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만니의1차간증
◎니,리,외의간증
2012-01-30 , 조회 (25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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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차 간증

 (1936년 10월 18일)

성경: 사도행전 26장 29절,

갈라디아서 1장 15절

  출생 전에 이미 바친 바 되었다

나의 출생은 어떤 면으로는 기도의 응답을 받은 하나의 증거라고 말할 수 있다. 중국 민간에는 남자를 중시하고 여자를 경시하는 풍속이 있었는데 우리 어머니는 이미 두 딸을 낳고, 계속해서 여섯 딸을 낳은 나의 고모와 같이 될까 매우 두려워 했다. 그 분은 그 때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몰랐지만 주님께 간단한 몇 마디로 『만일 당신이 내게 아들을 주신다면 나는 이 아들을 당신께 바치겠습니다』라고 기도했다. 주님은 그 기도를 응답하시어 얼마 안가서 나를 낳게 하셨다. 후에 내 아버지께서 이 일을 내게 알려주심으로써 나는 출생전에 이미 바친 바 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원을 받은 것은 양면적이었다
1920년, 내가 17세였을 때 나는 구원을 받았다.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들이 주님을 믿는 것은 구원을 받아 죄를 벗어나는 데까지를 말한다. 그러나 내 경우에 있어서는 그의 종이 되어 그를 섬기라시는 주의 부르심에 응답해야 하는 문제가 있었다. 나는 이것에 대한 대가가 너무도 큰 것임을 잘 알았음으로 속에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주님은 나를 그냥 지나치시지 않았고 갈등은 계속 되었다. 나는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이 양면적(兩面的)이라는 것- 한 면은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는 것이요 또 한 면은 그를 내 주인으로 영접하여 섬기게 되는 것임을 알았다.

 

그 해 4월 20일 밤, 나 혼자 방 안에 있었을 때 나는 주님을 영접해야 하느냐 영접하지 말아야 하느냐의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처음에 나는 달게 받아 들이지 못했다. 그러나 다시 한 번 기도할 때 너무도 큰 나의 죄를 발견하게 되었고 오직 주 예수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때 주님이 십자가 위에서 못 막힌 두 손을 내밀어 날 맞으며 『나는 여기에서 네가 날 영접하길 기다리고 있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보았다. 이 사랑이 마침내 나를 정복했다. 이전에 나는 다른 사람이 예수 믿는 것을 비웃었으나 그 날 저녁 나는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은 주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눈물로 죄를 자복하며 주께 사해주시기를 구하며 주님을 영접했다. 또한 이 큰 사랑으로 인하여 나는 내 일생 동안 그를 섬기기를 원하게 되었다. 기도한 후, 나는 전에는 맛보지 못한 기쁨과 평강을 맛보게 되었다. 그 때 방안에는 빛이 충만한 것 같았다. 나는 주님께 말했다.『아, 주여, 당신은 나를 은혜로 대하였습니다!』

커다란 변화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세 사람은 나의 동창생이다. 특별히 위 광희(魏 光禧)형제는 항상 학교의 규칙을 범하던 나의 이전 나쁜 행실을 간증 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주신 나의 작은 총명으로 매 시험마다 나는 쉽게 수위(首位)를 차지 할수 있었다. 나의 문장은 항상 모범으로 뽑혀서 게시판에 붙여져 있었다. 이러므로 나는 교만하고 자고(自高)하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나의 판단을 절대적인 것으로 믿었고 청년들이 품는 야망을 갖고 있었고, 장래에 대한 원대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 때 나는 노력하기만 하면 내가 원하는 목적을 무엇이든지 다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날 밤부터 모든 것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십여년 간의 계획이 다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모든 영웅심과 큰 뜻이 점점 사라져 결국은 깨끗이 없어졌다. 반대로 하나님의 나에 대한 부르심은 갈수록 분명해졌다. 나는 나의 일생이 장래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주님이 나를 이끄시어 구원을 받게 할 뿐 아니라 한층 더 나아가 그의 영광을 위하여 그에게 다다르게 하셨음을 알았다. 하나님은 나를 부르시어 내가 그의 종이 되어 그를 섬기고 그와 동역하도록 하신 것이다. 전에 나는 전도하는 일을 업신여겼다. 특별히 전도인들에 대해서는 많은 전도인들 보기를 외국사람이나 따라 다니는 일종의 직업인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 그들을 저질(低質)로 느끼고 있었다. 과거에 나는 내가 그렇게 멸시하던 전도인이 되리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일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나는 내가 가장 하류(下類)의 것으로 여기던 그 일을 전적으로 하게 된 것이다.

