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이름을 부를 필요를 느끼고 있나요?
누림글♧
2013-11-01 , 조회 (1748) , 추천 (2) ,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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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의 3대손인 에노스때 부터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을 불렀다고 합니다.
그들이 왜 여호아를 불렀을까요?
아담은 아벨의 이름을 '공허함' 이라고 지었습니다.
에노스라는 이름은 '연약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 이라는 뜻입니다.

       


가인은 주님의 임재를 떠나 방랑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자녀들은 하나님 없는 문화를 만들어서
스스로 생활하고 오락을 찾고 보호를 받고자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떠난 사람의 특징은
이렇듯 세상에서 의미를 찾으려 합니다.

주의 회복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실행이 있습니다.
저도 장로교에서 왔을 때 가장 생소하고
또한 강력한 인상을 준 것이 주 예수여! 라고 부르라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생활 거의 20년이 된 지금에서
그의 의미를 알 것 같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그 깊이도 조금 체험하고 있습니다.
세상사람들은 도대체 이런 상황에서 누구를 부를까? 아니면 어떻게 할까?
그냥 탄식만 하나? 아니면 원망하는 말을 할까?
아니면 그냥 환호성을 발할까?
직접 사람들에게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궁금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우리가 발명한 것이 아닙니다.
지식으로 가득차있고 종교 안에서 죽어있었던 리 형제님이
성령의 이끌림으로 자신의 절박한 필요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안에서 부터 터져 나온 것이고, 이후 성경에서 발견한 것이고
직접 체험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알고 있는 우리가 그렇게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필요성이 없는 것이 아닌가요?
그렇게 공허하지도 않고, 아니면 자신이 할 수 있기 때문 아닌가요?
세상이 살만하고 누릴 만 하다고 마취된 것은 아닌가요?
갈급하지 않으면 찾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그 풍성도, 누림도, 해방의 정도도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 L/S #25에서 형제님의 간증을 옮겨봅니다.
『나는 남침례 교회에서 자랐다. 구원받은 후 말씀을 추구하기 위해 나는
엄격한 형제회 모임에 수년 동안 머물렀다. 그들은 항상 엄숙했다.
그들은 심지어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 나는 형제교 교사들을 가르침을 받으며 그들을 발 밑에 앉아 있었다.
나는 이것을 인해 감사드린다. 나는 주님과 말씀을 사랑했지만 생명의
합당한 도움을 받지 못했다. 내가 받은 유일한 도움은 성경의 흑백문자를
이해 하는 것이었다.
1931. 8월의 어느날, 내가 길을 걷고 있을 때, 그 영이 내 안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 자신을 보라. 너에게는 많은 지식이 있다. 너는 예언과 예표들을
알지만 네가 얼마나 죽어 있는가 보라." 

즉시 깊은 속에서 부터 나는 목마름과 배고품을 의식했다. 안에 있는
무언인가가 터져 나오려고 했다.
그러나 내 종교적인 배경으로 인해 나는
길에서 그렇게 하기를 원치 않았다. 나는 주님 앞에서 자신을 해방할 수
있는 다음날 아침을 기다리며 그날 오후와 저녁과 밤 시간을 고통중에서
자신을 억제하며 보냈다. ... 아침이 되자 나는 그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속에서부터, "오, 주 예수님! " 라는 말이 터져 나왔다. 자연스럽게
나는 주님을 보았다. 아무도 주님을 부르라고 내게 가르치지 않았고,
성경에서 그것에 관해 읽은 적도 없었다. 나는 자연히 그렇게 행동했다.
나는 "주님을 누림" 이나 "영을 해방함" 과 같은 단어를 몰랐지만 내게는
그 둘다의 실재가 있었다. 나는 내 영을 사용했고 해방했으며 분명히
주님을 누렸다. 그후 나는 거의 매일 아침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주님을 불렀다. 주님을 부름으로써 나는 주님으로 채워졌다. 아침마다
산에서 내려올 때에 나는 기쁨으로 충만했다. 나는 하늘에 있었으며
온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내 발아래 있었다.
그러나 나의 배경으로 인해 나는 이것을 가르치지 않았고, 다른 사람에게
이것을 실행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24년이 후인 1967년 주님을 부르는
이 문제가 로스엔젤리스에 나타났다. 그 당시에 나는 말씀 연구를 통해
이 문제를 확증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주님을 부름에 관한 말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결과 나는 그것이 고대의
성도들의 실행이었음을 발견했다. 이것은 수천년 전에 시작되었다...
또한 신약의 성도들의 실행이었다. 그것은 오순절날 시작되었다 (행2:21).』

아벨, 에노스, 누림, 해방, 이름, 주님의 이름, 부름, 지식, 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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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뫼
주예수님...주님의 이름을
저도 아직 어색하지만 부를수록 좋습니다
점점 사랑스런 마음이 더 차오릅니다...^*^
순수한마음
아멘. 저도 주님과의 첫째가는 사랑을 회복하고자 합니다.
작은감자
주 예수님! 여호와 구원자이신 예수!!!
주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아멘!
순수한마음
아멘! 주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