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동포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 5가지
교계및 정보
2011-10-01 , 조회 (625)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블로그 > 지방 교회 생활하기
원문 http://blog.chch.kr/poimen2/33359.html

<!--StartFragment-->

북한 동포들이 겪는 정신적 고통 5가지

크리스천투데이 입력 : 2011.09.20 06:45

손과마음선교회(이사장 최덕순 목사)가 발행하는 계간 <손과마음> 제3호에 실린 해당 글을 소개한다. 손과마음선교회는 변화와 해방을 꿈꾸는 북한 동포들에게 생명과 자유와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인도적 구호단체다.

20여 년 전, 입담 좋기로 소문난 소설가 황석영 씨가 김일성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하여 한동안 그곳에 살면서 북한의 이모저모를 소개한 400여 페이지의 책을 발간했는데, 그것이 바로 ‘사람이 살고 있었네-황석영 북한방문기(1993)’라는 책이다. 하지만 황석영은 이 책을 출간한 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몇년간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러나 이 책이 남한 사람들에게 미친 영향은 컸다. 북한을 남한의 개인주의 또는 자본주의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북한 체제 자체의 시각으로 바라보자’는 저자의 주장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들려왔기 때문이다. 소설가다운 관점과 감각으로 풀어간 그의 입담은 한편으로 감동을 주었고, 남한 사람들에게 인간의 차원에서 북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하지만 황석영의 주장은 북한의 선전선동 책략에 부화뇌동하는 과장된 선전물임을 알아야 한다. 즉, 북한 체제의 오류와 거짓을 ‘감상적 휴머니즘’으로 포장해 착각에 빠지게 한 점을 주목해야 한다. 60년 넘도록 계속되는 비극적 진실을 외면하고 남한 사람들에게 북한을 ‘사람이 살 만한 곳’으로 선전하는 일이 우리 세대를 대표하는 소설가로서 과연 정직한 주장인가를 되새겨야 한다. 북한 사람들은 사람으로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여전히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적어도 사람 살 곳이 못 된다.

 

북한 사람들이 북한식 체제 가운데 겪어야 하는 고통은 단순하지 않다. 정신적·육신적으로 북한 사람들을 압박하는 정치적 지배 장치들이 기묘하고 철저하기 때문이다. 정상적 인간을 비굴한 노예로 만드는 전문기술, 그 심리적 노하우를 꿰뚫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김일성, 김정일 집단이다. 이들은 인간의 육체와 정신적 기능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여 그 저변을 철저히 공략하기 때문에 누구라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지난 60년 넘도록 비인간 압제에 시달리면서도 북한 사람들이 한번도 제대로 항거하지 못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북한 체제는 김일성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는 거대한 사이비 종교집단이다. 북한에서 인간의 생명과 생애는 오직 김일성이라는 유일신의 영광을 위해 드려져야 하고, 개인의 어떤 자유도 생각도 허용되지 않는다. 온 사회가 그물처럼 촘촘히 짜여진 광신적 신앙체제 아래, 북한 사람의 일생은 하나의 도구와 제물로 바쳐져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2300만 북한 사람들이 과연 사람답게 살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정상적 인간으로 살아가기엔 너무나 힘든 고통이 이들을 덮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 사람들은 어떤 고통 속에 살아가는지 살펴보자. 수백, 수천의 고통이 있겠으나 여기서는 대표적 고통 10가지를 소개한다. 정신적 고통 5가지, 육체적 고통 5가지가 그것이다. 적어도 ‘손과마음’ 회원 여러분이라도 북한 동포의 고통을 이해해 주시고 하루 빨리 면하게 해달라고 기도해 주시기를 바랄 뿐이다.

 

먼저 북한 사람들이 당하고 있는 정신적 고통 5가지를 열거한다. 북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런 고통을 감내해 왔기 때문에 특별히 고통스러움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남한 사람들처럼 자유를 누려온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이 아닐 수 없다. 남한에 온 탈북 형제들은 남한 생활에 적응하고 나서야 자신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였는가를 자각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고통

북한에서는 당 방침에 의해 사적인 모임을 제한한다. 두 명이 어떤 모임을 갖는 것은 금한다. 또 5명 이상 모이는 곳에서는 술이 허용되지 않는다. 술주정을 가장해 당과 체제에 대한 자기 생각과 불편, 불만을 쏟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두 한 마음으로 당이나 수령에 대해 불평하는 일은 어렵다. 혹시 불평하는 일이 있다면 다섯 명 가운데 한두 명은 반드시 당에 고발하기 때문에 누구도 함부로 자기 속내를 들러낼 수 없다.

