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성-삼일성의 내재적인 면과 경륜적인 면 (1)
삼일성
2013-02-03 , 조회 (28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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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성의 내재적인 면과 경륜적인 면

 

우리의 가르침 중에서 일부 논쟁이 있어 온 삼일성과 기독론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짓기 전에 삼일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상당 부분 떠받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 한 가지를 제시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 비공유적 속성의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지함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성육신의 비밀을 통해서 그분 자신을 전달해 오셨음을 믿는 우리는, 신격 안에는 그분의 내재적 존재의 면과 경륜적인 운행의 면이 모두 있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난 수 세기 동안 내재적 삼일성(the immanent Trinity)과 경륜적 삼일성(the economic Trinity)을 말해 온 많은 저명한 신학자들에게 동의한다는 뜻입니다. 위트니스 리의 사역에서 이러한 구별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의 저술에서 위트니스 리는 이러한 측면 중 전자에 대해서 존재론적 삼일성(the essential Trinity)이라는 보다 오래된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우리를 비방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일구이언한다고 비난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바대로 진리를 변호함에 있어서, 우리가 사역의 글에서 발췌하여 제시하는 자료들이 종종 겉으로 보기에 서로 모순된 입장을 모두 지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어떤 문제들에 대해 공개적으로는 정통적인 견해를 표방하면서도 뒤에서는 동일한 문제에 대한 이단적인 견해를 신봉한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의 진리가 담고 있는 여러 면을 모두 이해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여기지 않으며 진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제시하는 데 있어서 이중적인 태도를 취할 필요도 느끼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일부 사람들은 우리를 헐뜯고자 진리에 대한 우리의 이해의 한 면만을 지나치게 부각시키면서 우리의 견해를 균형잡아주는 우리의 이해의 다른 방면은 무시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실을 바로잡기 위해 균형을 잡아주는 면을 제시하면, 우리가 이중적인 탈을 쓰고 있다는 비난과 함께 우리가 겉으로는 이것을 말하고 속으로는 다른 것을 의미하는, 이른바 ‘교활한 자들’이라며 온 세상에 경고합니다. 어쩌면 우리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을 때 그중 일부는 여전히 이와 같은 반응을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에 대한 그러한 논쟁에는 마땅한 답이 없는데, 그것은 그 논쟁에 무슨 진실이 담겨 있어서가 아니라 다만 그것이 논의의 중점을 무시한 인신공격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른바 일구이언한다고 비판받는 것은 대부분 우리가 신성한 삼일성의 내재적인 면과 경륜적인 면 모두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어떤 면에서는 아들께서 아버지라 불리실 수 있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생명 주는 영이시라고 말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동시에, 아들은 아버지가 아니시고 아들은 그 영이 아니시며, 또한 그 영도 아들이나 아버지가 아니시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반부는 삼일성의 경륜적인 운행을 고려한 것이고, 후반부는 삼일성의 내재적인 존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 위트니스 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존재론적 삼일성이 그분의 존재를 위한 삼일성의 본질(essence)과 관련이 있다면, 경륜적인 삼일성은 그분의 움직임을 위한 그분의 계획과 관련이 있다. 신성한 삼일성의 존재도 필요하고, 신성한 삼일성의 계획도 필요하다.

 

아버지는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정하시는 일을 하심으로 그분의 계획, 그분의 경륜의 첫 번째 단계를 성취하셨지만, 그분은 이것을 아들이신 그리스도 안에서(엡1:4-5) 그리고 그 영과 함께하셨다. 이러한 계획이 수립된 후, 아들께서 이 계획을 성취하셨지만 그러나 그분은 아버지와 함께(요8:29, 16:32) 그리고 그 영에 의해(눅1:35, 마1:18, 20, 12:28) 이것을 하셨다. 이제 아버지께서 계획하신 모든 것을 아들께서 성취하신 이후에, 그 영께서 그분이 성취하신 모든 것을 적용하기 위해 세 번째 단계 안에서 오셨지만, 그분은 아들로서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이것을 하신다(요14:26, 15:26, 고전15:45하, 고후3:17). 이렇게 신성한 삼일성의 신성한 경륜이 수행되면서도, 신성한 삼일성의 신성한 존재인 그분의 영원한 동시존재와 상호내재는 손상되지 않은 채 남아 있고 위험에 빠지지도 않는다. (오늘날 주의 회복의 주요 항목들에 대한 핵심 요점들, The Crucial Points of the Major Items of the Lord’s Recovery, 영문판, 10쪽)

 

삼일 하나님께서 생명 주는 영이 되시기 위해 통과하신 과정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라 경륜적인 문제이다. 하나님의 변화는 오직 경륜적인 면에서 가능하며, 본질적인 면에서는 불가능하다. 우리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변하시지 않는다.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그분은 본질에 있어서 동일하시다. 그러나 삼일 하나님은 그분의 경륜 안에서 과정을 거치셨다는 의미에서 바뀌셨다. 처음에는 오직 하나님이셨던 그분께서 하나님-사람이 되셨다. 그분께서 오직 하나님이셨을 때에는 그분께 인성이 없었다. 그러나 그분께서 하나님-사람이 되심으로 바뀌셨을 때 그분의 신성에는 인성이 더해졌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본질에 있어서 바뀌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그분은 단지 그분의 경륜 안에서, 그분의 분배 안에서만 바뀌신 것이다. 하나님은 그분의 경륜 안에서 바뀌셨으나, 그분의 본질 안에서는 결코 바뀌시지 않았다.

 

비록 하나님께서 그분의 경륜 안에서 바뀌셨다 할지라도 그분은 더 이상 경륜적으로 바뀌시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분은 동일할 것이다. (신약의 결론, The Conclusion of the New Testament, 성령, 1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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