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을 앎(의식)-몸의 의식은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감각임
몸을 앎(의식)
2013-02-25 , 조회 (180)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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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후11:28-29 이 밖에 언급하지 않은 것들은 그만두더라도, 날마다 나를 억누르는 많은 염려가 있는데, 곧 모든 교회들을 위한 염려입니다. 누가 약해지면 나도 약해지지 않겠습니까? 누가 실족하면 나 자신도 애타지 않겠습니까?

롬 12:15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

 

몸의 의식을 말하려면 반드시 영적인 생명의 감각에서부터 말해야 한다. 과거에 영적인 생명의 감각에 대하여 우리는 매우 많이 말했다. 우리는 일찍이 우리 안에 있는 생명이 느낌을 갖고 있고, 우리 안에 있는 거듭난 영도 느낌이 있다고 지적한바 있다. 이것은 로마서8장 6절에 근거한 것이다“. 육체에 둔 생각은 죽음이지만, 영에 둔 생각은 생명과 평안입니다.”이 구절은 내적인 감각에 대해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생각을 영에 두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이는 매우 간단하다. 단지 그 안에 평안이 있는지의 여부를 물어 보면 된다. 이 평안이 바로 감각의 문제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생각을 영에 두었다면 그는 내적으로 편안함과 안락함과 평안을 느낄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313쪽)

 

우리의 내적인 감각은 대체로 정확하다. …어떤 사람도 어떤 종류의 생명이 없으면서 그 생명을 갖고 있는 것처럼 가장할 수 없다. 생명은 가장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하나님 앞에서의 영적인 상태가 어떠하면 어떠한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은 것이다. 어느 누구도 가장할 수 없다. 훈련된 영적인 감각을 가진 사람은 예민한 감각을 갖고 있다. 사람들이 그에게 가서 세 마디만 말해도 그는 상대방 안에 있는 상태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동쪽에 대해 말할지라도 그는 이미 그 사람이 실지로 서쪽에 대해 말한다는 것을 안다. 어떤 사람이 문제가 없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는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안다. 그가 사람들의 참된 상태를 알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를 속일 수 없다. 사람들은 실행적인 일들에서는 그를 속일 수 있지만 영적인 것들에서는 그를 속일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내적인 감각의 문제이다. 이 감각은 하나님의 영에서 나온 것이고 또한 우리의 영안에 있는 하나님의 생명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이 감각을 생명의 감각이라고 부르고, 또한 몸의 의식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서 부터 가득하여 넘쳐 흘러나온 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의 표현이다. 몸의 의식은 우리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감각이다. 만약 우리가 항상 이 감각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주님 앞에서 자신의 상태를 감지할 뿐 아니라, 주님 앞에서 다른 사람들의 상태를 감지하게 되고, 심지어 몸과 관련된 문제들을 의식하게 한다. 만약 우리가 항상 이 감각을 훈련하고 배양하며, 연습하고 사용한다면, 이 감각으로 인해 우리는 몸 안에 있는 문제들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우리가 항상 이 감각을 사용하고 훈련하며,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교회를 관심하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감각은 바로 몸의 감각이 된다. 지체들에게 어려움이 있을 때 우리는 느낄 수 있고, 그들이 연약할 때 우리는 느낄 수 있고, 그들이 기쁠 때 우리는 느낄 수 있고, 주님 안에서 그들이 승리할 때도 우리는 느낄 수 있으며, 우리는 항상 그들과 같은 느낌을 갖는다. 우리는 그들의 무거운 짐을 느끼게 되어 그것이 우리의 무거운 짐이 되고, 우리가 그들의 체험을 느끼게 되어 그것이 우리의 체험으로 변하게 되며, 우리가 그들의 어려움을 느끼게 되어 그것이 우리의 어려움이 된다. 이런 식으로 우리는 한 몸 안에 있게 될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 가운데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여전히 자신만을 돌보고, 우리가 하고 있는 특정한 일을 좋아하며, 여전히 세상에 대한 애착을 갖고 있고, 우리 안에 있는 죄악을 용인한다. 우리가 자신을 돌보기 때문에 우리 안에 마땅히 가져야 될 느낌을 억누르고 심지어 우리 안에 느낌이 있을 때조차 무시해버린다. 몸의 느낌이 우리에게 올 때 우리는 자신의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일에 바쁘기 때문에 그 느낌을 관심하지 않으며, 심지어 그 느낌을 억눌러버린다. 이런 것들은 모두 비정상적인 상태이다.

 

만약 우리에게 몸의 감각이 있다면 무릇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들이 축복을 받았을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지방이 아닐지라도 우리는 함께 기뻐할 수 있고, 심지어 다른 교회가 받은 축복으로 인해 더욱 기뻐할 것이다. 우리가 있는 지방교회가 아닐지라도 단지 어떤 성도가 어려움을 당하고 어떤 형제자매가 은혜를 받으면, 우리는 그들과 동일시되어 그의 어려움과 기쁨을 동일하게 느낄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런 경지에 이른다면 몸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풍부할 것이고 지방을 초월할 것이다. 우리의 감각은 더 이상 지방적이지 않고 지방을 초월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감각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몸에게 공급이오며, 이 공급은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320-322, 324-325, 328-329쪽)추가로 읽을 말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17장; 워치만 니 전집, 제3집, 57권(초판-제3집, 11권), 10,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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