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9) 엘리야는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이나 의도나 기분 안에서 기도하지 않았고,환경이나 상황에서 유발된 어떤 동기로도 기도하지 않았다.오히려 그는 주님께서 그분의 뜻의 성취를...
기도와 주님의움직임
2013-05-24 , 조회 (102)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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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8:16 그 영께서 직접 우리의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을 증언하십니다.

26 이와 같이 그 영도 우리의 연약함을 함께 짊어지심으로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는 마땅히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하지만, 그 영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직접 중보 기도하십니다.

 

우리에게 주님의 움직임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빛 비춤을 더 받게 되고, … 더 많이 보게 될 것이다. … 여러분이 주님의 움직임 안에 있으면 있을수록, 더 많은 눈을 갖게 될 것이고, 더 분명하게 보게 될 것이다. … 만일 바퀴가 움직임을 멈춘다면 보는 것을 멈출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 우리는 계속 나아감으로써 본다. 더 많이 진행할수록 더 많이 본다. 오늘은 어느 정도까지만 볼 수 있으나, 내일은 더 많이 진행하여 더 많이 볼 것이다. 움직임을 멈춘다면 보는 것이 멈출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움직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반드시 보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에스겔 라이프 스타디, 9장, 114-115쪽)

 

에스겔서 1장에 있는 가장 위대한 계시는 바퀴 안에 있는 바퀴이다(15-16절). … 바퀴는 움직이기 위한 것이다. 주님의 움직임과 우리의 움직임은 둘 다 바퀴로 상징되었다. 바퀴 안에 있는 바퀴는 우리의 움직임 안에 있는 주님의 움직임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백성이 움직일 때 하나님도 움직이신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하나님도 움직이실 길이 없다. (세계정세와 주님의 움직이심의 방향, 11-12쪽)

 

에스겔서 1장 16절 하반절은 “그들의 모양과 구조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라고 말한다. 바퀴들의 모양이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우리가 바퀴에 대해 말할 때, 바깥 부분은 테이고 중심은 축이며 그 사이에는 바퀴살이 있다고 한다. 따라서 바퀴에는 세 가지 주된 부분인 테와 축과 살이 있다. 그러나 에스겔서 1장에는 축이나 살이 없다. 오히려 바퀴 안에 바퀴가 있다.

 

야고보서 5장 17절이 이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 구절은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했다고 말한다. ‘간절히 기도했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직역하면 ‘기도 안에서 기도했다’를 의미한다. 이것은 주님께서 엘리야에게 하나의 기도를 주셨고, 엘리야는 그 기도 안에서 기도했다는 말이다. 엘리야는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이나 의도나 기분 안에서 기도하지 않았고, 환경이나 상황에서 유발된 어떤 동기로도 기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주님께서 그분의 뜻의 성취를 위해 주신 기도 안에서 기도했다. 엘리야가 기도 안에서 기도했다는 것은 그의 기도 안에 기도가 있었다는 의미이다. 이것이 바로 바퀴 안의 바퀴이다.

 

우리는 바퀴 안의 바퀴라는 문제를 교회생활에 적용해 볼 수 있다. 만일 교회가 합당하게 움직이고 있다면, 교회의 그 움직임 안에 주님의 움직임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움직임 안에 주님의 움직임이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움직일 때 주님께서 우리의 움직임 안에서 함께 움직이신다.

 

안에 있는 바퀴는 움직임을 위한 능력의 근원이다. 이것은 안에 있는 바퀴가 바퀴를 움직이게 하는 ‘모터’임을 뜻한다. 우리의 움직임이 참되다면, 반드시 우리의 움직임 안에 주님의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

 

각 바퀴마다 그 바퀴를 돌리는 축이 있다. 축이 멈추면 바퀴도 멈춘다. 우리는 축이 큰 바퀴의 테 속에 있는 작은 바퀴라고 말할 수 있다. 큰 바퀴가 회전하는 것은 작은 바퀴가 회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생활에서 주 예수님은 축, 곧 바퀴 안의 바퀴이시고 우리는 바퀴의 테이다. 교회들이 주님과 함께 움직이지 않는다면 바퀴 안의 바퀴가 없기 때문에 나아갈 길이 없다. 그러나 교회들이 주 예수님과 함께 움직일 때, 그분은 바퀴 안의 바퀴가 되신다.

 

어떤 것도 이런 종류의 움직임을 좌절시키거나 멈추게 할 수 없다. 최근에 교회들 가운데 다수의 성도들이 교회생활의 확산을 위해 다른 도시들로 이주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의 이주에 관해 들었을 때 그것을 경멸하고 그것이 어떤 것을 성취할 수 있을까 의아해 했다. 나는 그들의 이주가 주님의 움직임, 곧 바퀴의 움직임이며, 이 바퀴 안에 다른 바퀴가 있다고 증언할 수 있다. 그들의 이주 안에는 바퀴 안의 바퀴가 있었다. (에스겔 라이프 스타디, 9장, 115-116쪽)

추가로 읽을 말씀: 로마서에 있는 두 영, 3장; 야고보서 라이프 스타디, 12장

 

출처: 한국복음서원<아침부흥 거룩한 말씀>

http://www.kgbr.co.kr/mediazone_manna.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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