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말
마태복음
2013-09-21 , 조회 (35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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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말은 자기 시아버지와의 근친상간을 통해 잉태했다(창 38:6-27). 도덕적으로 말해서 이것은 통탄할 만한 것이며 윤리적으로 말하자면 끔찍한 것이다. 다말은 결코 선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의로웠다. 잘못은 그녀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녀가 자기보다 더 의로웠다고 인정한 시아버지 유다 쪽에 있었다(창 38:26). 그녀는 의로웠으며 장자권을 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다말의 시대에 장자권은 상당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창 38:6-8). 장자권은 두 배의 몫의 땅과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을 포함했다. 두 배의 몫의 땅은 그리스도에 대한 평상적이고 일반적인 누림이 아니라 무언가 비범하고 특별한 것이다.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은 모두 그리스도에 관계된 것이다. 

 

아브라함 후의 세대에 있어서 장자권은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기업으로 받는 것에 대한 문제이다.  에베소서 2장 12절에서 우리는 믿지 않는 이들이었을 때 우리가 그리스도 밖에 있었음을 본다. 그러나 주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는 장자권 안으로 이끌려졌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으로 넣어졌으며 그리스도는 우리의 분깃이 되었고, 심지어 그분은 우리의 두배의 분깃이 될 것이다. 그를 통하여, 그 안에서, 그와 함께 우리는 제사장 직분과 왕의 직분을 갖는다.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의 좋은 땅이요, 우리의 제사장 직분이며, 우리의 왕의 직분이다. 이제 우리는 왜 다말이 장자권 갖기를 갈망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녀는 만일 그녀가 끊긴다면 자기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끝나리라는 것을 알았다. 

 

다말은 이 축복을 그저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말은 유다의 맏아들의 아내였다. 그 아들은 장자의 권리를 상속받아야 했다. 그러나 다말의 남편은 주님 보시기에 악했으므로 주님은 그의 생명을 취하셨다(창 38:7). 주님은 또한 유다의 둘째 아들도 죽이셨다(38:8-10). 고대의 규례에 따르면, 유다는 장자권을 물려받을 한 아들을 낳기 위해 자기의 다음 아들이 다말과 결혼하도록 안배해야 했다. 그러나 유다는 그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 있어서 유다는 다말을 속인 것이다(창 38:11-14). 그러나 다말은 포기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장자권을 얻기 위하여 부적당한 수단을 사용하기까지 했다. 

 

그 수단이 부적당하든 그렇지 않든 다말은 장자권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장자권을 갖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얻는 것이다. 다말은 부적당한 방법으로 장자권을 획득했다. 그러나 성경의 신성한 기록 안에서 다말의 이름은 나쁜 이름이 아니다. 룻기 4장 12절은 이 이름이 신성함을 가리킨다. 이 구절에서 장로들은 "네 집으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 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고 말했다. 다말의 이름은 신성하다. 왜냐하면 그녀가 어떤 죄스러운 것도 주의하지 않고 오직 장자권만을 주의했기 때문이다. 이것의 중요한 의미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주의하고 그를 추구한다면 우리가 그를 얻을 수 있는 길은 어떤 것이든 바른 길이라는 것이다. (마 LS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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