생활에는 실제가 없었다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나는 학교를 떠나 상해에 가서 여자도(余慈度)자매가 경영하는 성경 학원에 들어갔다. 얼마 후 그 분은 내게 그 학원을 떠나 달라고 말했다. 나는 군것질을 잘하고, 아름다운 옷을 즐기고, 아침에는 항상 늦게 일어났었으므로 집으로 돌아가라고 한 것이다. 이 일은 주님을 섬기려는 내 마음에 엄중한 타격이 되었다. 나는 내 생명은 큰 변화를 받았으나 내 생활에는 실제가 없으며 고쳐야 할 점이 너무나도 많다는 것을 그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을 섬기려면 먼저 충분한 준비가 필요함을 알았다. 나는 학교로 다시 돌아가서 계속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사역에 능력이 없었다
학교에서 동급생들이 소설을 읽을 때 나는 한쪽에서 성경을 읽었다 (편자 주:그러나 그는 시험 볼때마다 1등이었다). 나의 동급생들은 내게 많은 변화가 있음을 인정했다. 그러나 나의 옛 성질은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에 나의 간증은 그리 강할 수 없었다. 내가 기억하기에 그 때 내가 위(魏) 형제에게도 간증했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주님께 돌이키려는 마음으로 동급생들에게 간증했으나 일 년이 지난 뒤에도 아무 효과가 없었다. 나는 이론(理論)을 잘 얘기하고 충분한 논리를 제시하면 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찌된 까닭인지 나의 일은 다른 사람에게서 아무런 능력을 갖지 못했다.

 

어느 날 나는 우연히 서양인 선교사인 그로스 양(miss Grose)을 만나게 되었다. 그로스 양은 나에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물은 후, 일 년 동안 내가 주님 앞으로 인도한 사람이 전부 몇 명이나 되는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동급생들에게 내가 복음을 전했지만 한 사람도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는 내게 말하기를 나의 문제는 나와 주님 사이에 간격이 있는 것이며 그렇게 때문에 복음을 전해도 효과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이 [간격]은 숨겨 있는 죄일 수도 있고, 양심의 거리낌일 수도 있고, 기타 주님께 득죄한 일일 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솔직하게 이런 것이 있음을 시인했다. 그녀는 내게 이런 것들을 깨끗이 버리고 싶으냐고 물었다. 나는 원한다고 말했다. 그녀는 다시 내게 묻기를, 사람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했느냐고 했다. 나는 그녀에게 나는 사람을 만나서 그가 흥미있게 듣든지 안듣든지 상관하지 않고 그들에게 주님에 대해 말했음을 얘기했다. 그녀는 내게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얘기했다. 그녀는 내 친구들의 이름을 수첩에 적어서 항상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 후에 하나님이 말할 기회를 주시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그들을 위하여 기도했다
나는 돌아온 후 곧 죄를 해결하고 주님이 내몸에서 역사하시는 데에 지장이 있는 일을 해결했다. 또 10명의 동창생 이름을 한 수첩에 적은 후 매일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때로는 수업중에도 그들을 위해 기도했고 기회만 있으면 그들에게 주 예수를 전했다. 이 일이 효과를 보기 시작할 때 처음에 나는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내가 그들 앞을 지나가려 할 때 앞에서 희롱하는 소리가 들려왔다.『야! 전도사 온다. 우리 그 설교좀 들어보자!』 사실 그들 속에는 듣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나는 이 실패를 그로스 자매에게 얘기했다. 그녀는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만 그들이 구원 받을 때까지 계속 기도하라고 했다. 주님 은혜로 나는 주님을 의지하고 힘을 얻어서 매일 명단에 기록한 사람 하나하나를 위해 계속 기도했다. 이렇게 하여 몇 달이 지난 후 명단에 기록된 70명 중 1명을 제외한 69명이 다 구원을 받았다. 여기에 앉아 있는 위 광희 형제도 그 69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

 

