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기본 원칙은 성직자를 제사장으로 세우는 것이다.
장례식에는 목사가 천국에 가는 것에 관해 설교하는 것이 필요하고,
결혼식에는 권면하는 말씀을 주기 위해 목사가 필요하다.
갓난아이를 목사가 축복해 주도록 교회에 데려온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문제들을
성직자들의 특별한 직무로 간주한다.
그들의 관념에는 교회 지체들은 다만 교회 예배에 참석하면 된다.
내가 교파의 일원으로 있었을 때 나는 세사람
- 목사, 그의 아내, 사찰 - 만 있는 기도 집회에 참석했다.
그들은 나를 보자 깜짝 놀라,
『당신은 목사가 아닙니다. 왜 기도집회에 왔습니까?』라고 말했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 이 타락한 상태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했다.
주일 집회에는 삼백 명이 올 수 있지만
삼십 명만이 화요일 기도 집회에 올 수 있다.
성도들의 90% 인 다른 이백 칠십명은 사라져 버린 듯하다.
90%는 메시지를 듣기 위해 온다.
바꾸어 말하면 90%는 예배에 참석하러 오지만 기도하러 오지 않는다.
며칠 전 나는 한 동역자를 위한 장례집회에 참석했다.
두 명의 장로만이 장례식을 위한 목사들처럼
일을 감당하는 것을 보았을 때,
내 안에는 다만 앉아 있는 형제들에 대해 책망이 있었다.
나는 말하고 있었던 두 장로들보다 더 깊고도 친밀하게
운명한 형제를 알고 있었던 형제와 자매들이 많았다고 믿는다.
왜 그들은 기꺼이 말하러 나오지 않았는가?
왜 장로들이 말하는 것이 필요했는가?
다른 형제들은 그것을 할 수 없었겠는가?
나는 형제 자매들로 하여금 말할 수 있도록 했다면
추도집회가 더 훌륭하고 더 아름답게 행해졌으리라고 믿는다.
우리들 가운데 여전히 기독교의 독이 있다.
일단 누룩이 밀가루와 섞어지면
그것을 깨끗이 제거해 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나는 우리가 그러한 전통을 제거하고 과거로부터 돌이켜서
주의 말씀을 말하는 것을 배우기를 소망한다.
나는 여러분 각자가 모두 영을 훈련하는 것을 실행하여
성령께서 여러분의 영을 충만케 하며
일어나서 하나님을 위해 말하기를 바란다.
- 집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해 냄 제3장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