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얼굴
에스겔
2013-05-09 , 조회 (2049)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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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우편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좌편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겔 1:10) 
 
As for the likeness of their faces, they had the face of a man; and the four of them had the face of a lion on the right side, and the four of them had the face of an ox on the left side, and the four of them had the face of an eagle.(Ezek.1:10)

너희는 내가 이집트 사람들에게 무엇을 하였는지를 보았고, 내가 어떻게 너희를 독수리 날개에 태워 나에게 데려왔는지도 보았다.(출 19:4)

You have seen what I did to the Egyptians and how I bore you on eagles' wings and brought you to Myself.(Exo. 19:4) 

그러자 장로들 중에 하나가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울지 마십시오. 보십시오, 유다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그 두루마리와 일곱 봉인을 뗄 수 있습니다."(계5:5)

And one of the elders said to me, Do not weep; behold, the Lion of the tribe of Judah, the Root of David, has overcome so that He may open the scroll and its seven seals.(Rev. 5:5) 
 
우리는 또한 사자의 얼굴을 지녀야 한다. 성경에서 사자는 담대함, 기세, 힘, 승리를 상징한다.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우리는 먼저 사람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학교, 직장, 이웃들 가운데서―우리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또한 사자이어야 할 것이다. 직장에서 당신이 합당한 사람이라면, 사람들이 당신에게 끌릴 것이다. 그러나 당신에게 끌리는 사람들이 당신을 부패시키는 ‘세균들’이 될지도 모른다. 그들은 당신을 좋아하므로 당신을 어떤 종류의 세상 오락에 참여하라고 초대할 것이다. 그러한 때에 당신은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사자처럼 행동해야 한다. 이것은 죄악이나 세상적인 것을 향하여 우리가 사자처럼 담대해야 함을 뜻한다. 당신의 직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당신에게 세상적인 것들에 관해 말하면 당신이 사자처럼 행동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대개 예수님이 상냥하고 부드러우셨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적어도 어떤 경우는 전혀 상냥하지 않으셨다. 예를 들어, 그분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하여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셨다”(요 2:14-15). 더 나아가 마태복음 23장에서는 종교인들을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33절)라고 부르시면서 그들을 심하게 꾸짖으셨다. 이런 상황에서 그분은 실로 사자처럼 담대하셨다. 계시록 5장 5절에서 그분은 심지어 ‘유다 지파의 사자’로 불리셨다. 우리도 그와 같이 사자의 얼굴을 가져야 할 때가 있다. 성경에서 사자는 담대함, 기세, 힘, 승리뿐 아니라 통치를 상징한다. 사자는 동물의 왕이다. 거듭남을 통하여 생물들이 된 우리는 하나님을 나타내는 사람이어야 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통치하는 사자이어야 할 것이다.
 
죄, 세상, 사탄을 향해서 사자처럼 강하고 담대하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그분의 통치권을 세우실 것이다. 우리에게는 사람의 얼굴과 사자의 얼굴뿐 아니라 소의 얼굴도 필요하다. 사자의 얼굴은 소의 얼굴에 의해 균형이 잡힌다. 당신이 직장에서 사자의 얼굴만 갖는다면, 사람들을 확신시킬 수 없다.당신은 소의 얼굴을 가짐으로써 균형 잡혀야 한다. 소는 기꺼이 짐을 지고, 일을 하며, 심지어 자신을 희생하기까지 한다. 우리 모두는 그러한 모습을 갖고서 다른 사람들을 돌보고, 짐을 지며, 책임을 맡고, 심지어 우리의 생명까지 희생하는 그러한 실제를 표현할 필요가 있다. 만일 당신이 직장에서 일하는 데 합당한 사람이요, 사자처럼 담대하며, 또 책임을 지는 데 신실하다면, 당신은 다른 이들에게 좋은 인상을 줄 것이다. 그러한 인상을 주려면 사람처럼, 사자처럼 행동할 뿐 아니라, 섬기고 고통을 겪는 소처럼 행동해야 할 것이다.


사무실을 청소해야 한다면 솔선해서 하고 다른 직원들보다 더 많이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가운데 당신은 기꺼이 희생하며 남을 돕고 섬긴다는 것을 동료들에게 보여 줄 것이다. 당신에게 소의 얼굴의 실제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사람의 얼굴, 사자의 얼굴, 소의 얼굴을 가진 당신을 보면, “이 사람은 참된 그리스도인이야.”라고 말할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에게는 뒤쪽에 감추인 얼굴, 곧 독수리의 얼굴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로 인도하신 후, 그들에게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고 하셨다(출 19:4). 이로 볼 때 성경에서 독수리는 능력이 충만한 초월하시는 하나님을 상징한다. 하나님은 초월하시며, 기운차고, 능력이 충만하시다.
 
어떤 것도 그분을 압도하거나 압박하거나 내리누를 수 없다. 당신이 그분을 억누르려고 할수록 그분은 더 기운차게 초월하신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생명이 그 안에 있는 자이며, 이 생명은 초월의 생명으로서 우리로 활기와 초월의 표현을 갖게 한다. 이것이 독수리의 얼굴이 상징하는 바이다. 우리는 독수리가 되어 어떤 것도 우리를 잡아매거나 억누르거나 짓누르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것은 핍박과 칭찬을 모두 이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떤 때는 핍박보다 칭찬을 이기는 것이 더 어렵다. 어떤 이들은 핍박을 이길 수 있지만, 사람들의 칭찬을 이기지 못한다. 우리는 이래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핍박하든 칭찬하든 독수리 날개를 타고 날아가 버려야 한다. 우리는 기운차게 초월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에서 주님이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후 사람들이 그분을 왕으로 모시려고 했을 때에 하신 행동이다.

이에 관해 요한복음 6장 15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그분은 독수리의 능력으로 초월하셨기 때문에 붙들려 매일 수 없으셨다. 그리스도인은 어느 것에도 매이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가지 것들로 매일 수가 있다. 어떤 이는 가난에 매이고, 또 어떤 이는 부(富)에 매인다. 우리가 합당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가난이든 부이든 어느 쪽에도 매이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바울처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2-13). 바울의 말은 그가 독수리의 날개를 가졌음을 보여 준다. 그는 사람과 사자와 소와 독수리의 얼굴을 지녔다.(겔 LS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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