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을 죽게 한 것을 우리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은 예수님의 생명도 우리 몸에서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살아 있는 우리가 항상 예수님을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으로써, 예수님의 생명도 우리의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생명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합니다.(고후 4:10-12)
Always bearing about in the body the putting to death of Jesus that the life of Jesus also may be manifested in our body. For we who are alive are always being delivered unto death for Jesus' sake that the life of Jesus also may be manifested in our mortal flesh. So then death operates in us, but life in you.(2 Cor. 4:10-12
십자가가 없으면 생명이 없고 생명의 사역도 없게 된다. 고통을 받는 목적은 완전하고도 풍성한 사역을 위해서이다. 이론이 이것을 대치할 수 없다. 사역의 궁핍함은 쉬운 길을 택했기 때문이다. 느슨하게 세월을 보내는 사람에게는 늘 아주 적은 공급만이 있다. 그들은 사람들의 필요를 알지 못한다. 물론 나는 우리가 스스로 번거로움을 자초하거나 자신의 몸을 가혹하게 대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영 자신은 우리의 체험을 책임지신다. 그 영은 우리의 사역이 풍성해지도록 우리의 몸과 마음 혹은 영의 각 방면에서 ‘예수의 죽음’을 체험하도록 인도하신다. 우리의 책임은 다만 따라가는 것일 따름이다. 어쩌면 여러분은 내게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쓰임받고 몸에 생명을 공급할 수 있느냐고 물을 것이다.
많은 일을 하려고 결심하지 말고 뒤로 물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하지도말고, 평상시 주님과 동행하는 길에서 단순히 십자가가 운행하도록 하라. 말하거나 일을 통해서 봉사하는 사람들은 어느 날 활동이나 말하는 것이 금지될 때, 그들은 자신에게 사역이 없어졌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여러분의 사역의 분량은 여러분이 활동하는 정도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예수의 죽음’으로 여러분 안에서 활동하게 해야만 생명이 다른 사람 몸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죽음은 우리 안에서 활동하고, 생명은 여러분 안에서 활동합니다.”(고후 4:12) 라는 말씀은 몸의 변치 않는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방면에서 몸의 성장을 가져오도록 특별히 수고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여러분으로 거치게 한 것은 자연히 몸 안에 생명의 증가를 가져오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또한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공급하기 위해 자신의 죽음의 체험을 간증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이 기꺼이 죽기만 한다면 다른 사람은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실재는 자연히 나타날 것이며 사람의 전달은 필요 없다. 우리가 ‘신언을 멸시’(살전 5:20)하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몸 안의 사역이 말하는 것이나 간증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님을 확신한다. 우리가 개인적으로 주님과 은밀한 가운데 통과한 것은 몸에게 생명을 공급하기에 충분하다. 우리가 만일 주님을 위해 고난받는다면 다른 사람에게 고난 받는 이야기를 알릴 필요가 없이 그 고난은 자연히 다른 사람을 자라게 한다.
우리가 받은 고난을 말하는 것은 무익한 것일 뿐 아니라 도리어 어떤 때는 다른 사람의 미움을 사게 된다.그리스도의 몸이 공급을 얻는 것은 먼저 말하는 것과 일하는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적인 실재로 말미암은 것이다. 성령께서 관심하시는 것은 진실된 일이며 그분은 절대로 거짓된 일을 위해 간증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말로 전달한 것은 우리가 이미 교회에게 가져다준 그리스도이다. 우리가 앞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몸은 생명의 교통을 통해서 공급을 얻는다. 죽음이 우리 몸에 역사할 때 생명은 아주 간단하고도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에게 전달된다. 그러므로 문제는 여러분이 한 것이나 말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가 아니라 여러분이 하나님의 손에서 통과한 것이 얼마나 되는가이다.
몸의 하나 됨의 기초를 떠나서는 참된 사역이 없다. 여러분이 이 사실을 보기 전까지 자신이 어떻게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가를 관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은 자신이 무엇을 받았으면 몸이 즉각 얻게 됨을 안다. 여러분이 소유한 것은 곧 몸이 소유한 것이므로, 힘을 들여 그것을 전달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은 교회를 건축하기 원하는가? 그렇다면 교회가 여러분 안에서 건축되도록 해야 한다. 여러분이 머리로부터 받은 것은 그분의 몸인 교회가 자연히 얻게 된다. 여러분이 무엇을 받지 않았다면 교회는 절대로 여러분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없다. 받는 문제가 해결되면 사역의 문제도 해결된다. 받는 문제는 '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서 해결되는 것이다.(워치만 니 전집, 40권, 177-17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