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행위의 연속
아브라함이삭야곱의 하나님
2013-09-18 , 조회 (1213)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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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기 자신은 그들보다 앞서 가면서, 형에게 가까이 갈 때까지 일곱 번 땅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그러자 에서가 야곱에게 달려와 그를 껴안고 나서 야곱의 목을 끌어안고 입맞춤하였다. 그들은 함께 울었다.(창 33:3-4절)

And he himself passed on before them and bowed down to the ground seven times until he came near to his brother. And Esau ran to meet him and embraced him and fell on his neck and kissed him , and they wept.(Gen.33:3-4)

브니엘을 지날 때 야곱의 환도뼈가 위골되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브니엘에서 거친 일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몰랐다. 날이 밝자 야곱은 일어나서 전에 계획한 것에 따라 행했다. 많은 사람은 여기서 야곱을 나무라며 야곱이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지신 사람으로서 야곱은 응당 자기 활동을 멈췄어야 하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를 모르는 사람의 생각이다. 그는 모든 것을 단칼에 두 조각내야 하고 모든 것을 단숨에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실상 그리 간단한 일은 없다. 체험은 이상적인 것이 아님을 기억하라. 야곱은 단번에 이스라엘로 변하지 못한다. 그는 어제 한 떼씩 안배해 놓았기 때문에 오늘 그 계략대로 진행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보아야 할 한 가지 일은, 하나님께서 환도뼈를 만지시고 나서 이튿날 에서를 만나러 갈 때 그는 전과 같지 않고 이미 변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창세기 33장 1절부터 3절까지를 보기로 하자.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인을 거느리고 오는지라 그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여종과 그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 형 에서에게 가까이하니”. 그의 궤술은 여전하다. 심지어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 형에게 가까이 갔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었다”(4절). 그의 총명과 계략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다.

전에 그가 형을 떠나 라헬을 만났을 때 한 번 울었다. 이제 다시 에서를 보려고 돌아올 때 또 한 번 울었다. 어떤 사람은 천성적으로 울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야곱은 본래 방법이 가득하고 울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의 형을 만나고 울었다. 이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이것은 브니엘의 체험이 야곱을 온유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되게 했음을 우리에게 설명해 준다. "때에 여종들이 그 자식으로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레아도 그 자식으로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로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에서가 또 가로되 나의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가로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6-8절). 여기서 야곱은 여전히 어제 준비한 말을 하였다. 전날 그는 에서를 형이라고 칭하지 않고 ‘내 주여’라고 칭하려고 했었다. 그는 원래 계획대로 에서를 ‘내 주’라고 칭했다.

그러므로 천연적인 생명이 처리받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단번에 그 능력은 처리하셨겠지만, 그의 밖의 행위는 아마도 몇 주 혹 몇 개월의 시작이 지나야 점점 벗겨질 것이다. “에서가 가로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야곱이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형님에게 은혜를 얻었사오면 청컨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9-10절). 여기서 다음 한 마디는 야곱의 계략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즉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이다. 이 말은 야곱이 꾸며낸 겸손이 아니다. 야곱은 꾸며낼 줄 아는 사람이나 이 말 속에는 그의 계략이 들어 있지 않다. 이 말 속에는 뜻이 들어 있다. 이 말은 내가 당신의 얼굴을 뵈온즉 브니엘을 본 것 같다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그 뜻은 내가 득죄한 사람의 얼굴을 대하고 내가 잘못을 범한 사람의 얼굴을 대함이, 마치 하나님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언제든지 당신이 득죄한 사람을 만날 때 당신은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언제든지 당신이 잘못을 범한 사람을 만날 때 심판을 만난 것 같다. 만일 당신이 누구에게 잘못을 범했거나 어느 누구를 학대하여 그에게 상처를 주고서도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을 만날 때 당신은 하나님을 만난 것 같을 것이고 하나님을 만난 것같이 두려워할 것이다. 당신이 그의 얼굴을 볼 때마다 하나님이 생각나고, 그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의 심판을 당하게 된다. 야곱이 한 말은 실지 상태를 말한 것이다. 야곱은 참으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라고 말한 것이다.(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제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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