란 켕거스 특강-형제 온훈 2011년 6월 12일 저녁
사역말씀들
2011-06-23 , 조회 (473)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카페 > 부산교회
원문 http://cafe.chch.kr/busanch/46440.html

 

란 켕거스 형제님 특별 교통-A


몸이냐 ! 자아냐 !


   자아가 있는 곳에는 몸이 있을 수 없고, 몸이 있는 곳이라면 자아가 있을 수 없다. 전에 이것을 말할 때 메시지 가운데 적은 부분이었다. 그런데 오늘 저녁에는 이것을 전체적으로 다룰 것이다. 전에 어떤 곳에서 교통을 했던 것보다, 오늘 저녁에는 더 충만한 방식으로 교통을 할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것을 주시길 원한다. 이 대조를 보는 것은  쉽다. 몸은 삼일 하나님의 유기체이다. 이것보다 위대한 것을 없다. 또한 우리는 자아가 적어도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우리는 자아가 무엇인가와 왜 그것이 몸의 원수가 되었는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 육신의 몸을 위해 무엇인가를 먹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을 몸의 원수라고 표현하지 않는다. 자아는 몸의 원수라는 말을 사용한다. 우리는 모두 몸이 건축되길 원한다. 심지어 그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른다 할지라도 우리 마음 속에 그것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이‘형제 온전케 하는 훈련’에 등록을 한 것이다.


   마태복음 16장을 통해서 이것들을 살펴보자. 마태복음 16장 15절에서 예수님께서 그들에게“그러면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합니까?”라고 하셨다. 그때 아버지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계시를 주셨다. 16절에서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주님은 그리스도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18-19절에서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그대는 베드로입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건축할 것이니, 음부의 문들이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천국 열쇠들을 그대에게 주겠습니다.” 여기서‘이 반석 위에’는‘그리스도에 대한 계시 위에’를 말한다. 여기서 그리스도, 건축된 교회, 왕국을 볼 수 있다.‘나의 교회’는 지방 교회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우주적인 교회, 우주적인 그리스도의 몸을 말한다. 주님은 목표를 계시하셨다. 그것은 그분의 교회를 건축하는 것이다. 이 교회는 왕국과 함께 한다. 영광스런 계시의 한 노선을 보고, 계시를 볼 수 있다.


