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엄마에게 주는 교통..
공급과누림
2011-09-10 , 조회 (58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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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많은 단계가 있다.

태어나서 여섯살까지는 먹고 놀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여섯 살이 되어서 공부를 해야하고 또한 얕은 데서 깊은데로, 한 점에서 여러 면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런 다음 직장을 잡고 결혼하며 부모가 되고 결국에는 조부모가 된다.

 

  주님을 믿는 우리의 모든 인생의 단계는 우리에게 그분을 누리고 체험할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 각 사람의 생활 방식이 다르고 주님에 대한 체험도 다르며 주님을 대표하는 그 성질도 다르며 주님이 우리에게 주는 공급 또한 다르다.

 

  오늘 우리는 젊은 엄마의 단계에 있다.

이 단계에서 그 나름대로의 생활방식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영적으로 대표하는 바도 있다.

이사야서에는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가 이 체험이 있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여인과 젖먹이가 어떠하듯이 하나님도 그렇게 우리를 대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사49:15)고 말한다.   혹 엄마들이 소홀히 하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당신을 잊이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비록 때로 주님이 사라질 정도로 바쁠지라도 내가 말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을 잊지 않으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이 우리 모든 사람에게 하루에 이십사 시간 밖에 척량해 주지 않으셨다.

여러분이 결혼하기 전에는 모두 주님을 사랑하고, 교회안에서 봉사도 했을 것이며, 집회 가운데서 자주 기능을 발휘하며 영을 해방했을 것이다.   결혼한 후부터는 아이가 생기는데 어떤 사람은 두명이 있고 어떤 사람은 셋이 있다.   그러나 시가니은 똑 같이 하루에 스물 네시간 뿐이다.   하나님은 아이 하나가 더 있다고 해서 당신에게 두시간을 더 주고, 아이 들을 더 낳는다고 네 시간을 더 주시지 않는다.   꼭 같이 한 사람이고 똑같이 하루에 스물 네 시간이지만 일은 더 많아졌다.   부담이 많아졌고 책임도 많아졌다.  

 

  성경에서 젊은 엄마에 관한 기록이 그리 많지 않지만 적어도 한 사람 한나를 찾을 수 있다.

한나는 남편에게 "아이를 젖 떼거든 내가 그를 데리고 가서 여호와 앞에 뵈게하고 거기 영영히 있게 하리이다" 삼상1:22 라고 말했다.   그녀의 남편도 그녀에게 응답하여 한나는 집에서 아이를 키우고 젖뗀 후에 그를 실로에 데리고 올라가서 여호와의 전에 이르러 아이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고 제사장 엘리 앞에서 머무르고 여호와를 섬기게 하였다.   후에 그녀가 전과 같이 남편을 따라 실로에 올라가 매년 제사를 드렸다.

 

  한나가 매년제를 드릴 때마다 사무엘이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기도록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다.   올해에 조금 길게 만들고 내년에는 조금 더 길게 만들었다.   이것은 우리에게 아이는 자란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심하면서, "하루종일 아기를 손에 앉고 있어야 하고 온 종일 떠들고 우는데 어떻게 해야하는가? 일생 동안 이렇게 아이를 키워야 한단 말인가?" 라고 말하지 말라.   그럴리가 없다.   이것은 단지 한 단계에 불과하고 아주 짦은 기간에 불과하다.   아이가 자랐을 때 하나는 여전히 여호와 앞에 나아가서 매년제를 드리고 변함없이 하나님을 섬겼다.   이것은 성경에서 본 조그만한 하나의 본이다.

 

  우리가 자녀를 낳아서 기르고 가르치려면 그들이 태어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주여 이 아이에게 어떻게 행해야합니까? 이 아이가 장래 어떻게 되겠습니까? 라고 물어야 한다.   우리는 자녀의 장래를 위해 주님 앞에서 기도하고 앙망해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이 은혜를 받고 주님의 길을 갈 수 있게 하기 위해 주의하며 주님을 앙망해야 한다.   주님 앞에서 우리의 생활이 어떠하다면 당신의 자녀들도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생활한다.   이것이 부지불식간에 자녀들안에 심겨지고 그들은 우리의 영향을 받게 된다.   이것은 우리가 자녀를 가르치고 기르는데 아주 중요한 요점이다.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시요 세세토록 우리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시편 90편은 우리에게 "우리의 년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고 말한다   오늘 비록 의학이 발달했다 할지라도 오래 살아야 백세를 넘지 못한다.   우리의 나날은 아주 제한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하나님은 영원한 하나님이요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요 세세토록 우리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어느 세대를 통해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한 단계 한 단계의 역사로 말미암아 한 세대 한 세대를 통하여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매들은 내가 결혼하기 전에 전시간봉사를 했었고 일생 주님을 섬기기를 원했는데 어떻게 된 일인가?   결혼 한 후 몇 아이를 기르다 보니 골치만 아프고 그 어떤 것도 거론 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하지 말라.   그렇지 않다.   한면으로 우리에게는 여전히 시간이 있다.  

 

  또 한면으로 주님은 우리에게 자녀들을 주셔서 그들 속에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계시와 이상과 목표를 심도록 하셨다.   짦은 우리의 일생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할지라도 우리의 자녀들이 계속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지 못할지라도 우리의 자녀들이 계속하여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할 수 있다.   결국 하나님이 바라는 것들이 그들에게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로므로 우리의 시야는 넓어져야 한다.

 

  구약에서 사람을 언급할 때 자주 아무게의 아들 아무게라고 말한다. 

