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성-삼일성의 내재적인 면과 경륜적인 면 (2)
삼일성
2013-02-03 , 조회 (161)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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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깊게 분석해 본다면, 우리가 이중의 탈을 쓴 것처럼 보이는 사례들 역시 신성한 삼일성의 내재적인 방면과 경륜적인 방면이라는 관점으로 적절하게 설명될 수 있습니다. 위 인용문 중 두 번째 글에서 하나님께서 변화를 경험하시고 과정을 거치셨다는 위트니스 리의 언급을 특별히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그는 바로 이것 때문에 거듭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그의 언급을 글의 전체 맥락에서 본다면 그의 이해가 균형잡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진리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비밀이므로 어떻게 그러한 일이 가능한지를 충분히 헤아릴 수는 없으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내재적 존재에 있어서는 변화되지 않으시지만 그분의 경륜적인 운행에 있어서는 성육신과 인간 생활과 죽음과 부활을 거치셨고 지금은 생명 주는 영으로서 그분의 믿는 이들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모두 인정합니다.

 

분명한 것은 삼일 하나님에 대한 어떤 사람의 가르침이 삼일성의 내재적인 방면과 경륜적인 방면을 포함한다고 해서 이것이 일구이언한다는 정죄의 화살을 맞을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며, 오히려 이것은 그의 가르침이 정통적인 가르침의 정수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음을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삼일성의 내재적인 방면과 경륜적인 방면은 서로를 무효화시키거나 서로 모순되지 않으며, 성경 자체의 균형을 보존합니다. 위대한 교회 역사가인 필립 샤프(Philip Schaff)는 다음과 같이 심지어 니케아 교부시대부터 이 딜레마가 신실한 학자들을 난처하게 해 왔다고 말합니다.

 

니케아 교부들의 글 중 적지 않은 부분이 의심할 여지 없는 삼신론의 색채를 띄지만, 이것들은 사벨리우스주의적인 개념을 담은 그들 자신의 또 다른 글에 의해 상쇄된다. 그러므로 그들의 입장은 이들 두 극단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다고 간주할 수밖에 없다.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vol. 3, [Grand Rapids, MI: W. B. Eerdmans, 1910], 674쪽)

 

다음 인용문에서 보듯이 샤프는 심지어 양태들(modes)이라는 단어조차도 정통 가르침에 부합되는 것으로 간주하였지만, 그러나 합당한 균형을 이루지 않는다면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교회는 한 신성한 본질과 세 인격이 있다고 가르치지 않고, 한 본질이 세 인격 안에 있다고 가르친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분리된 세 개체들로 간주할 수 없다. 오히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은 서로 안에 계심으로 공동체적인 연합을 이룬다.

 

이 신성한 한 본질 안에 세 인격(persons)이 있다. 더 나은 용어를 사용하자면 이 신성한 한 본질 안에 세 위격(hypostase), 즉 서로 분리되거나 나눠질 수 없는 동일한 한 통일체의 세 존재 양태들이 있는데, 성경은 이를 아버지, 아들, 성령이라고 칭한다. (같은 책, 673, 675-676쪽).

풀러 신학교 측과 대화시 제출되었던 (지방)교회 신앙 변증서

by Living Stream Ministry -defense & confirmation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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