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의 결과―우리의 장래를 포기하는 것
생명의 체험
2013-12-03 , 조회 (131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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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십시오." (마16:24).  
Then Jesus said to His disciples, If anyone wants to come after Me, Let him deny himself and take up his cross and follow Me. (Matt.16:24)

헌신의 결과는 우리가 사람과 사건과 사물과의 모든 관계를 끊고, 특히 우리의 장래를 포기하며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하는 것이다. 이 문제도 역시 구약에서 예물을 드리는 것에 비추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소를 제물로 취하여 제단에 드리게 되면 그것은 즉시로 이전 모든 관계로부터 끊어지게 된다. 그 소는 주인과 소 떼와 외양간으로부터 분리된다. 소가 불살라진 후에는 원래의 형태와 크기조차도 사라져 버린다. 가장 정선된 소의 모든 것들이 달콤한 냄새의 향기가 되어 하나님께 바쳐지며 남은 모든 것은 잿더미를 이룬다. 모든 것이 잘려지고 모든 것이 끝난다. 이것이 소를 하나님께 바친 결과이다. 우리가 하는 헌신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기 때문에 그 결과도 역시 동일하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태워져서 재가 되어 모든 것이 끝나는 데까지 이른다.

만일 이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태워져 재가 되는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드리는 헌신은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몇몇 형제자매들은 헌신을 한 다음에 어떠어떠한 사람이 되리라는 희망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 이것은 그들이 장래를 포기하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우리가 말하는 장래란 이 세상의 장래뿐 아니라 소위 기독교계의 장래도 포함한다. 우리 모두는, 세상이 얼마나 우리를 유혹하며 거기에 장래의 소망을 두도록 하는지를 알고 있다. 심지어 기독교계까지도 우리를 유혹하며 거기에 장래의 소망을 두도록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들은 유명한 설교자가 되고자 하고, 어떤 사람들은 세계적인 부흥사가 되고자 하며, 어떤 사람들은 신학 박사 학위를 얻고자 한다. 이 모든 것이 장래에 대한 소망이다.

형제자매들이여, 만일 우리가 빛을 보게 된다면 우리의 일에 더 많은 열매를 기대하는 바람에도, 우리의 복음 전도로 말미암아 더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에도, 더 많은 형제자매들을 인도하여 주님을 사랑하도록 하려는 바람에도, 우리 손으로 더 많은 지방 교회들이 건축되었으면 하는 바람에도 우리의 장래를 건설하려는 많은 요소가 숨겨져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보면 시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성취하는 것을 보아도 우리의 마음이 동한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우리가 여전히 자신의 장래에 대해 소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헌신한 사람에게는 이 모든 소망이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진정으로 헌신한 사람은 자신의 장래를 포기한 사람이다. 그는 세상에서의 장래도 포기하고 소위 영적인 장래도 포기한다.