예컨대 눈의 아들 여호수아, 스알디엘의 아들 스룹바벨... 등등이다.이것은 모든 이가 아는 바, 하나님 앞에서 아버지된 자가 가지고 있었던 어떤 갈망을 달성하지 못했었지만 아들에게서 성취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세세토록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   우리의 눈은 먼 곳을 주목하여 우리의 자녀들을 보아야 한다.   우리 육신의 생명을 연속시켜야 할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하나님의 이상과 목표가 이어지게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 속한 위임이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일종의 전달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을 어릴 때부터 아이들 속에 심겨주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주님은 분명 그들을 얻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스물이나 서름이나 쉰 살 때 주님을 믿는 것 보다 주님의 손에 더욱 유용하다.   그러므로 오늘 아이들을 섬기는 이것은 사람을 괴롭게 하고 번거롭게 하는 일이 아니다.   만일 여러분이 머나먼 장래와 하나님의 위임을 보았다면 이것이 영광스런 일임을 알 것이다.

 

  빌립보서 4장에서 바울은 "모든 것에 비결을 배웠노라"고 말한다.  

그 비결은 무엇인가? 즉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 또한 자매들이 어느 단계에 있든지 이 비결을 훈련하기를 바란다.  

만일 우리가 훈련하지 않는다면 이 비결을 만지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생활 가운데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해야 한다.   혹 당신이 이말씀은 다 외우지만, 실행할 때 성경의 말씀이 너무나 높고 자신은 너무 낮기 때문에 이러한 말씀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할 것이다.   여기서 나는 여러분이 가서 훈련 할 수 있는 몇 가지 구체적인 실행을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로 주님과의 연결이 끊어져서는 안된다.

아이들이 살아 있고 순간 순간 활동하기 때문에 직장을 다니지 않는 분들도 쉴틈이 없을 것이다.   이것은 당신이 밥을 하거나 옷을 빠는 것 같이 잠시 제쳐 놓았다가 오후에 두시에 다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옷은 제쳐놓을 수 있고 밥을 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지금 아이들에게 떠들지 말고 오후 2시에 떠들으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아이가 울 때 기저귀를 갈고 우유병을 흔들고 젖을 먹일 때 쉬지 않고 " 오 주여! 오 주 예수여! " 라고 부를 수 있다.

 

   두번째는 교회와 연결이 끊어져서는 안된다.

어떤 자매들은 "아이를 집회에 데려가기가 너무 힘이듭니다.  아이를 깨끗이 씻어 주어야 하고 잘 입혀야 하는 데 그렇게 하여 우리가 아이를 집회소에 데려 갈 때 쯤이면 집회는 곧 끝나게 됩니다" 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가 집회에 가서도 전과 같이 기능을 발휘하고 간증하며 주님 앞에 전념할 수 없겠지만 한번 생각해 보라.   당신이 와서 자매들을 보고 자매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도 좋지 않은가!   어쨌든 당신은 왔다!   당신이 교회와 연결이 끊어지지 않았다면 아직 이상을 잃어버리지 않았음을 느낄 것이다.

 

  세째로 교회안에서 누림이 있어야 한다.

나는 젊은 엄마들이 서로 돌아가면서 아이들을 봉사하는 것을 훈련하기 바란다.  그럴 때 우리는 평안한 마음으로 집회에 앉아서 주님을 누릴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우리는 여러분이 손이 오기를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이 와야 한다.  그리고 마음이 와야 한다. 그리고 눈이 와야 한다.   주님과 관계가 끊어지지 않고, 교회와의 관계도 끊어지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손이 비워질 때 여러분의 손 또한 오게 되리라고 믿는다.

 

  만일 당신이 주님을 신뢰할 수 있다면

당신은 주님의 보호하심과 그분의 은혜와 돌보심을 볼 것이다.  

 돌이켜 이러한 은혜와 돌보심을 계속해서 볼 때 당신은 자녀들로 인하여 주님이 얼마나 믿을 만한 분이신지를 더욱 알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의탁한 것을 지킬 수 있으시다.   당신은 더욱 참된 은혜가 무엇인지를 알아야한다.

 

  아이가 있다면 집회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 말고,

아이가 생기면 집안에서 아이를 돌보고 아이를 제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물론 어머니에게 위탁된 아이들을 잘 돌보아야 한다.   당신이 돌보지 않으면 누가 돌보겠는가?   당신은 반드시 주님을 위해 아이를 돌보아야 한다.   또한 끊임없이 주님 앞에 아이를 바쳐야 한다.

 

  오늘 여러분이 주님 앞에서 젊은 엄마의 생활을 정상적으로 훈련함으로 이후의 젊은 엄마들이 여러분을 본으로 삼기 원한다.   교회 안에서 모든 것이 본의 문제이다.  

바울은 장로들에게 양무리의 본이 되라고 했다.   그는 또한 디모데에게,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대하여 믿는이에게 본이 되어" 라고 말했다.

젊은 사람과 청년들과 어린 자들의 본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또한 모든 이의 본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어느 부류의 그리스도인이든 본이 되어야 한다.

 

  내 안에 강렬한 갈망과 무거운 부담이 있다.

나는 여러분이 아이 때문에 실족할까 두렵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자신을 신중하게 주님께 맡기며 이렇게 말하기 바란다.  

"주여! 나로 이 시기에 우리는 당신을 더욱 누리고 체험하기 원합니다.  

또한 당신에게서 끊어지지 않고 교회와 끊어지지 않기 원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데리고 함께 교회 생활하는 것을 훈련하기 원합니다."  

 

  이럴 때 우리의 유년부터 노년까지 어떤 단계를 거치든 주님에게 얻어진 바 될 것이다.  

우리가 나이가 들었을 때 우리는 이러한 간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성경에 나오는 여인들 중에서]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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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로 부터 끊어지지 않고
교회와 끊어지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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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과 교회와 결코 끊어지지 않아야 합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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