그런데 북한은 하부 조직까지 철저한 감시 장치를 해두고 있다. 각 지역에 지역반장과 비서를 두어 관할 지역을 철저히 감시한다. 지역반장은 20여명의 인민반장을 두어 결과를 매일 보고받는다. 인민반장은 20-30가구의 가정을 감시하고, 3-5가구를 직접 감시하는 ‘오조장’으로부터 감시결과를 보고받는다. 감시 내용은 가구마다 가족의 숫자에 변동이 없는가, 무단 숙박자가 없는가, 가족들의 특이 동향이 없는가 등이다. 말단 ‘오조장’으로부터 매일 보고받는 지역반장이나 비서는 400-600가구를 관할하는 절대 권력자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매일 출근하는 직장에도 감시 장치가 가동된다. 작업반장, 세포비서, 청년초급단체 비서 등을 둬 상부에서 하부까지 조직적으로 구성원들을 감시하고 있다. 매일 출근률과 집단 및 개인의 동향 등을 상부에 보고한다. 지역이나 직장의 감시 시스템 위에 또 하나의 감시 구조가 가동된다. 그것은 당, 정치보위부, 인민보안성(구 안전부) 등 3곳에서 파견된 사람들의 감시다. 2-3중의 감시를 통해 사실상 꼼짝할 수가 없게 된다.

따라서 북한의 개인과 가정은 당으로부터 아무 것도 감출 수 없는 벌거숭이 상태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한 사람들은 감시 카메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동물원 원숭이와 다를 바 없다. 모든 말과 행동이 감시받는 체제에서 살아가는 북한 사람들의 심리와 인성이 어떠할지 생각해 보라. 인격과 자존감이 무시당하고, 사적인 생각이 존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언제라도 고발당할 수 있다는 불안과 긴장감이 북한 사람들의 마음의 기본적 바탕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한 탈북자는 남한에 와서야 일생 처음으로 안식을 취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② 자신을 고백하고 남을 고발하는 고통

북한에서 생활하려면 ‘생활총화’를 각오해야 한다. ‘생활총화’란 소위 ‘자아비판’을 말한다. 일상생활 가운데 당의 유일사상체계 확립의 10대 원칙이나 김일성, 김정일 교시에 위배되는 일이 없었는지 스스로 돌아보며 자기를 고백하는 모임을 ‘생활총화’라 한다. 일반인의 경우 1주일마다, 농민의 경우 10일마다 한번 씩 갖는다. 그러나 예술인의 경우 이틀마다 가지는데, 당의 방침과 지시를 전달하는 선전선동대 구성원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정신이 똑바로 돼야 한다는 취지다.

생활총화, 즉 자아비판의 자리에서는 참석자들이 돌아가면서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시간을 갖는다. “당의 10대 원칙이나 수령님의 교시에 비춰 나는 이런 잘못을 하였다. 잘못된 내용은 구체적으로 이러하다. 앞으로 이 잘못을 시정하기 위한 대책은 이러하다” 등을 조직원들 앞에서 낱낱이 고백한다. 하지만 누구라도 심각한 잘못을 고백하지는 않는다. 적당히 모면하려 꾀를 부릴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서 북한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변명을 유창하게 하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

그러나 심각한 상황은 따로 있다. 자기비판이 끝나면, 호상비판 시간이 오는데, 그것은 사느냐 죽느냐의 순간이다. 즉 내가 남을 비판하고 고발해야 하는 시간이다. 상대방의 잘못을 찾아 사정없이 비판함으로서 내가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 사람들은 서로 고함을 지르며 부르르 치를 떨고 상대를 노려보며 철천지 원수처럼 으르렁거린다. 억울한 입장에 선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이 자리에서 자칫 꼬투리를 잡히면 개인 뿐 아니라 가족이 희생되는 고통이 따른다. 그래서 살아남기 위해 상대의 작은 흠이라도 뒤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한번 생각해 보자. 어려서부터 이런 자기비판과 호상비판에 길들여진 북한 사람들의 마음과 심리가 과연 어떠할까? 평생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으며, 상당한 피해의식을 갖게 된다. 물론 그 피해가 얼마나 큰지 서로 잘 알기 때문에 북한 사람들은 ‘생활총화’를 적당한 수준에서 마무리하는 지혜를 갖고 있다. 그래서 현실은 ‘생활총화’가 형식적 자아비판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계속>.

마치 주일예배 같은 주 1회 김일성 혁명사상 연구모임

손과마음선교회(이사장 최덕순 목사)가 발행하는 계간 <손과마음> 제3호에 실린 해당 글을 2회에 걸쳐 연재한다. 손과마음선교회는 변화와 해방을 꿈꾸는 북한 동포들에게 생명과 자유와 희망을 안겨주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인도적 구호단체다.