   그 다음은 주님의 가르침의 큰 전환을 볼 수 있다. 그분은 고난 받으시고 죽임 당하시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다. 22절에서 베드로가 그분을 붙잡고 한쪽으로 가서 “주님, 그럴 수 없습니다. 이 일이 결코 주님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라고 하며 책망하기 시작하였다. 베드로는 방금 전에 주님을 그리스도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 베드로는 그분이 어떤 분인가를 알고 있었다. 그런데 주님은 베드로가 동의하지 않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분을 한쪽으로 붙잡고 가서 책망하기 시작했다. 한쪽으로 붙잡고 가는 것은 그를 저지시키는 것이다.‘책망했다’는 것을 상상해보라. 베드로는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책망했다. 이것은 아주 강한 것이었다. 나는 어떤 형제님들이 다른 사람들을 책망하는 것을 알고 있다. 여기서 한 청년이 감히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책망하고 있다. 베드로는 “주님 그럴 수 없습니다, 이런 일이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라고 했다. 그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분명히 거절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인 분을 책망했다. 이것은 극단적인 행동이었다. 대학생 중 한 학생이 교수님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 책망하고 거절하였다고 상상해보라. 교수님이 다음 주에  시험 볼 것을 공고했는데 한 학생이 교수님을 책망했다고 생각해보라. 어떤 합당한 학생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합당한 한국인이 한국 대통령을 책망하는가? 아니다. 대통령을 존경할 것이다. 왜 베드로가 주님의 말씀을 거절했는가?  그것은 인간적인 것 이상의 것이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다만 사람이 이런 말을 하고 행동한 것이 아니고, 이것은 그 사람 뒤에 무엇인가가 있는 것을 보여준다. 23절에서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베드로에게“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거라."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은 사탄에게만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지 않으시고, 베드로에게“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다. 이때 베드로와 사탄은 하나였고, 베드로는 실행적으로 사탄이었고, 사탄을 실지적으로 표현하였다. 그 후에 주님은“너는 나를 실족하게 하는 자다. 왜냐하면 네가 생각을 하나님의 일에 두지 않고, 도리어 사람의 일에 두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다. 이때 베드로는 사탄이었고, 걸림돌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생각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일은 그리스도께서 고난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의 생각에서 그것을 거절했다. 그는 그의 생각을 하나님의 일에 두지 않고, 사람의 일에 두었다. 이 사람의 일은 자신의 일을 포함하고, 자아를 방어하고, 자아를 보호하는 것이다. 사람의 일은 어떤 것에도 고난을 받으려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사탄, 생각, 사람의 일, 자아가 있다.
 24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십시오."라고 하셨다. 주님은 여기서 사탄을 부인하라거나 너의 생각을 부인하라고 하지 않으셨고, 자아를 부인하라고 하셨다. 또한 사탄과 생각과 자아가 함께 연루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들은 활력그룹이다. 사탄적인 생명 안에서 활력적이다. 주님은 반드시 자아를 부인해야 한다고 말한다.‘부인하는 것'은‘거절하는 것'이고,‘아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자아가 나올 때, 우리는‘아니다'라고 해야 한다. 25절에서 주님은 혼 생명을 잃는 것을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혼 생명을 구하기만 하면 잃어버린다. 또한 혼 생명을 원하는 것만으로도 혼 생명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사탄과 생각과 자아와 혼 생명이 있다. 이 모든 것이 베드로 안에 활동하고 있었다.


자아에 대한 세 가지 정의


   첫째로, 자아는 사탄의 생각의 체현과 표현이다. 이것은 23절에서 사탄과 생각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년 전에 뉴욕 세계 무역 센터의 테러 공격이 있었다. 그러한 공격을 생각한 것은 어떤 종류의 생각인가? 공격자들은 사람을 미국에 보냈다. 그들은 상업용 비행기 운전법을 배웠다. 그리고 그들은 승객으로 가장하여 비행기를 탔고, 승무원을 죽이고 비행기를 강탈해서 건물을 향해 돌진했다. 비행기는 비행 연료로 가득 차 있었다. 이것은 어떤 생각이 구상을 해낸 것이었다. 다만 사람의 생각으로 그것을 할 수 없고, 사람의 사고 안에 운행하는 사탄의 생각이었다. 자아는 이 사탄적인 생각의 체현이다. 주님께서는 이 자아를 부인하라고 하셨다. 사탄과 생각과 자아는 하나이다. 이때 베드로의 인간적인 생각은 사탄과 하나였다.


   두 번째, 자아는 의견으로 표현된 혼 생명이다. 이것은 인간적인 방면에 강조를 두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혼이 산 혼이 되도록 창조하셨다. 하나님은 자아를 창조하지 않으셨다. 사람은 산 혼이다. 사탄의 본성인 죄가 사람 안에 주입되었을 때 사람의 영은 죽게 되었고, 사람의 몸은 오염되어 육체가 되었고, 사람의 혼은 자아가 되었다. 자아는 사탄적인 생각의 표현이다. 이 자아의 본질은 혼 생명이다. 자아는 자신의 의견을 혼 생명으로 표현한다. 베드로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있었고, 주님의 말씀을 거절했고, 주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의 혼 생명은 의견으로 표현되었다.


   셋째로, 자아는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포하는 혼이다. 생명 나무의 원칙은 의존하는 것이다. 혼이 독립을 선포할 때 그것이 자아이다. 여기에 사탄과 생각과 의견과 혼 생명과 자아가 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사람 안에 숨겨져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원수가 되었다. 이것은 다만 기쁘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활동적인 원수이다. 베드로가  실제적으로 "이것은 제가 받기 어려운 말입니다."라고 하지 않았다. 만약 이렇게 했더라면 그는 영 안에 있었을 것이다. 베드로는 주님을 책망했고, 거절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사탄이 그 뒤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아가 무엇인지에 대한 빛 비춤이다.


