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변화를 시도하지 않음
사역말씀들
2011-07-27 , 조회 (422)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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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해있는 상황에 그대로 머무를 때..

예수님의 생활은 마치 한 알의 밀알과 같았다.

밀은 제한 받으신 그리스도, 제한 받으신 예수님이시다.

하나님을 따라 말하자면, 그리스도께서 제한을 벗어나는 길은 하나뿐이었다.

그것은 죽는 것이었다. 죽음이야말로 제한을 벗어나는 길이다.

 

누가복음에서 주님이 말씀하시길, “나는 억압 받고 있다. 나는 죽음을 통해 해방되길 원한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분의 생명이 해방 되었고,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는 보리가 되었다.

제한 없으신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다.

부활 안에서 모든 장벽이 무너졌다.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는 결코 제한이 없으시다.

그리스도께서 육체되심 안에서 한 알의 밀이셨을 때,

그 하나님 사람은 어디에나 계실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부활 안에서 그분은 제한이 없으신 그리스도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셨다.

이것이 바로 밀과 보리이신 그리스도이다.

 

밀과 보리의 땅은 바로 그 영이다.

그 영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우리의 영 안에 있다.

우리는 지금 제한된 생명을 살고 있으며, 많은 제한을 받고 있다.

인간 존재인 우리는 어떤 시간에 잠을 자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두 손을 펴서 하늘로 날아가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지 않은 수많은 제한들을 받고 있다.

자아는 이러한 것들을 싫어한다. 주님은 주권을 가지고

우리를 아주 심각한 제한 안에 계속해서 넣어 두신다.

심지어 주님은 우리의 영성까지도 어떤 제한 안에 넣으신다.

우리는 어떠한 사람에 의해 제한 받기도 하고, 우리의 건강 때문에 제한 받고,

시간 때문에, 환경 때문에, 재정 때문에 제한을 받는다.

만일 여러분이 일생 이러한 제한 안에 살아야 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는가? 이것은 아주 엄중한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어떤 제한에 놓이게 될 때 그 밖으로 빠져 나갈 길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쉽게 “나는 더 이상 이런 상황을 받기원치 않는다. 나는 떠나겠다.

나는 나가겠다.”라고 말할 것이다.

사실 이러한 사람들은 그 순간 매우 지혜롭지 못한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7장에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관한 하나의 원칙이다.

이 원칙은 우리가 결코 변화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말하기를 여러분이 구원 받을 때 있었던

그 상황을 바꾸기 위해 스스로 어떤 일도 시작하지 말라.

 

나는 주님 안의 한 형제와 점심을 함께 한 적이 있다.

그는 결혼 생활 안에서 자신의 어려움을 나에게 교통했다.

그는 아내에게 “나는 떠나겠다.”라고 위협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결혼 생활의 문제에 대해 나와 교통하기를 원했다.

나는 그 때 주로 한 가지를 말했다.

어떠한 변화도 스스로 시도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기꺼이 예수님과 함께 제한 안에 살기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어떠한 생활 안에서나 인생에 있어서 큰 변화가 일어나는 사건이 있는 것을 안다.

우리가 만약 결혼 한다면 큰 변화가 일어난다. 자녀가 생기면 변화가 발생한다.

어떤 형제님이 전시간으로 주님을 섬길 때 큰 변화가 있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이 주님 품에 가기도 한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나는 나의 일생에서 스스로 어떤 것에서도

상황의 변화를 시도하지 않았다.” 라는 어떤 간증이 필요하다.

이 말은 주님께서 이 모든 변화를 시작하셔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처해있는 상황에 그대로 머물러야 하고 제한 안에 머무르며,

밀이신 그리스도를 그 가운데 접촉해야 한다.

 

[2011. 6. 전국 봉사자 온전케 하는 훈련 메시지 #2 R K 교통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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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주님이 이런 삶의 본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스런 주님이 밀로서 이런 제한아래서 사셨기 때문입니다. 아멘...
수정처럼
아멘.. 주님의 본을 따라 처해있는 제한 아래 자신을 둠으로써..
밀과 보리이신 그분을 더욱 체험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