성령의 능력을 얻어야 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으나 나는 여기에서 만족하지 않고 학교와 도시에 있는 수많은 사람에게도 복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 위에서 내려오는 능력을얻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나는 한 영국 선교사인 화수은 ( 和受恩 ) 자매 ( M.E.Barber) 에게로 갔다. 나는 그분에게 물었다. 『영적 능력을 얻으려면 성령릐 충만을 받아야지요?』 그분은 말했다. 『그렇다. 너는 반드시 네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서 하나님이 그의 영을 네게 충만케 하시도록 해야 한다.』 나는 내가 분명한 구원과 부르심을 받고 이미 내 생명을 하나님께 바쳤지만 여전히 영적 능력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내게 프리진 형제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프리진 ( Prigin ) 형제는 미국 사람으로서 중국에 온 일이 있었다. 그가 철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을 때 그는 자기의 영적 상태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있었다. 그는 하나님께 그에게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이 있고, 이길 수 없는 죄가 있고, 주님의 일에 대해서는 능력이 조금도 없음을 고(告)했다. 그는 하나님께 성령을 충만케 해 주시고, 승리의 생활을 할 수있게 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는 이러한 기도를 두 주(週) 동안 계속했다. 이상한 것은, 하나님은 그에게 아무 것도 주시지 않고 도리어 그에게 몇 가지 요구를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정말 승리의 생활하기를 원하느냐? 그렇다면 너는 두 달 후에 볼 박사 시험을 포기해라. 나를 섬기는 데는 「철학 박사」가 필요 없다.』그는 너무도 난감 ( 難堪 )했다. 그에게 있어서 박사 학위를 얻는 일은 자신만만한 일이었다. 그런대 어떻게 이것을 버린단 말인가? 그가 30 년간 소망을 걸어왔던 것이 바로 이 「박사」학위를 얻는 것이었는데 이것을 버리라고 하시니 하나님은 너무 잔인하시지 않은가? 이러한 전쟁이 그의 안에서 두 달 동안 계속되었고, 결국에는 주님이 승리하셨다. 그는 한 통의 편지를 대학 당국에 보내어 그가 다음 주에 있는 학위 시험에 불참 ( 不參 ) 할 것임을 통지했다. 그 일은 이렇게 결정된 것이다. 그 날 저녁 그는 몹시 피로했고, 그 이튿날의 집회에서 무슨 말씀을 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이튿날 그는 회중( 會衆 )에게 말했다. 『오늘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다만 한 사람이 주님께 복종한 일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그 날 회중의 사분( 四分 )의 삼(三)이 새롭게 일어났고 그 자신도 이로 인해 성령의 능력을 얻게 되었다. 그는 후에 말했다. 『내가 만일 결과가 이런 것임을 더 일찍 알았더라면 나는 좀 더 일찍 하나님께 복종했을 것이다.』그는 그 후 주님께서 중히 쓰시는 사람이 되었다. 프라진 형제의 이야기는 나를 감격케 했다. 나는 주님께 말했다.『주여, 나와 당신 사이의 간격을 제거하겠사오니 나로 성령의 충만을 받게 하소서.』이리하여 1920년보터 1922년까지 나는300여 명에게 사과하고 그들에게 용서를 빌었다. 그러나 내 느낌에서는 여전히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간격이 남아 있었다. 나는 다시 일하려 노력했으나 위로부터 내려오는 능력은 없었고, 사역의 효과도 별로 없었다.

 

나는 마음을 다하여 그를 사랑해야 한다
어느 날 나는 설교 제목을 찾기 위해 성경을 보고 있었다. 그 때 읽은 것은『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시 73 : 25 ) 였다. 나는 내 자신에게 말했다. 『시편 기자 ( 記者 )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지만, 나는 할 수 없다.』 내가 할 수 없는 원인은 바로 그 때 내가 지금 내 아내 된 여자를 사랑하는 데 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주님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그녀가 내게 회답한 것은 웃음 뿐이었다. 이것은 10 년 전의 일이었다. 그 당시 그녀는 그리스도인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오늘 많은 청년들이 그러하듯 그녀를 열렬히 사랑했다. 내 느낌에는 그녀를 향한 내 마음이 너무 열렬하기 때문에 나와 주님 사이에 다툼이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나는 그녀를 버릴 수 없었다. 그녀는 내 마음 가운데에서 너무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 이 일에 대해서만은 간섭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심지어 나는 황무한 땅 티뱃 ( Tibet ) 까지라도 가서 전도하겠고, 하나님을 위한 많은 사업을 하겠으니 나의 애정만 간섭하지 말고 나의 사랑하는 사람만 버리지 말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제의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일단 이 일을 제기하신 후에는 돌이키지 않으셨다. 주님은 나에거 그 사랑을 버리고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공부에도 흥미가 없었고, 기도도 잘 할 수 없었다. 나는 계속 성령의 충만을 받기 원했지만 시편의 그 말은 감히 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나는 마침내 하나님께 말했다. 『주여, 나눈 그녀와의 관계를 포기하겠읍니다.』이 때 나는 전에는 누리지 못했던 큰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그원받았을 때, 나는 죄 짐을 벗어났다. 이번에 나는 나와 하나님 사이에 있는 장애물을 해결하고 완전히 소제 ( 消除 ) 하여 내 무거운 짐을 벅어버리고 평범한 옷으로 갈아 입은 후, 부엌에 들어가 풀을 쑤어서 전도지와 함께 가지고 나가 한 장 한 장 붙이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과거에는 복주( 福州 )에서 이런 일을 한 사람이 없었다.