그는 어떠한 것에도 자신을 위한 소망을 더 이상 갖지 않는다. 그의 모든 소망은 하나님 안에 있다. 그는 순수하고 단순하게 하나님의 손 안에서 산다. 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이 되며 하나님께서 그에게서 하기를 바라시는 것을 행한다. 결과가 어떻게 될지 그는 알지 못하며 관심하지도 않는다. 그는 오직 자신이 제물이며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알고 있을 따름이다. 제단은 그가 영원히 서 있는 곳이며, 잿더미가 영원한 결과이다. 그는 장래를 완전히 포기한 것이다. 이렇게 장래를 포기하는 것은 이미 어떠한 일이 발생하여 여러분의 장래의 소망을 짓밟아 버린 후에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일이 있기 전에 자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여러분이 사업에 실패하기까지 기다려서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실업자가 되거나 대학 시험에 떨어지거나 박사 학위를 얻지 못하게 되어서야 비로소 포기하는 그러한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가 장래를 포기한다고 말하는 것은 이득이 되는 사업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훌륭한 직업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박사 학위가 여러분을 기다리지만 여러분이 기꺼이 주님을 위하여 그 모든 것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진정 장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심지어 애굽의 온갖 영화가 여러분 앞에 놓여 있어도 여러분은 “잘 있거라. 나는 가나안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아마도 사탄은 계속해서 뒤에서 여러분을 부르며, “제발 돌아와라. 여기 박사 학위도 있고 애굽의 궁정도 있다. 다 너를 위한 것이다. 이 얼마나 드문 기회냐?”라고 말할 것이다. 이때 여러분이 그에게 직접 “사라지라. 이러한 것들은 나의 분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이러한 것이 참으로 장래를 포기하는 것이다. 오늘날 아주 슬픈 상황이 있다. 그것은 주님을 섬기는 많은 이들이 기독교계 안에서 장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이 아주 심하게 타락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것은 그 사람의 원래의 헌신에는 잘못된 것이 없더라도 그가 제단에서 떠나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참으로 헌신한 사람은 그의 장래가 끝났음을 처음부터 안다. 만일 그가 여전히 장래를 갖기 원한다면 그는 교회에 올 필요가 없다. 그는 결코 어떠한 장래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는 그가 이미 제단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가끔 그가 곤경에 처하게 되어도 그에게 대단한 용기가 생기는 것을 보게 된다. 이것은 이러한 어려움을 겪을 때 그가 여전히 제단에 놓여 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음을 말해 준다. 때로는 그가 안락한 단계에 들어가나 오히려 약간의 두려움마저 느끼게 된다. 이것은 그가 제단을 벗어나 더 이상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 주는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는 자주 자신에게 질문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헌신의 결과는 무엇인가? 우리 모두는 제단 위에서 재가 되었는가? 우리는 모든 장래를 포기했는가 아니면 바라는 것을 간직하고 있는가? 우리 각자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 헌신의 문제를 철저히 다루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는 헌신이 건전하지 못하다면 조만간에 우리의 봉사나 우리의 영적 상태에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장래를 전망해 보는 유혹은 대단히 많으며 대단히 큰 것이다. 이러한 유혹은 특별한 은사를 받은 자들과 하나님께 어느 정도 외적으로 쓰임받는 자들에게 특히 심하다. 많은 문제와 환경과 유혹이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무의식적으로 헌신을 잃어버리게 한다. 이러한 유혹을 이기는 오직 하나의 길은, 우리가 헌신하는 그날부터 우리의 장래를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을 헌신한 후로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비(J. N. Darby)의 생애에서 우리는 그가 참되게 헌신한 사람임을 보게 된다. 그는 지난 세기에 주님께 크게 쓰임을 받았다. 그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영적 도움을 받았다. 그는 나이 들어서까지 여전히 주님과 함께 좁은 길을 걸었다. 그는 아주 놀라운 명성과 지위를 지닐 수 있었지만 그러한 것들을 취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 때엔가 나이 들었을 때, 이탈리아로 수고하러 가서 아주 평범하고도 값싼 여인숙에서 밤을 지새웠다. 그는 피곤하여 양손에 그의 머리를 숙이고서 가냘프게 “예수님, 저의 십자가를 지고 모든 것을 버려 두고 당신을 따르나이다.”라는 찬송을 불렀다.
 
비록 이러한 상황에 놓여 있어도 그에게는 불평도 후회도 없었으며 기뻐하며 이러한 찬송을 주님께 부를 수 있었다. 그의 일생을 이야기하는 글을 읽다가 이러한 시점에 이르렀을 때 나는 진실로 접한 것이 있었다. 그가 장래를 포기한 결과를 끝까지 유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나를 감동시켰다. 그는 나이 들었어도 그의 헌신은 낡지 않았다. 그의 헌신은 처음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새로웠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가 장래의 모든 전망을 포기하는 이러한 결과는 우리 안에서 항상 새롭게 유지되어야 한다. 우리의 헌신도 결코 낡은 것이 되지 않도록 하자. 만일 헌신이 낡아지면 이것은 우리가 자신을 헌신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가 된다. 우리는 제단 위에 있는 재와 같이 항상 전적으로 하나님의 누림을 위하며 어떠한 장래도 갖지 않아야 한다. (생명의 체험,제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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