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의 실재의 나타남(2) 「〔2〕 왕국의 나타남에 있어서 마태복음은 그리스도인들, 이방인들, 유대인들 모두를 위해 쓰여짐」
왕국의 실재,외형,출현
2013-03-14 , 조회 (126)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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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마태복음이 오직 유대인의 경륜과만 관련 된다고 말하면서 마태복음을 받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마태복음이 그리스도인들이나 이방인들을 위해 기록 되지 않고 유대인들을 위해 기록되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태복음이 우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1장에서의 주 예수님 또한 우리를 위하지 않는다. 예수요, 여호와-구원자시요, 임마누엘이요, 우리와 함께 게신 하나님이신 분이 우리를 위하시지 않게 된다. 이 책에서 주 예수님이 단지 유대의 믿는 이들만을 위한다고 말하는 것은 논리적이지 않다. 사실상 교회 안에는 유대인도 헬라인도 없다(골 3:11). 우리가 이 책을 다른 사람들에게 속하게 한다면, 결국 우리는 마태복음을 잃게 된다. 마태복음을 우리 자신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 속한 것으로 분류한다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것이다. 우리가 요한복음 3장 16절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마태복음 25장 28절부터 30절까지도 사랑해야 한다. 여러분이 요한복음 3장 16절의 액자를 벽에 걸어 두었다면, 여러분은 반드시 마태복음 25장 28절부터 30절까지의 액자도 걸어두어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하여 교리적으로 따지지 말라. 여러분의 체험에서 여러분은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 있는가, 두 달란트를 가지고 있는가, 혹은 한 달란트를 가지고 있는가? 여러분이 한 달란트를 가진 세 번째 범주의 사라들이라면, 여러분은 신실한 종인가 아닌가? 여러분은 주 예수님이 돌아오실 때 여러분과 계산하실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주님이 계산하러 오실 때 여러분의 상태는 어떠할 것인가?

 

어떤 사람들이 마태복음은 유대인들을 위할 뿐 우리를 위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때문에, 우리는 이제 누가 복음을 보기로 하자, 원칙적으로 누가 복음에 언급된 것은 거의 정확히 동일하다. 누가복음 19장에서 종교적인 사람들이 하나님의 왕국이 나타나기를 기대하고 있었을 때, 주 예수께서는 하나의 비유를 말씀하심으로 그것이 그들이 기대한 바대로 나타나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셨다. 주님의 말씀 안에서 조차도 우리는 왕국의 두 방면을 볼 수 있다. 한편으로 하나님의 왕국은 그들 가운데 있었으며, 다른 한편으로 하나님의 왕국은 오고 있었다. 누가복음 19장 11절의 시작에서 주님은 왕국이 멀리 있음을 지적하고 계셨다. 어떤 귀인이 왕국을 받으러 먼 나라로 갔다. 이 비유에서 먼 나라는 아버지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삼층천을 의미한다. 귀인이신 주 예수님은 왕국을 받으러 먼 나라로 가셨다. 이것은 왕국이 나타나지 않고 멀리 있음을 바리새인들에게 지적해 주신 것이다. 귀인은 먼 나라로 가면서 그 종들이 그를 위해 장사할 수 있도록 그의 자본을 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 비유에 있는 원칙들은 마태복음 25장에 있는 원칙들과 정확히 동일하다. 첫 번째, 두 번째 종들은 귀인으로부터 칭찬을 받았으며, 보상으로서 각각 열 고을과 다섯 고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아다. 이것은 우리가 그분과 함께 왕 노릇하리라는 바울의 말과 일치한다(딤후 2;12). 고을들을 다스린다는 것은 왕으로서 다스린다는 뜻이다.

 

동일한 개념이 성경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에서도 계속되는데, 거기에서 이기는 자들은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게 될 것이다(2:26-27). 그들은 성들을 다스릴 뿐 아니라 만국을 다스릴 것이다. 계시록 3장 21절은 이기는 자들이 주 예수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 그분으로 더불어 왕 노릇한다는 것을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계시록 20장 4절부터 6절까지는 이기는 자들이 천년동안 왕들로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 노릇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51.왕국의 나타남(2) l 작성자: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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