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형제님은 자신과 다른길을 가는자를 어떻게 대했는가?
니.리 두형제님
2011-08-19 , 조회 (43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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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글은 니형제님 메시지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니형제님은 요한계시록의 해석에서 천주교 개신교 라오디게아 필라델피아 이모든 교회들이 주님이 오실때까지 같이 간다고 했습니다.

중세 암흑기는 천주교가 궁궐높은 곳에 올라 권력을 잡았을때 천주교 교리를 위반하고 자신들의 뜻과 반하거나 자신을 따르지 않는 개인이나 단체를 물리력으로 제재하거나 심지어 사람들을 잡아서 죽이고 고문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뜻은 각자가 본 빛.. 각자가 본 방향이 틀리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피아래 주님의 생명을 영접한 자들이라면 엄밀하게 한 자녀이기에 그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것을 성령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할수 있는 집단이 종교집단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서운 종교입니다. 예수가 바로 그 유대 종교인들에 의해 죽지 않았는지요... 자기와 빛이 틀리고 교리가 틀린다고 비방과 음해를 계속한다면 그들이 권력을 가졌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물리력을 동원해서 반대자들을 제거하고 그들과 같이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이들을 죽이거나 가둘것입니다.

 

비방을 하는자들과 건전한 비판을 하는자들의 차이점은 무얼까요...글세요

나는 자신의 이론을 다른 이들에게 관철시키기 위해 억지로 다른 단체를 찾아다니며 사사건건 물고 늘어지는 것이 비판하는 사람들의 전자라면... 후자는 자신들을 방어 하기 위해 부득불 바울처럼 자신을 위해 변호하는 것은 후자라고 봅니다.

자신을 관철시키려고 다른 이들을 허물어 뜨리고 자신이 그자리에 올라서려는 것은 이들은 틀림없이 권력을 잡으면 로마 교황같은 짓을 할 사람들 입니다.

 

사람은 신념을 신앙이라 착각하는 수가 많습니다. 이런 이들은 자신들이 자신들과 틀린교리를 말하는 이들에게서 그것을 자신들이 마치 바로 잡을수 있는 하늘로부터 부여 받은 권력을 가졌다는 것을 정당화하는 사고 구조를 가진 자들입니다.

그들은 불가능한 일을... 또 해서는 안될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방교회가 장로교단의 어떤 교리가 어디가 틀렸고...저교단의 교리가 어디가 틀렸고...하고 시간을 보내는 것을 주님은 전혀 허락치 않았습니다.   

 

최근에는 이런식의 사고를 가진 정서적으로 불안한 이들이 온 인터넷을 헤집고 다니면서 지방교회를 비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다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방어적 차원이 아니라 완전히 음해와 공격적차원에서 토론을 하자고 합니다.그들은 뭐가 그렇게도 자신이 있는지 토론방에 스스로 제발로 찾아와 토론 하자고 합니다. 자신이 있기 싫고 지방교회를 나갔으면 그냥 거기서 잘살면 되지 왜 찾아와서 토론을 하자는 것인지...우리가 거의가 장로교에서 나왔는데 만약에 우리가 허구한날 장로교를 찾아가서 토론을 하자고 한다면 다들 실성했다고 하지 않겠는지요..저는 교파에서 한꺼번에 다수가 같이 나왔지만 그들에게 어떤 것도 불필요한 적개심을 표출하고 그들에게 불안한 마음을 일부러 심어주려고 한적은 없습니다.워치만니 형제님의 메시지 뒷편에 써놓은 종교를 나올때 하는 요령에 도움을 받았습니다. 어떤 토론이나 시비도 없이 그냥 편지 한통 써 놓고 조용히 나왔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종교안에 남아 있는 이들의 쌓은 것을 지나치게 간섭하고 허물기를 원치 않으신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천주교가 없다면 우리는 회교와 불교단체의 공격을 받을것이고 그분의 비밀한 몸은 노출 될것이고 악한자가 전쟁과 종교탄압으로 교회를 핍절할것입니다.그것을 천주교와 개신교가 막아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몸은 이런 저런 세상과 종교세계의 절묘한 틈새에 비밀리에 감춰어져 있습니다. 어떤이는 천주교에 어떤이는 개신교에 어떤이는 자유단체에...어떤이는 각종 성경 연구단체에..어떤이는 지방교회에...몸담고 있다가 주님을 맞이 하게 될것입니다. 이모든것은 주님의 안배이며 주권입니다. 사람이 어찌 이런 저런 것에 대해 판단하고 제단하고 심판할 자격이 있겠는지요??

 

건전한 신학적 교리적 차원의 논쟁이 아니라 비방거리도 안되는 것을 비방거리로 포장해서 비방합니다.이들은 생계도 돌보지도 않고 사는지.. 부끄럼도 염치도 모르고 밤낮 하는 일이 집에 앉아서 인터넷으로 지방교회 헐뜯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자신과 같지 않은 사람들을 비판하기 시작한다면 끝이 있을까요 그리고 그 비판의 기준은 무엇이며 비판의 한계는 어디까지 인지요? 그 심판자는 누구입니까? 이들은 마치 그들 자신이 심판자가 된것 같습니다. 이 정서불안인 사람들은 다른 교파나 단체에는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늘상 지방교회에 기생하는 진드기처럼 달라붙어 지방교회 교리가 성경에 위배 됐다고 밤낮 떠듭니다. 위배됐다면 어쨌단 말인지요...실행이 어떻다는건지요...

