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신학과 워치만니, 위트니스리 신학의 접점은 과연 없는가? (1)|
진리변증/토론
2012-04-06 , 조회 (658)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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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 웨스터민스터신학교를 졸업하시고 남가주 사랑의 교회(오정현목사님 개척)

부목사를 역임한 후 현재 단독 목회를 하고 계신 목사님이신 친구 한분이 계십니다.

제가 그분을 만나면 성경과 주님 이야기로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늘 즐겁습니다.

그 목사님은 워치만니, 위트니스리가 쓴 책을 거의 다 읽었고 아주 즐거운 감상과

감사를 틈만 나면 표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계가 제가 이곳에서 꿈꾸는 것입니다.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은 양측이 더 멀어지기 위함이 아니라 참되게 거듭난

그리스도의 몸 안의 지체들로서 서로 더 이해하고 하나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이해한 그리고 가지고 있는 관심사를 간략하게 요약해서 제시해 보겠습니다.

 

1. 칼빈신학과 워치만니 위트니스리 신학의 큰 그림에 대한 저의 이해

 

우리가 믿는 하나님, 그리고 그 하나님을 소개하는 성경은 크게 볼때 두 방면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초월성이고 또한 하나님이 사람과의 연합 추구하심

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칼빈은 전자를 강조하고, 워치만니, 위트니스리는 후자를

강조합니다. 칼빈은 교리와 신학을 구축한 후 그 시각으로 성경을 보나(기독교

강요, 사도신경), 워치만니, 위트니스리는 구체적인 성경본문들을 해석해 나가면서

필요에 따라 신학을 참고합니다(신약의 결론-총8권). 쉽게 말해 그 신학구조가

전자는 교리중심, 후자는 성경본문 중심입니다.

 

그러다보니 서로 상대방을 볼 때 아쉬움과 부족이 보일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찌 할 것인가... 서로가 서로에게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2. 다음 항목들에 대해 서로 배우는 과정이 있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의 목적(뜻)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엡1:4-5, 롬8:29)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사..거룩하고 흠이없게 하시려고...예정하사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이 되게 하셨느니라"(엡1:4-5)

 

여기서 '거룩하고' 와 '흠이 없고'는 무슨 의미이며, 그로 인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은' 무엇인가? 관련하여 개혁 신학의 성화론의요체는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체험됩니까...그리고 그것이 위 성경 본문에 부합합니까? John H. Hunter의 책에

기반을 둔 박영선 목사님의 <성화에의 길>은 개혁 신학의 성화론을 대표할 수

있는지요?

 

"하나님이 미리아신 자들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셨으니..그로 많은 형제들

중에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함이라."(롬8:29)

 

여기서 '많은 형제들'과 '맏 아들'은 각각 누구이며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다'는

것의 의미와 구체적인 방법을 개혁신학은 어떻게 설명합니까? 안토니 후크마의 저서

<Created in God's Image>의 관점은 이에대해 개혁 신학을 대표한다고 볼수 있는지요?

 

2) 죄와 죄들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일반 신학은 죄와 죄들을 구분하지 않으나, 성경본문들 또는 영어 성경은 이 둘을

정확하게 구분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죄들(복수)의 사함을 받았느니라'(엡1:7)

 

이 복수의 죄들의 사함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님의 보혈에 근거한 것이다 라는

이해에 있어서 양쪽은 차이가 없습니다.

 

"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단수)가 세상에 들어오고"(롬5:12)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3611, 오이케오) 죄니라."(롬7:20) "내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을 아노니"(18절)

 

개혁신학이 흔히 설명하는 단수의 죄(원죄?) 개념으로 위 로마서 7장이 묘사하는

죄와 그 죄의 활동이 설명이 된다고 보는지요? 박형룡 박사님의 <인죄론>

143-178쪽이 다룬 내용을 개혁신학의 대표적인 죄개념으로 보아도 좋은지요?

 

"그러므로 너희도 자신을 죄(단수)에 대하여 죽은자로 ...여길찌니라"(롬6:11)

 

이 단수의 죄를 해결하는 길인,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기라>는

말을 개혁신학은 어떻게 이해하는지요?

 

요약하면, 성경이 말하는 통상의 죄는 <죄>와 <죄들>로 나누어 검토해야 합니다.

그런데 개혁신학은 이 <단수의 죄>의 정체와 이 죄를 해결하는 길에 있어서

너무 막연하지는 않는지,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생활에서 이 단수의 죄로 묘사된

실체를 이기는 삶을 갖게하도록 구체적으로 어떤 인도를 하고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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