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예루살렘 - 『제37장 믿는 이들에게 새 예루살렘을 적용함-삼일(三一)을 삶』-「〔2〕새 예루살렘의 삶-<2>아들과 함께 삶」
새예루살렘-삼일을 삶
2013-04-17 , 조회 (108)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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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 함께 삶

 

우리는 또한 하나님의 체현이신(골 2;9) 아들과 함께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 당신이 아버지를 가질 때 아들을 가지며 당신이 아들을 가질 때 아버지를 갖는다. 하나님의 체현이신 아들은 생명이시다(골 3:4). 우리는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와 함께 살지만 우리는 생명이신 아들과 함께 산다. 신약에서는 아버지를 생명이시라고 말하지 않고 항상 아들을 생명이시라고 말한다(골 3:4, 요 14;6). 샘으로부터 흐름이 나오듯이 생명은 근원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샘이신 아버지와 함께 살며 생명과 생명공급과 생명나무이신 아들과 함께 산다(계 22:2, 2:7). 요한 계시록 2장 7절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오늘날의 교회 생활 안에서도 우리는 생명나무를 먹을 수 있다.

 

주 예수님은 우리의 매일의 생명 공급이시며 이 공급을 누리기 위해서 우리는 날마다 그분의 이름을 불러야한다(롬 10:12). 매일매일 우리는 계속해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이 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오, 주여!]라고 부를 때에도 매우 좋지만 [오, 주 예수여!]라고 부를 때만큼 달콤하지 않다. 우리의 체험에서 예수라는 이름을 더해서 부를 때 더욱 달콤해 진다. 만일 우리가 [오, 주 예수 그리스도여!]라고 부른다면 우리의 부름은 더욱 달콤할 것이다. 많은 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우리가 우리의 생명과 생명 공급이신 아들을 누리는 것을 방해한다. 만일 우리가 주님께 와서 그분의 사랑스런 이름을 부르고 그분의 어떠하심과 그분이 이루신 일들을 찬양하고 경배한다면 우리의 누림과 그분과의 교통은 매우 풍성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그분의 확대(빌 1:20)를 위해서 개인적으로나 광범위하게 우리 주님을 우리의 누림으로 취하는 길을 배워야 한다. 우리가 이런 방법으로 주님을 누릴 때 우리는 그분을 확대한다. 가끔 주님께 하는 우리의 기도는 우리의 소극적인 상황이나 환경을 불평하는 [가련한 길]안에 있다. 이런 경우에는 그리스도를 확대하고 있지 않다. 우리의 환경이나 소극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리스도를 충분히 누리기를 배울 필요가 있다. 그때에야 우리는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의 기대와 소망은 살든지 죽든지 우리 몸에서 그리스도가 확대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빌 1:20). 바울은 그의 매일의 구원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그 영의 넘치는 공급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감옥에서까지도 그리스도를 살았다(빌 1:19). 만유를 포함한 이 넘치는 공급을 통하여 바울은 그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확대되도록 구원을 받았다. 그는 감옥에서도 삼일 하나님의 체현이시며 생명이시며 생명공급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항상 생명나무이신 예수님을 먹고 있었음을 뜻한다.

37.믿는 이들에게 새 예루살렘을 적용함-삼일을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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