성경에 위배된 단체가 어디 한두군데 입니까? 왜 거기 가서는 성경이 틀렸다고는 말을 안하는지요...장로교에서 이단이라고 소리를 들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그들은 그들의 주장을 위한 주장을 합니다, 이것은 성령의 역사의 한부분이 결코 아닙니다. 그들은 오래전에 이미 인터넷에 중독되었고 그들의 하는일은 날만 새면 어떤 단체를 씹는 일입니다.씹으면서 그들은 어둠의 영의 노예가 되어 오늘도

내일도 할일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것입니다.

그렇게 씹으면서 세월을 보내는 것을 성령의 역사로 착각합니다.

이들이 세월이 많이 흐르면 결국 어떻게 될까요...이러한 것을 성령이 아니고 망상과 집착이라고 합니다. 그러다 결국 온 영혼이 파괴되고 황폐화 되겠지요...

 

성경에 위배됐다고 다 이단인가 아니면 이단은 아니라도 교리상 자신들과 틀려서 나쁘다는 건지..그 기준도 없습니다. 지방교회가 이단이라면 자신들이 볼때 이단 아닌 단체는 어느곳인지...? 이단은 아닌데 교리가 틀렸다면 교리가 안틀린 단체는 또 어디인가? 

이단이든 아니든 지방교회도 그안에 있는 하나의 단체라 볼때 왜그들이 유독 지방교회만 헐뜯고 있을까요 그들은 그들과 전혀 다른 장로교 같은 대형교단들에게는 가서는 말도 못꺼내는지요..그들은 오히려 거기에 가서 자신들이 이단소리 들을까 두려운것입니다. 이들이 하는 짓들이 장로교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이단소리를 들을때 어떤 반응를 할지 궁금하군요...그들은 사고력의 균형감각이 전혀 없습니다. 내가 말하면 진리요 다른 이들이 나에게 말하면 받지도 않고 거짓이라고 합니다.

 

지방교회안에 복음전파에 관한 합당한 태도는 이들과 같지 않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생명의 구주로 영접한 모든 믿는이들을 다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하며 생명안에서 동일한 분깃을 받았다고 믿고 그들과 분쟁하거나 물리적인 싸움을 할수 없습니다.우리는 기존교단체에 사람들과 설교자들의 분깃과 역할을 존중합니다.다만 우리가 본 빛을 우리가 최선을 다해 갈뿐입니다. 다른 사람이나 다른 단체의가는 길을 허물 자유는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공평하게 심판하실겁니다. 그런데 이들은 마치 이들이 심판자가 된것처럼 벌써 부터 행동합니다.다만 어떤 심각한 음해를 당하거나 교회에 심각한 존립의 기반이 흔들릴 지대한 타격을 주는 어떤 조작된 사건같은 것을 만날때 세상법을 의지 하는수 밖에 없겠지요...

 

우리가 지금 모든 단체의 교리나 실행이나 모양과 본질이 다 똑같으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지요 주님이 벌써 왔겠지요...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것이 왜 자신과 안똑같냐고 항의를 해댑니다. 그런길을 갈수는 있지만 그것이 틀린다고 심판하는 권리는 그들에게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떳떳하고 투명하고 진실하면 그들의 길을 가면 되는것을...지방교회가 그들 말대로 바로 되면 다음에는 어떤 단체를..누구를 상대로 그렇게 씹고 뜯고 할것인지요...틀리면 틀린데로 각자의 맡은 위치에서 주님이 준 분깃안에서 사명을 다하면 됩니다.

 

아래글은 니형제님의 메시지인데 참고 할만합니다.

우리가 이시대에 어떤 태도로 주님을 섬겨야 하는지 다른 단체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분명하게 서술해 놓았습니다.

그들이 니형제님은 인정을 한다는데 아래글은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특히-이글이 와 닿네요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다만 모든 이들이 그들 자신의 길을 선택하도록 두는 것이다

 

 

오늘날 네종류의 일꾼들이 있음

 

1, 첫째 종류의 일꾼은 현시대의 하나님의 사역의 필요에 적합한 동역자들이다.

이러한 일꾼들은 주님께 처리를 받고 한마음 한뜻안에 있는 적은 무리의 사람들이다.

 

2. 둘째 종류의 일꾼은 좀 더 젊은 동역자들이다.

그들은 기꺼이 연장한 동역자들의 지시를 받고 그들 과의 동역아래 있으며 겸손하게 따르며 배우려고 한다.

 

3. 셋째 종류의 일꾼은 앞선 동역자들에게 기꺼이 복종하려 하지 않고 교파에 속해 있지도 않으면서 우리와 계속 교통하기를 기뻐하는 사람들이다.

 

4. 넷째 종류의 일꾼은 교파에 있는 설교자들과 자유 전도자들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일꾼은  첫째와 둘째 종류의 동역자들이다.

셋째와 넷째 종류의 일꾼들에게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다만 그들이 그들 자신의 길을 선택하도록 두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는 우리와 같은 길을 가도록 정하지 않으셨으므로

우리는 그러한 사람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일을 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일을 간섭할수 없으며 여기에서 다른 사람의 일을 허물지도 않을것이다.

 

[워치만니 사역재개 메시지 기록 (상) 26장]

 

그영충만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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