③ 수령을 숭배하고 충성하는 고통

북한은 사이비 종교집단이다. 즉, 김일성이라는 유일의 태양신을 중심으로 김정일을 함께 숭배하는 신흥 우상종교 집단인 것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반드시 3가지의 사진을 걸어놓고 우상화 작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김일성 사진, 김정일 사진, 그리고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업토의 사진 등 3가지가 그것이다. 열혈 당원이라면 여기에 김정일의 모 김정숙의 사진을 하나 더 걸어놓는다. 이것은 집안을 장식하는 의도이거나 자기 위신에 대한 과시인 것이다.

각 가정에서는 설날이나 당으로부터 특별한 선물을 받았을 때, 초상 사진 앞에 경례하며 감사를 드린다. 말하자면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가정에 따라서는 매일 사진 앞에 경배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또 모든 사회적 행사에서는 반드시 당 최고의 구호를 외치며 초상 사진 앞에 경배를 함으로서 행사를 시작한다. 대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만세! 위대한 영도자 김정일 동지 만세!”라는 구호를 정면에 써 붙이고 수령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다. 실제로 김일성과 김정일을 우상화시키는 구호는 무려 1,200가지에 이른다고 한다.

그런데 이보다 더 중요한 숭배모임이 있다. 그것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혁명사상 연구실”에서 주 1회씩 연구모임을 갖는 것이다. 이 모임은 일종의 정기예배와 같다. 이 모임에는 지역 구성원이나 직장 구성원 또는 학교단위 구성원 등이 빠짐없이 참석해야 한다. 이 모임은 절대적 모임이고 성스런 모임이기 때문에 누구도 거역할 수가 없다. 이 모임에서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교시된 말씀을 읽고 그들의 업적·사상·전통 등을 다시 교육받는다. 이와 함께 반드시 계급교양을 받는다. ‘계급교양’이란 ‘미제국주의 원수놈, 남조선 괴뢰도당, 일본놈’ 등에 대한 분노와 증오심을 일깨우는 일을 말한다.

이 모임에 올 때는 복장을 단정히 하고, 연구실에 입장할 때도 깨끗한 버선을 신고 뒤꿈치를 들고 조심조심 들어가야 한다. 왜냐하면 거룩한 성소(聖所)이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이런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이 훼손되는 일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다. 단적인 예로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 당시 고르고 골라 보낸 ‘미녀응원단’이 2003년 8월 28일 김대중과 함께 찍은 김정일 사진이 담긴 현수막이 비를 맞고 있자, 달리던 버스를 세워 현수막을 품에 안고 “장군님을 비 맞게 내버려 둘 수는 없습네다!!” 라며 통곡했다는 사실은 북한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진 비뚤어진 우상화의 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 진실을 알면 정말 미워하고 증오해야 할 대상 앞에 경배하고 충성 맹서를 해야 하는 이 어처구니없는 일이야말로 더할 수 없는 고통인 것이다.

④ 상대를 증오하고 미워하는 고통

앞서 언급했듯 김정일 정권이 북한 사람들을 지배하는 수단의 하나는 전 국가적 증오심을 부추기는 것이다. 일사불란하게 북한 사람들을 집합시키는 힘의 하나가 바로 미 제국주의자들과 남조선 괴뢰도당들에 대한 끊임없는 분노와 증오심이다. 김정일 집단은 소위 ‘계급교양’을 통해 북한 사람들 전체로 하여금 미국과 남조선과 일본에 대한 증오심 교육을 부추기고 있다. 계급교양의 또 한 가지 목적은 당과 정부에 대한 반감을 외적인 요인으로 상쇄시키려는 정치적 의도에 있는 것이다.

이 증오심 교육은 ‘계급교양’이라고 하여 지역, 직장과 학교마다 설치된 ‘혁명사상연구실’을 통해 조직적이며 반복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또 각 지역에 설치된 전쟁역사박물관을 통해서도 전쟁으로 원수를 갚아야 한다며 미국과 남조선에 대해 전쟁의 증오심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계급교양’을 통해 “김일성 수령님 아버지, 김정일 장군님, 고맙습니다. 미제는 승냥이, 때려잡자 미제와 그 앞잡이 남조선 괴뢰도당!”이라고 반복적으로 외친다.

