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삭이 기업을 누림
창세기
2013-11-27 , 조회 (896)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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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주인님의 부인 사라는 노년에 나의 주인님께 아들을 낳아 주셨고, 주인님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그 아들에게 주셨습니다.(창 24:36)

And Sarah my master's wife bore a son to my master after she had become old. And he has given all that he has to him.(Gen. 24:36)

아브라함의 온전함을 위해서는 또한 기업을 누린 이삭이 필요했다(24:36, 25:5). 아브라함이 하나님에 의해 부르심을 받은 그날부터, 하나님은 그의 것들을 빼앗아 가기 시작하셨다. 첫 번째로 하나님은 그의 형제를 데려가셨고 그 다음에 그의 아버지를 데려가셨다. 그 후에 하나님은 엘리에셀을 거절하시고 이스마엘을 내쫓도록 아브라함에게 명하셨다. 또, 이삭을 제단에 드리라고 말씀하셨다. 이삭이 돌아온 뒤에 사라가 죽었다. 아브라함의 삶은 누림의 삶이 아니었다. 그것은 빼앗기는 삶이었다. 반대로 이삭의 삶은 누림이 충만한 삶이었다. 이삭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그의 아버지가 가진 모든 것을 물려받았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 둘 다의 체험을 갖는다. 한편으로 우리는 항상 빼앗긴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거절하신다. 그분은, 『너는 그것을 좋아하지만 나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는 그것을 얻기 원하나 나는 그것을 가져가겠다.

너는 그것을 간직하기 원하나 나는 그것을 거절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아주 좋은 의미에서,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원함과 우리의 의도와는 반대로 행하신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버지를 함께 데려가기 원했으나 그의 아버지는 죽었다. 그는 롯과 있기를 원했으나 롯과 헤어졌다. 그는 엘리에셀이 그의 상속자가 되기를 원했으나 엘리에셀은 거절당했다. 그는 이스마엘을 간직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에게 여종의 아들을 내쫓으라고 명하셨다. 아브라함은 그의 아들 이삭을 사랑했으나 하나님은 이삭을 그분에게 제단 위에 드리라고 요구하셨다. 조금 후에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아내 사라가 죽었다. 나는 아브라함이 누림의 시간을 많이 가졌을지 의심스럽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는 다른 방면이 있다. 우리는 빼앗기는 것으로 고통을 겪지만, 우리의 기업을 누리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 앞서서 기록된 아벨과 에녹과 노아와 달리 아브라함과 이삭의 기록이 겹쳐지는 것이다.

이삭의 기록은 아브라함의 기록과 섞여져 있다 . 아브라함이 고통을 겪은 반면에 이삭은 누렸다. 아브라함이 눈물을 흘린 반면에 이삭은 기뻐했다. 이것은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이 밤과 아침의 삶임을 가리킨다. 밤은 우리의 왼손이고 아침은 우리의 오른손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밤과 아침이 함께한다. 많은 때에 나는 내가 밤에 있는지 아침에 있는지 구별할 수 없었다. 아침에 있었을 때 나는 밤에 있었고, 밤에 있었을 때 나는 아침에 있었다. 한편으로 나는 모든 것을 빼앗긴 아브라함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업을 누린 이삭이었다. 우리 모두는 야곱처럼 선택되었고 아브라함처럼 부르심받아 믿었다.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빼앗기고 이삭처럼 누릴 때, 어느 날 우리 모두는 야곱처럼 성숙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 형제를 야곱이라고 말하거나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 형제를 야곱-아브라함-이삭-야곱이라고 불러야 한다.

그는 처음과 마지막에는 야곱이고 중간에는 이삭과 함께하는 아브라함이다. 이 세 명은 온전한 한 사람이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생명 안에서의 성숙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이 아니라 야곱이다. 생명의 성숙의 표시는 축복이다. 나는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들을 보아왔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빼앗거나 불평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떤 성도들은 장로들이나 형제들이나 모든 교회들에 대해 불평한다. 그들이 좋아하는 유일한 교회는 새 예루살렘인 것 같다. 불평하는 것은 미성숙의 표시이다. 성숙했을 때 당신은 불평하지 않고,『오 하나님, 모든 형제들과 모든 교회들을 축복하소서.』라고 말하면서 축복할 것이다. 왜냐하면 생명 안에서 성숙한 사람은 그의 빼앗던 손이 축복하는 손이 되기 때문이다. 성장하면 할수록 당신은 다른 사람들을 더욱 축복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다만 선한 사람들을 축복할 뿐아니라 나쁜 사람, 심지어 가장 악한 사람들까지도 축복하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의 삶은 놀라웠고, 역대로 그리스도인들에게 귀히 여겨져 왔다. 그러나 우리가 본 바와 같이, 그는 신성한 생명 안에서 성숙되지 않았다. 우리의 하나님은 아버지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아들 하나님이시며 그 영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단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실뿐 아니라 이삭의 하나님이시요 야곱의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삶에 이삭과 야곱의 삶을 더한 삶, 이 모든 세 방면이 필요함을 우리 모두가 보게 되기 바란다. 삼일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충만한 표현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그 영으로 역사하고 계신다. 그분은 삼일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신성한 생명의 영적 체험 안에서 이 세 방면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온전히 변화받을 필요가 있다.  우리가 온전히 변화받을 때 하나님은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실 것이다. (창 LS 62)

창세기 24장 36절,사라,주인,기업 거절,상속자,왼손 오른손,성숙,성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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