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름(3)
아브라함이삭야곱의 하나님
2013-10-03 , 조회 (1150)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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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여호와님!  제가 주님의 구원을 기다려 왔습니다.(창 49:18)

I have waited for Your salvation, O Jehovah.(Gen.49:18)

마지막에 야곱은 그의 아들들을 불러와 훗날 그들이 당할 일들을 일일이 알려 주었다. 그가 열두 아들의 장래 일을 말할 때 또한 그들의 과거 행위를 언급하였다. 그가 이렇게 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들들의 과거 상태를 말할 때 야곱은 자기의 본모습을 상기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들들은 어느 정도 아버지를 닮게 되기 때문에 그들의 연약함과 괴팍함과 더러움을 말하는 것은 마치 자기를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과거 아들들의 상태를 말하는 것은 실로 그의 과거 상태를 말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아들들의 장래를 말할 때 다 밝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동정심에 사랑을 가득히 가지고 말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만 보고서도 현재의 야곱이 과거의 야곱과 달라졌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전에 세겜에서 디나가 더렵혀진 일로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과 성중의 모든 남자들을 죽일 때 야곱은 시므온과 레위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이 땅 사람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창 34:30). 이것은 세겜에 있을 때 야곱이 한 말이다. 그러나 지금 야곱이 그 일을 언급할 때에는 이렇게 말했다. “시므온과 레위는 형제요 그들의 칼은 잔해하는 기계로다 내 혼아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 내 영광아 그들의 집회에 참여하지 말지어다 그들이 그 분노대로 사람을 죽이고 그 혈기대로 소의 발목 힘줄을 끊었음이로다

그 노염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49:5-7). 이제 야곱이 본 것은 개인의 이해득실의 문제가 아니라 죄악의 문제이다. 전에 그가 주의한 것은 개인의 이해득실이었다. 그는 너희가 이렇게 행하여 세겜 족속들이 일어나 복수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모의에 상관하지 말지어다”라고 말했다. 이 뜻은 사람을 죽이는 이런 일에 참여할 수 없고 잔인한 이런 일은 저주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새롭고 씻겨지고 깨끗게 되고 신선해진 야곱을 본다. 그는 이미 전에 없었던 다른 성품을 소유하게 되었다.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16-17절).

그가 말한 단의 장래는 좋지 못하다. 여러 방면에서 독이 있고 많은 거역의 일이 단으로부터 나올 것이다.
여기까지 말할 때 그는 즉시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18절)라고 말했다. 그의 뜻은 이런 거역의 일에 대하여 나는 방법이 없고 당신의 구원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이 말에서 그의 새로운 성품이 드러났다. 한 면에서 그는 예언을 하였고 또 한 면에서는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렸다. 창세기 49장은 열두 아들에 대한 야곱의 예언이다. 후에 이 열두 지파에 대한 예언이 하나하나 성취되었다. 여기서 야곱은 하나님의 사상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사상을 깨달은 선지자로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을 그의 아들들에게 알려 주었다. 여기서 야곱이 아브라함과 이삭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에브라임과 므낫세 및 열두 지파가 장래 당할 일들을 다 말해 냈다. 이 점은 그가 하나님과 교통하고 하나님과 왕래하는 사람임을 증명한다. 본래 야곱은 아무 소망도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활하고 궤술이 많으며 자기 뜻대로 행하는 야곱에게서 하나의 그릇을 만들어 내셨다. 야곱의 말년 역사를 읽을수록 우리는 야곱이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된다. 여기에 하나님께서 파쇄하신 한 사람이 있다. 이것은 성령의 조성이요, 한 단계 한 단계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혜롭고 은혜로우며 인내가 있으신 분으로서 그분의 일을 완성시키심을 인정할 것이다. 야곱이 예언을 마칠 때 성경은 “이들은 이스라엘의 십이 지파라” (28절)고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야곱이 임종할 때 십이 지파가 거기 있었고 하나님의 백성도 거기 있었음을 본다. 형제자매여,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이루고 그분의 모든 족속으로 복을 얻게 할 그분의 그릇으로서의 한 무리의 백성을 얻고자 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하여 이루신 일은 하나님께서 교회로 말미암아 이루시고자 하는 일을 예표한다. 교회의 사명은 바로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를 하는 것이다. 교회는 회복 역사에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그릇이다. 교회가 회복 역사를 위한 하나님의 그릇이 되기 위해서는 아브라함의 하나님과 이삭의 하나님과 야곱의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우리 가운데 누가 아브라함이 되고 누가 이삭이 되며 누가 야곱이 되라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을 우리 모두가 알아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가 이것을 알 때 비로소 하나님의 목적을 이룰 하나님의 그릇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적인 체험이 조금 있다고 해서 만족해 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볼 때 하나님은 우리가 아브라함이 알았던 것처럼 아버지를 아는 것과 이삭의 누림과 야곱이 받은 징계의 세 방면의 체험을 갖기를 원하신다. 이 세 가지는 의문에 속한 교리가 아니라 모두 전일한 체험이자 전일한 인식이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이상을 얻고 계시를 얻으며, 성령의 통제를 받아야만 하나님의 그릇이 될 수 있고, 그분이 성취하고자 하시는 목적을 이루어 드릴 수 있다. 우리가 이것에 대해 분명하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주시기를 원한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 제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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