이런 구호제창은 유아원 때부터 시작되어 성인이 되어서도 변함없이 계속된다. 또 정기적으로 내려오는 강연 자료, 해설 자료 등을 통해 증오할 대상에 대한 시사적인 이야기를 곁들여 현실감을 부여함으로서 증오심은 더욱 배가되는 것이다. 북한이 만든 최고의 증오 교육장은 바로 황해도 신천박물관이다. 북한만 아니라 남한 사람들에게도 신천박물관은 반미사상을 고취시키는 교육장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 박물관을 보면 너무 끔찍한 참상이 많아 머리가 아플 정도다. 직접 보고 온 남쪽의 한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미국놈이 사람을 많이 죽였다. 신천군 인구의 3분의 1이나 죽였으니! 미국놈은 우리 민족의 원수다”고 했다. 증오 교육장의 효과가 얼마나 큰가를 잘 말해준다. 그러나 진상은 이러하다. 6·25전쟁시 유엔군이 들어오기 전에 북한은 신천군 내의 ‘반동’들을 처형했다. 사람 죽이는 것이 서툴러 난자가 많았다. 유엔군이 들어오자 이제는 피해자인 이들이 “빨갱이 사냥”을 하여 복수를 하였다. 중국 지원군이 밀려오자 다시 반동 숙청이 진행됐다. 미군이나 중공군이 죽인 것보다는 신천군 내에 살던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죽이고 또 죽인 것이다. 선동-선전 전문가인 공산당은 미군을 증오케 하기 위해 신천박물관을 만들어 이 살인사건을 미제 침략군의 만행으로 포장했던 것이다. 북한을 버티고 있는 두 정신적 기둥이라면 충성과 증오이다. 그 하나 기둥-증오의 원천은 주로 황해도 신천의 미군 만행에 있다. 6·25 당시 신천군 인구의 3분의 1 이상이 무참히 학살된 사실을 놓고 이것이 미군의 악행이라며 증오심을 유발하기 위해 신천박물관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히틀러 군대보다 훨씬 악독한 군대가 미군이라는 김일성 수령의 교시를 받들기 위해서다. 국가적으로 어린 학생에 이르기까지 신천박물관을 견학시킨다. 외국손님의 중요한 견학 코스의 하나도 신천박물관이다. 온갖 학살 사례를 모형으로 만든 전시실을 참관하다 보면 구역질날 정도로 참상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처럼 북한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미움과 증오의 습성은 미군과 미국이 아닌, 나에게 피해를 주는 누군가를 향해서도 격렬하게 나타난다. 이것은 절제할 수 없을 만큼 극한 감정을 만들어냄으로써 증오심은 일종의 정신적 외상으로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다. 간혹 북한 사람들로부터 ‘거칠다, 격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이것은 증오하는 습성이 나타난 결과라 볼 수 있다. 또 과격한 표현과 정도를 넘어 적개심을 표출하는 북한 정권의 대남 발언들도 이러한 비정상적 증오심의 결과라고 보여진다.

⑤ 남을 의심하고 거짓말하는 고통

북한 사람들은 너무나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한 환경에서도 생존하기 위해 저마다 개인적인 노력을 하며 분투하고 있다. 어느날 느닷없이 보위부에 붙들려가 노동교화소에 보내지거나 한밤중에 온 가족이 어디론가 실려가 추방되는 일들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에서 내가 살아남고 내 가족이 피해를 받지 않기 위해 무언가 자기를 방어하지 않을 수 없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조치가 필요하다. 그것은 의심하고 거짓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환경이 가져온 하나의 심리적 방어기제다. 물론 북한에도 일정한 수준의 도덕적 양심과 당의 규율을 넘어서는 인간적인 관계가 사회적 바탕에 형성돼 있다. 끈끈한 인정과 우애가 곤경에 처한 이웃을 살려내기도 한다. 그러나 김정일과 당이라는 절대권력 앞에서는 개인적인 인간관계는 더 이상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결국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를 의심하고 고발해야 하며, 내가 살기 위해 무엇인가 거짓말을 꾸며야 한다. 왜냐하면 김정일이나 당의 요구가 얼마나 불합리하며 모순된 것인가를 마음에서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 절대성을 부인하지 못하므로 북한 사람들은 누구나 양심을 속이는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모순으로 가득한 북한 사회의 특성이다. 양심에 반하는 거짓된 말과 행동은 북한 사람들에게는 일종의 생존수단이다. 가식과 철면피, 그리고 의심과 거짓말, 이런 비도덕적 허위의식을 생존을 위해 필요 가치로 여기며 아무런 가책도 없이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북한 사람들의 고통은 어떠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는가? 양심적인 말과 행동이 차단된 사회에서 온갖 압제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마지막 수단은 결국 거짓말 밖에 없는 것이다.

어느 지방 소도시에서 일하는 한 직장인이 평양사업소에 다녀오라는 출장명령을 받았다. 출장기간은 사흘이다. 하지만 출장비가 지급되지 않았고 다녀올 차편도 없었다. 그러나 사흘 뒤에 출근하여 출장보고서를 상부에 올려야 했다. 그 직장에 있는 당과 정치보위부와 인민성 끄나풀들이 지켜보고 있고 작업반장과 세포비서가 보고서를 기다리고 있으니 어쨌든 출장보고서를 제출해야 했다. 그는 사흘을 집에서 빈둥거리다 직장에 나가 거짓보고서를 내놓았다. 물론 상급자도 그것이 거짓인줄 알면서도 그대로 받아야 했다. 허위로 시작해서 허위로 끝나는 거짓의 사회가 북한 사회다.(끝)


트랙백:  수신불가
추천 스크랩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