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
보상은 하늘에 있는 저택이 아니다. 다시 우리는 성격의 순수한 말씀을 살펴보아야 한다. 지혜로운 처녀들에게 있어서 보상은 혼인 잔치의 누림이다. 신실한 종들에게 있어서 보상은 주님의 즐거움과 만국에 대한 다스림과 권위이다. 당신은 주 예수께서 오실 때 당신이 보상을 받으리라고 확신하는가? 여러분은 주 예수께서 오고 계시다는 것과 여러분이 그분을 만난다는 것으로 인해 매우 기뻐할지 모르지만, 여러분이 그분을 만날 때 그분이 여러분에게 보상하실 것인가? 나는 주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가 보상을 얻지 못하고 드러나게 될까 두렵다. 보상은 우리의 행함에 근거할 것이다. 구원받은 후에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어떻게 살고, 행하고, 기능을 발휘하고, 일하는가. 주님이 우리에게 보상하시는 근거이다. 이러한 관념은 마태복음 16장 27저에 씨로서 뿌려졌다.
이제 고린도 후서 5장 9절부터 10절까지를 읽어보자 이 구절들에서는 마태복음 16장에서 뿌려진 씨가 꽃이 피게 된다. 이 구절들에 대한 최상의 번역은,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열망하노라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띠라 받으려 함이라]이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열망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천당에 가려는 열망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 이 구절들은 천당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언급한다. 그것은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 심판대 앞에 나타나리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구절은 우리 몸으로 행한 것들을 따라 무엇인가를 받으려 함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뭔가 선한 것을 행했다면 우리는 상을 받을 것이다. 우리가 뭔가 악한 것을 행했다면, 우리는 어떤 종류의 징벌을 받을 것이다.
어떤 이들은 주님의 구속이 완성되었고 그분이 그들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에 그들은 아무런 징벌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따질지 모른다. 그들의 관념에 다르면, 그것은 단지 구원받는가. 멸망하는 가의 문제일 뿐이다. 그들이 구원받았다면 어느 날 그들은 천당에 가게 될 것이다. 그들이 구원받지 못한다면 어느 날 그들은 지옥에 갈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근시안 적이고 잘못된 관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수수한 말씀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고린도 후서 5장 9절부터 10절까지는 우리가 다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리라고 말한다. 그것은 우리가 은혜의 보좌 앞에 나타나게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어떤 이들은 고린도 후서에 언급된 그리스도의 심판대가 계시록 20장에서의 크고 흰 보좌와 동일하다고 잘못 생각했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크고 흰 보좌는 천년 왕국 이후에 부활될 불신자들의 심판을 위한 것이다. 흰 보좌에서의 심판은 보상을 위해 있지 않고, 누가 구원받으며 누가 멸망을 받는 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그 심판은 영원한 멸망과 관계된다. 고린도 후서에 언급된 그리스도의 심판대는 불신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믿는 이들을 위한 것이다. 그들이 구원받을 것인가 멸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보상을 받을 것인가 손실을 당할 것인가를 결정한다. 여기서 손실이라는 단어는 사실상 약한 단어이다. [징벌] 또는 히브리서 12장에 다라 [징계]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낫다.
많은 근본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그리스도인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징벌을 받는다거나 징계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으로부터 어떤 징계를 받을 필요가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들까지도 그것이 이 시대에 일어날 뿐 다음 시대에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분이 그분의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이 시대에 일어날 뿐 다음시대에는 일어나지 않음을 가리키는 구절을 신약에서 한 군데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어떤 구절들은 주님이 돌아오신 후에 그분이 그분의 자녀들을 다루시리라는 것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누가 복음 12장 46절부터 47절까지는,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이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치 아니한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라고 말한다. 이 구절들은 이 시대뿐 아니라 주님이 다시 돌아오신 후에도 그분은 여전히 그분의 자녀들을 다루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52.왕국의 나타남(3) l 작성자:희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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