 단락의 구절을 인용할 것이다.
한곳은 5장4절."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이다. 다른 곳은 8.9절"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이다.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결코 되는대로 혹은 임의로 주지 않으신다. 비록 하나님께서 값없이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주실지라도 하나님의 은혜는 확실한 기초위에서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속한 모든 신령한 복 을 주신 것은 사실이다.
(엡1;3) 그러나 만일 우리가 체험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취하려 한다면 반드시 그것들을 취하는 근거를 알아야만 한다.
성령의 은혜에 관해서는 두 방면에서 보는 것이 가장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이는 곧 성령의 옮겨부음과 성령의 내주 하심이다. 지금 우리의 목적은 어떤 기초에서 성령의 이중적인 은사가 우리 것이되는가를 보는데 있다.
나는 그분의 역사를 외적인 표현과 내적인 표현으로 나누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계속 전진할때 우리는 이런 구분이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또한 이 두 가지를 비교할때 우리는 우리 안에서의 성령의 역사가 훨씬 귀하다는 결론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우리안에서의 성령의 역사가 귀하다는 결론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은 밖에서의 성령의 역사가 귀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에게 주신 모든 은사가 다 좋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의 권리가 너무 풍성해서 그런지 우리는 쉽게 이것들을 경시한다. 구약 시대의 성도들은 우리처럼 복되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의 부어짐의 은헤를 우리보다 더욱 감상하였다.
그들 당시에 이 은혜는 택함받은 소수에게만 주어 졌었다. 주로 제사장과 사사와 왕들과 선지자들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오늘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다 이런 은사를 얻을 수 있다.
한번 생각해 보라.취할 만한 자격이 없는 우리들이 하나님의 벗 모세와 사랑받은 다윗과 능력의선지자 엘리야와 같이 성령의 옮겨 부음을 입을수 있다니! 성령의 옮겨부음의 은혜를 얻음으로써 우리는 구약 시대의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의 대열에 깨게 되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런 은혜에 대한 가치를보고 그것이 갈급히 필요하다는 것을 볼때. 우리는 즉시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어떻게 해야 성령의 옮겨부음을 얻을 수 있고 봉사할 능력을 갖기 위해 어떻게 내 자신을 영적인 은사로 장비해야
하는가. 하나님은 무었을 근거로 내게 성령을 주시는가". 라고.
부어진 성령
행 2장32-36:
"이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일에 증인 이로다.(32)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33.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가로되 주께서 내주에게 말씀하시기를(34)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시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35)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36)
34절과 35절은 시편 110편을 인용한 삽입된 말씀이기 때문에 잠시 한쪽에 제쳐 놓고 먼저 33절과36절을 생각해 보자. 만일 우리가 먼저 인용한 두 구절을 상관하지 않는다면 베드로가 한말에 대해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33절에서 베드로는 주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으로 높여 지신 것에 대해 말하는데 그 결과는 무엇인가. 그분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으셨다.
이어서 무엇을 말하는가.오순절이 임하였다. 그분이 높여진 결과는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는니라".이다. 그러면 성령은 먼저 주 예수님에게 주사 그분으로 하여금 성령을 그분의 백성에게 부어주게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이것은 그분이 하늘로 높이 올려지심에 근거한다.
이구절 말씀은 주예수님이 높이 올려지셨기 때문에 성령이 충만케 되었다는 것에 대하여 매우 분명하다. 성령의 옮겨부으심은 당신과 나의 공로와 무관하고 오직 주 예수님의공로와 관계된다.
여기서 문제는 우리가 무엇인가에 있지 않고 그분이 무엇인가에 있다. 그분이 영화롭게 되셨기 때문에 성령이 부어진 것이다. 주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죽으셨기에 내가 죄 사함을 얻을수 있었고 그분이 죽음에서 부활하셨기에 내가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었으며. 주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으로 높이 올려지셨기에 내가 성령의 옮겨부으심을 얻었다.