   한 단계 더 전진하여 교통하면, 자아가 어떻게 몸의 원수가 되었는가? 자아는 원수인 사탄에게 교회를 손상시킬 기회를 준다. 자아는 음부가 들어올 수 있는 열린 문이다. 자아가 있을 때 사탄이 활동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이 의견을 표현할 때, 특히 혼 생명 안에서 강한 방식으로 의견을 표현할 때, 사탄이 그곳에 들어오게 된다. 그것은 형제들을 손상시키고, 상처를 주고, 하나를 깨뜨리고, 교통을 죽이기 위해 들어온다. 자아가 있는 곳에는 교통이 없다. 수년 전에 어떤 형제님이 주님의 상 집회 시간을 바꾸는 것을 교통하는데, 교통의 영으로 고려하면서 이것을 제시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 형제가 너무 강하게 반응했고, 교통을 죽였고, 형제들에게 상처를 입혔고, 교통이 끝나게 되었다. 분노가 폭발한 후에 더 이상의 교통이 진행될 수 없었다. 그는 교통의 영 안에서 반응한 것이 아니라 자아 안에서 반응한 것이다. 그것이 교통을 죽였다. 약한 사람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오직 강한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가 있다. 몸과 혼은 다르다. 데살로니가 전서에서 혼이 약한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 사람은 혼이 작은 사람으로 작은 어려움만 준다. 그들은 혼이 쉽게 영향을 받지만, 감히 하나님의 아들을 책망할 수는 없다. 그런데 강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 큰 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혼의 역량이 큰 사람들은 혼 생명이 너무 강하다. 그들은 지성을 가지고 있고, 똑똑하여, 강력한 방식으로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다. 그것이 원수이다.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원수로부터 온 것이다. 사탄이 거기에 있고, 형제들을 손상시키고, 하나를 죽이고, 교통을 정지시키고, 낙심시킨다. 한 사람이 그런 손상을 받으면 축복이 멈추게 된다. 이것이 자아가 몸의 원수가 되는 길이다. 심지어 우리가 의견이 많고, 아이디어가 가득찼고, 강하다 할지라도, 제한을 받으면 유익하다. 그런데 의견의 자유로운 표현과 자아는 손상을 주고, 혼란을 가져오고, 모든 사람이 좌절을 맛보게 한다.


   자아가 몸의 원수라는 것을 또 다른 방식으로 말해보자. 최근에 나는 심각한 상황에 대한 이메일을 받았다. 어떤 곳에 나이든 봉사자가 있는데, 그는 모든 것은 통제하고자 하는 강력한 자아가 있었다. 자신의 자아를 다루는 것이 자아에 의한 것이다. 십자가에 의한 것이 아니다. 또 자신을 몽둥이로 때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때리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이 자아 안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의 자아를 처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몸의 원수이다. 그런 사람이 움직일 때 실제적으로 머리도 몸도 없다. 이런 사람은 주의 회복의 김정일과 같은 사람이다. 독재자이다. 다른 형제들은 그런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은 그가 사는 방식이고 자아 안에 있는 것이었다. 이것은 주님이 오실 것을 저지하고, 교통이 불가능하게 만든다. 그런 독재자와 교통을 할 수 있는가? 그 독재자와 달콤한 교통을 할 수 있는가? 그런데 어떤 형제들은 그런 식으로 한다. 이것이 자아이다. 다른 형제들은 아는데, 그는 눈이 멀어서 알지 못한다. 그에게 무엇을 말하면 그는 분노에 가득찰 것이다.

 (형제 온전케하는 훈련 특강, 6월 12일 저녁 7시 남구 학생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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