 

1922년 2학기 때 나는 매일 수첩에 적힌 동창생들을 위해 기도했고, 그 중의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다. 구원 받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졌기 때문에 다음 해부터 우리는 그 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여 집회하기 위해 좀 더 큰 장소를 빌어야겠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그 때 수첩에 기록된 사람 중에서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다 구원을 받았다.

 

 가장 귀한 공과를 배우다

그 때 우리에게는 일곱 동역자가 있어 매주 금요일에 같이 모였다. 그러나 그 시간의 대부분을 나와 인도하는 한 형제와의 변론으로 다 소비했다. 이 형제는 나보다 다섯 살 위였다. 청년이었던 우리들은 모두 각자의 의견을 내세우며 상대방의 생각을 비판했다. 때로 나는 혈기도 냈다. 그러나 내 자신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 때 나는 토요일마다 화 수은 자매에게 가서 그분에게 그 형제의 태도에 대해 호소하고 우리 가운데 있는 분쟁을 화해시켜주며 그 형제의 잘못을 고쳐달라고 했다. 그 자매는 나를 꾸짖으며 성경에서 젊은이는 나이 많은 자에게 순종하라 했으니 너는 그에게 순종해야 마땅하다!』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말에 복종하지 않고 나 자신을 변명했다.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도 사리(事理)는 있는 게 아닙니까?』그분은 『이유 불문하고, 성경에서 어떻게 말했는가를 봐라. 성경에서 젊은이는 마땅히 나이 많은 자에게 순종해야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금요일 오후에 논쟁을 벌이고 나서 밤에 나는 잠을 잘 수 없었고 때로는 울기까지 했다. 토요일에는 화 수은 자매에게 가서 호소하며 그분에게 내 신원을 구했다. 그러나 그분의 답변을 듣고 집에 돌아오면서 나는 또다시 울었다. 나는 내가 그 형제보다 일찍 태어났더라면 순종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닌 그 형제였을 것을......하면서 내가 그 형제보다 일찍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한(恨)하였다.

 

언젠가 나는 그 변론중에서 나의 의견이 너무도 옳은 것임을 느끼고 그분에게 내가 어떻게 옳고 그 형제가 어떻게 틀렸는가를 설명했다. 나는 이번에는 틀림없이 내가 이긴 것으로 인정받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분은 이렇게 말했다.그 형제의 옳고 그른 것이 문제가 아니다. 지금 내 앞에서 형제를 송사(訟事)하는 네가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냐? 네가 어린 양과 같은 사람이냐? 네가 한 번 말해 봐라. 그녀의 이 몇 마디에 나는 참으로 부끄러움을 느꼈다. 나는 그것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 내 말과 태도는 정말 십자가를 메는 사람의 그것이 아니었고 어린 양과 같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그 일년 반동안에 내 일생 중에서 가장 귀한 공과(工課)를 배운 것이다. 나는 원래 머릿속에 영적 구상(構想)이 가득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러 가지 환경으로 말미암아 나를 영적 실제에 들어가게 했고 십자가의 의의(意義)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셨다. 오늘, 1936년, 내게는 50여 동역자가 있다. 그때에 순종하는 공과를 배우지 못했다면 나는 오늘 그 어떤 사람과도 함께 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 찬미를 드린다. 그는 나로 성령의 제한을 받게 하기 위하여 나를 그러한 환경 가운데 넣으셨다. 그 18개월 동안 나는 내 의견을 제시할 기회를 갖지 못했고 다만 울며 고통을 참아야 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나는 『나』라는 어려움을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내 성격의 모난것을 깍아내시어 이제 나로 하여금 젊은 동역자들에게, 온유하고 겸손하고 화평한 영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게 하셨다. 십자가를 메지 않으면 그들이 한 일, 열성, 목적과 능력이 모두 별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 길을 걸어 오면서 나는 나의 단점과 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제는 옳고 그른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네가 십자가를 메는 사람이냐 아니냐에 있다. 교회안에서는 옳은 것도 그른 것도 다 가치가 없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십자가를 메는 것이요, 부서짐을 당하는 것이다. 이렇게 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생명을 나타낼 수 있고 그의 뜻을 이룰 수 있다.

작성자 : 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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