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의 간증
창세기
2013-11-13 , 조회 (960)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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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들어 보십시오. 어르신은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왕자이십니다. 우리의 묘지중에서 가장 좋은 곳에다 돌아가신 부인을 장사하십시오. 돌아가신 부인을 장사할 묘지로 쓰시겠다는데 우리 중에서 자기 묘지라고 거절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창 23:6)

Hear us, my lord. You are a prince of God in our midst. In the choicest of our burial places bury your dead wife. None of us will withhold from you his burial place for burying your dead wife.(Gen. 23:6)

사랑하던 아내를 잃고 고통받은 아브라함은 매우 영향력 있는 간증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헷 족속들은 그를 주(主)라고 불렀고 「방백(a might prince)」(6절)이라고 불렀다. 「방백」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하나님의 왕자」로 또한 번역될 수 있다. 히브리어에서 「강력한(might)」이라는 단어는 하나님에게 사용하는 단어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왕자로서 하나님을 표현했고 방백으로서 존경받았다. 자신의 눈에는 그가 한 나그네일 뿐이었지만 사람들의 눈에 그는 방백이었고 하나님의 왕자였다. 그는 정말 장중한 사람이었다. 우리 모두는 장중한 사람이 될 필요가 있고 아브라함이 가졌던 간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직장에서나 이웃에서나 학교에서 가벼운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며 남들이 경멸하는 사람이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는 장중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이 매우 높게 평가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스스로 높게 평가해서는 안 되지만, 다른 사람들의 눈에 우리는 높은 사람이어야 한다. 나는 고등학교의 선생님들이 그들의 반에 있는 교회 형제들인 학생들을 방백(강력한 왕자)이라고 부르기를 바란다. 젊은 형제들이여, 집회소에서만 담대하게 기도하지 말라. 여러분은 학교에서도 장중해야 한다. 이것은 단지 선하게 행동하라는 의미만이 아니다. 우리는 무게가 있어야 한다. 금과 보석은 무게가 있지만 팝콘이나 솜사탕은 가볍다. 만일 당신이 금이나 보석이라면 무게를 가지게 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이, 『이 젊은 청년은 어떻게 이런 장중함을 가졌지? 그는 평범하지도 않고 비정상적이지도 않다. 그는 정상적인 젊은이지만 경박함이 없다.』라고 놀라면서 말할 만큼 무게를 가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 안에 하나님을 가졌기 때문에 장중하다.

부르심받은 사람들은 여호와의 이름, 엘오람을 부를 필요가 있다. 아브라함은 이 신성한 이름을 부르면 부를수록 더욱더 장중한 사람이 되었다. 하나님은 금이시다. 우리가 그분을 부른다면, 우리는 금이 될 것이다. 우리가 금이신 하나님을 부를수록, 그분의 금의 성분이 우리 존재에 더욱더 주입될 것이다. 나무와 규화목의 차이점을 살펴보라. 나무는 가볍지만 규화목은 무겁다. 규화목은 돌보다도 더 무겁다. 왜냐하면 무게 있는 광물들이 나무 속에 첨가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가볍게 태어났지만 무게 있게 거듭났다. 거듭난 우리는 변화의 과정에 있다. 나무가 규화목이 되는 것은 물의 계속적인 흐름을 통해서이다. 이 물의 흐름은 나무의 성분을 가져가고 그곳에 여러 가지 광물의 성분을 더해서 무게 있고 귀중한 돌로 나무를 변화시킨다. 우리가 좋은 이웃들이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장중한 자녀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그분의 주입 아래 있다. 우리는 사람들이 우리를 하나님의 왕자인 방백이라 부를 수 있도록 강해지고 장중해져야 한다. 방백으로서 아브라함은 존경받았다(6절). 그는 다른 사람들을 존경했고 그들의 존경을 다시 받았다. 그는 현명하기도 했다(3-13절). 이 장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사람들과의 사귐에 있어서 현명했고, 매우 안목 있고 현명하게 그들에게 말했던 것을 본다. 더 나아가, 아브라함은 정직했고 어느 누구에게도 이득을 취하지 않았다(14-16절). 그의 목적은 무덤을 사는 것이었다. 그에게 무덤을 정중하게 선물로 주었을 때, 아브라함은 그것에 은 사백 세겔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총액을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이득을 취할 기회를 잡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에브론이 요구한 가격의 충분한 액수, 충분한 돈을 그에게 주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우리의 부족함을 사람들에 심어주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풍성함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간증이다. 나는 오늘날의 기독교의 도덕 수준이 낮음으로 인해 유감스럽다. 그 행동의 수준은 얼마나 형편없는지! 우리는 하나님을 표현해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는 장중하고 존경할 만하고 정직하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는 손해를 기꺼이 감수해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이득을 취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잃고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가 잃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살아갈 것이다. 우리가 얻게 된다 하더라도, 우리가 더 이상 살 수 없을 수도 있다. 우리는 정직하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를 배워야 하며 장중한 태도로 하나님을 표현해야 한다. (창 LS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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