모든것이 나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분으로 인한 것이다. 죄사함은 사람의 공로에 근거하지 않고 주님의 십자가에 못박히 심에 근거한다. 거듭남은 사람의공로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높이 올려지심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이 당신과 내게 부어졌다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위대한가를 증명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의 아들의 위대하심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이제 36절을 보기로 하자. 이구절 안에 우리가 특별히 주의해야 할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런즉이다. 이단어는 어떻게 사용되는가. 이단어는 이구절의 문장의 시작에 있지 않고 오히려 이미 한말뒤에 놓여져 있다. 그러므로 이단어는 이미 언급된 어떤 일이 있다는 것을 항상 암시 한다.
이 그런즉 앞에는 무슨 일이 있었는가. 무엇과 관계있는가 이것들이 34.35절과는 무관하고 33절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매우 현저한 사실이다.
베드로는 바로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이 부어지는 것에 대해 말했었다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또 그는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고 말했다.
베드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 것 같다 너희보고 듣는 성령을 너희에게 부어주신 것은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나사렛 사람 예수를 이미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데 있다.
성령이 이 땅 위에 부어진 것은 하늘에서 발생한 일 나사렛 사람 예수께서 하나님우편으로 높여지셨다는 것을 중명한다.
그러므로 오순절의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 되심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요셉이라는 청년은 그 아버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자였다.야곱은 어느날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로 인해 수년 동안 마음이 아팠었다. 그러나 요셉은 무덤에 있지 않고 영광과 관세있는 위치에 있었다. 야곱은 그 아들의 죽음때문에 수년 동안 애통해 했었는데. 어느날 갑자기 요셉이 아직 살아 있고 애굽에서 고위에 있다는 것을 누가 그에게 알려 주엇다. 처음에 야곱은 그 말을 믿지 않앗다. 이좋은 소식이 그에게 는 사실 같지않앗다.다른 사람이 야곱에게 말해준. 요셉이 높여졌다는
말은 참이었다. 그는 어떻게 믿게 되었는가. 야곱이 나가서 요셉이 애굽으로부터 보내어준 수례를 보고서야 그 말을 믿었다.
여기에서 수레는 무엇을 대표하는가 물론 성령을 대표한다. 성령는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 안으로 들어갔다는 증거로서 보내심을 받았을 뿐 아니라 더우기 우리를 영광 안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거의 이천 년 전.행악자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히신 나사렛 사람 예수께서 순교로 죽으신 것만이 아니라 더욱 지금영광안에와 아버지 우편에 계시다는 것을 어떻게 알수 있는가.
우리는 그분이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주이심을 어떻게 알수 있는가. 우리가 아무 의심의 여지 없이 이것을 아는것은 그분의 영이 이미 우리에게 부어졌기 때문이다.
할렐루야. 예수는 주이시다.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나사렛사람 예수는 주와 그리스도 이시다.
주 예수님의높이 올려지심은 성령이 강림하신 것의 근거이다. 주님께서 이미 영광을 얻으셨는데 당신은 아직 성령을 얻지 못햇다면 이것은 가능한 일인가. 당신이 죄 사함을 얻은것은 무엇에 근거하는가. 당신의 기도가 간절하기 때문인가. 아니면 당신이 한두번 성경을 열심히 읽었기 때문인가.
당신이 자주 집회에 참석하기 때문인가. 당신의 공로 때문인가 아니다!. 천만 번 아니다!.
그럼 당신은 무엇에 근거하여 죄사함을 받았는가.히브리서 9장 22절 :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사함의 유일한 근거는 바로 피 흘림이다. 보혈이 흘려 졌으므로 당신의 죄는 이미 사해진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부어주심과 죄 사함을 얻는 것은 원칙상 완전히 동일하다. 주님이 이미 못 박히셨기 때문에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고 주님이 이미 영광을 얻으셨기 때문에 성령이 우리에게 부어졌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미 그분의 피를 흘리셨는데 당신의 죄가 아직 사함받지 않을 수 있는가.
이것이 가능한가 절대로 불가능하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미 영광을 얻으셨느데 당신이 아직 성령을 얻지 못할수 있는가 이것이 가능한가. 절대로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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