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삼일 하나님의 표현을 위한 신성한 영광 안에서 하나』-「〔4〕 하나 안으로 온전케 됨」
영광-성구관주각주,말씀
2013-09-14 , 조회 (120) , 추천 (0) , 스크랩 (0)
출처
원문

3. 하나 안으로 온전케 됨

 

23 절에서 주님은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하나 안으로 온전케 되게 하여 세상으로 하여금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 안으로 온전케 될 수 있는가? 오직 신성한 생명의 영광 안에서이다. 우리는 신성한 생명의 그 영광 안에서 전적으로 온전케 되도록 이 영광스러운 신성한 생명에 의해 살아야 한다. 우리 자신을 부인함으로 우리는 하나님 안으로 온전케 되는 정도까지 신성한 생명을 체험할 수 있다. 만일 교회 생활 안에 있는 형제들이 어느 날 서로서로 논쟁하고 다투고 다음날 서로서로 자백하고 사과한다면 이것은 그들이 아직 하나 안으로 온전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이 십자가의 죽음에 대한 문제를 충분히 깨닫고 「내」가 십자가 위에서 못 박혔으며 그들이 신성한 영광의 생명에 의해 사는 그날이 바로 그들이 하나 안으로 온전케 되는 날일 것이다. 그날에 우리는 더 이상 다투거나 논쟁하지 않을 것인데, 왜냐하면 자아와 의견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 안으로 온전케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신성한 영광 안에 있는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면 우리는 아직 하나 안으로 충분히 온전케 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경지에 이를 때 우리는 하나의 가장 높은 수준에 있게 될 것이며, 단체적인 방법으로 삼일 하나님을 표현하도록 믿는이들에게 주어진 신성한 영광에 의하여 하나 안으로 온전케 된다. 우리가 이 경지에 이를 때 우리는 기꺼이 모든 것들을 버린다. 우리는 세상적으로 끄는 모든 것들을 지나칠 뿐만 아니라 또한 모든 교리들과 관념들을 지나칠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들을 내버릴 것이며 오직 한 가지-삼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표현-만을 위할 것이다. 이 표현은 새 예루살렘의 축소판이다. 새 예루살렘 안에는 세상적으로 잡아끄는 것이나 교리들, 교훈들, 관념들, 의견들이 없다. 거기에는 오직 신성한 어떠함의 영광스러운 표현만이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는 영원히 충분한 방법으로 그분을 표현하는 영광 안에 있게 될 것이다. 과거에 우리는 어떤 지방 교회들 안에서 이 단계에 이르렀었다. 그분의 은혜로 우리는 오늘날에도 또한 그러한 단계에 이를 수 있다. 그와 같은 하나는 삼일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 안에 있는 신성한 영광의 참된 누림이다. 우리가 그와 같은 영광스러운 하나 안으로 들어갈 때 우리는 기꺼이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이며 심지어 우리의 생명까지도 잃어버릴 것이다. 우리가 이 하나 안에 있을 때 그 외에 어느 것도 의미가 없다. 이 참된 하나의 세 번째 방면은 위임, 즉 목표-단체적인 방법으로 삼일 하나님을 표현하는 것-를 가진 하나이다.

 

믿는이들의 하나의 세 번째 방면은 삼일 하나님의 단체적인 표현을 위한 신성한 영광 안에서의 하나이다. 하나의 이 방면 안에서 믿는이들은 그들의 자아를 완전히 부인함으로 단체적이고 건축된 방법으로 하나님을 표현하는 그들의 온전케 된 하나의 요인인 아버지의 영광을 누린다. 이것이 믿는이들의 건축 안에서 아들이 완전히 표현되며 즉 영화롭게 되며, 아버지 또한 아들의 영화롭게 됨 안에서 완전히 표현되도록 즉 영화롭게 되도록 하는 아들의 기도를 이루는 신성한 위임의 하나이다. 그러므로 믿는이들의 궁극적인 하나는 영생 안에(아버지의 이름 안에) 있고, 거룩한 말씀에 의해서이며, 영원토록 삼일 하나님을 표현하는 신성한 영광 안에서이다.

<요한복음 라이프스터디 40>중에서

 

 


트랙백:  수신불가
추천 스크랩 전체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