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9) 하나님의 일의 시작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일의 추진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 두 가지는 우리와 조금도 관계가 없다. 같은 원칙으로 하나님의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이지 우리의 영광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 .
2013-05-29 , 조회 (119)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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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7:18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만,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그 사람은 참되며, 그 사람 속에는 불의가 없습니다.

마 14:23 무리를 돌려보내신 후에, 그분은 기도하시러 홀로 산에 올라가셨고, 밤이 되어도 거기 혼자 계셨다.

첫 번째 하나님-사람은 그분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으셨고,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셨다(요 7:18). 나는 니 형제님과 약 이십 년간 함께 있었다. 동역자들과 관련해서 그를 가장 괴롭혔던 것은 동역자들 가운데 야심이 없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야심이 있다는 것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다. 교회생활 안에서 우리가 주님을 위해 봉사할 때 항상 야심이 있다. 한 형제는 장로가 되고자 하는 야심이 있을 수 있다. 장로가 되기 위하여 그는 먼저 집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집사가 되는 것은 장로가 되기 위한 예비 단계이다. … 우리 모두는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이며 같은 죄, 같은 질병에 걸려 있다. … 여러 해 동안 나는 우리 가운데 많은 동역자들이 야심으로 쓸모없게 된 것을 보았다. 주님의 긍휼로 나는 나의 자아와 나의 의도를 처리하는 비결을 배웠고, 이러한 비결의 도움으로 나는 자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을 처리할 수 있었다. (고봉 메시지 14권, 하나님-사람의 생활, 188쪽)

 

요한복음 7장 18절에서 주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스스로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만, 보내신 분의 영광을 구하는 그 사람은 참되며, 그 사람 속에는 불의가 없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자기 자신의 영광을 구하고 있었다. 이 구절의 문맥에 따르면, 주님은 그들에게 만약 그들이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았다면 그분께서 아버지의 보냄을 받으셨음을 알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자아와 목적과 야심이 우리의 일에서 파괴하는 세 마리의 큰 ‘벌레’라는 것을 보아야 한다. 우리가 주님의 회복 안에서 항상 주님을 위해 쓰임받고자 한다면, 반드시 항상 우리의 자아를 부인하고, 우리의 목적을 거절하며, 우리의 야심을 포기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목적을 갖지 않고, 오직 주님의 뜻만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 반드시 이 세 가지, 즉 자아가 없고 목적이 없고 야심이 없기를 배워야 한다. 우리는 자아를 부인하고 자신의 목적을 거절하며 우리의 야심을 버림으로써 그분을 위해 수고하며 일하는 것만을 알아야 한다. 자아와 목적과 야심은 우리 안에 있는 세 마리의 뱀이나 전갈과 같다. 우리는 그런 것을 미워하기를 배워야 한다.

 

주님은 무리와 함께 기적의 결과 안에 머무시지 않았고, 그들을 떠나 홀로 산에서 아버지와 함께하시며 기도하셨다. 만약 우리가 어떤 곳에 가서 큰 성공을 이루었을 때, 우리는 바로 그곳을 떠나겠는가, 아니면 그 성공 안에서 그것을 누리기 위해 머물겠는가? 우리는 주 예수님의 본을 보고 따라야 한다. 그분은 자신이 행하신 놀라운 기적의 결과에 머무르지 않으셨다. 대신에, 그분은 기도하시러 홀로 산으로 올라가셨다. ‘홀로’라는 말은 매우 의미가 깊다. 이것은 주님께서 사람들이 자신이 기도하러 간다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하셨음을 의미한다. 주님께서 알리셨다면, 사람들이 그분을 따라갔을 것이다. 그분은 기도 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하시기 위해 홀로 떠나셨다. 나는 이 세 표현, ‘아버지와 함께’, ‘산에서’, ‘기도 안에서’를 좋아한다. 우리는 기도 안에서 산에서 주님과 함께 있기를 훈련함으로써 여기에 있는 주님의 본을 배워야 한다. 그분께서 하늘을 우러러보신 것은 자신을 신뢰하지 않으셨음을 뜻한다. 그분께서 산에 올라가신 것은 기도 안에서 아버지와 함께 있기를 원하셨음을 뜻한다. (고봉 메시지 14권, 하나님-사람의 생활, 189-190쪽)

 

하나님의 일의 시작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일의 추진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 두 가지는 우리와 조금도 관계가 없다. 같은 원칙으로 하나님의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이지 우리의 영광이 아니다.

 

이런 까닭으로 하나님은 그분의 일을 위해서 연약하고 어리석고 세상에서 멸시받는 이들을 택하시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장 29절은 “어떤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영광을 얻는 것을 보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다. 심지어 그분의 아들까지 사람에게 주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에게 그분의 영광을 주지 않으신다. 우리는 다만 주님의 영광 안에 들어갈 수 있을 뿐이다. (워치만 니 전집, 제2집, 제42권, 199-201쪽)

추가로 읽을 말씀: 섞임에 관한 실제적인 요점들, 4장

출처: 한국복음서원<아침부흥 거룩한 말씀>

http://www.kgbr.co.kr/mediazone_manna.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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