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여인의 비유 (M#6) by br. Ron
누림글♧
2013-12-27 , 조회 (645) , 추천 (0) , 스크랩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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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이 갈4장에서 창세기16장의 아브라함과 하갈과 사라에 말하면서
"비유"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비유" 어떤 이야기나 설명으로서 그 안에서 인물들이 상징화 되는 것이고,
어떠한 사상이나 원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실재의 이야기와
인물들과 무엇을 했는가를 비유로 말할 때
인물과 그들 안에 있는 것들은 사상과 원칙을 나타내는 상징이 됩니다.

개요의 중심사상을 할 가이드라인,
지침으로 붙잡아 초점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많은 아들들을 산출하여 그분의 단체적인 표현을
가지시는 것으로, 아들들은 사람의 노력으로가 아니라 은혜로 산출되는 것이다.

신약은 새언약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셨고 창15장에서 아브라함과 세우신 언약의
계속입니다. 사라는 이 약속의 언약, 은혜의 언약을 상징합니다.
"은혜"의 정의는, 과정을 거치신 삼일하나님으로 우리에게 모든 것이 되시고,
우리 안에서 운행하셔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를 산출하는 것입니다.

약속은 은혜로 우리 안에 씨를 산출하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공급하셔서 말씀을 공급하시고 말씀을 받을 수 있기를..
은혜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을 가져오고,어떻게 그릇을 얻을 수 있는가?
믿음은 은혜를 실질화 함으로 이삭을 낳을 수 있었다.

아브라함이 다만 주님을 기다리고 생명의 때를 기다렸다면,
사라가 이삭을 낳을 때까지 기다렸다면 문제는 간단했을 것입니다.
그분은 뜻이 있고, 뜻을 이루는 길이 있고, 하나님의 시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훨씬 미래에 있을 때가 많습니다.
세월이 흐를 때 아내의 제안을 받아들여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산출했습니다. 하갈은 율법입니다. 아브라함이 하갈과 연결시킨것은 자신의 육체를 사용하게 한것, 육체의 활동을 통해 하나님을 위해 뭔가를 한것입니다. 우리는 체험적인 두선택이 분명해야 하는데, 육체가 처리되어야 하고 신뢰를 두어서는 안되고, 은혜를 받고 믿음을 사용해야 합니다. 또 다른 선택은 기다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스스로의 행동을 취하는것, 어떤 것을 볼때 뭔가해야 될 것 같아 율법과 협력하여 육체가 발동할 때 결과로 이스마엘을 산출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 못박히셨고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그 영을 받고 침례받고 믿음의 가족이 되었지만, 종교적인 사람들이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는 말에 감동되어 우리 육체 안에 있는 것이 율법을
지키기를 갈망하는, 규율을 지키기를 원하는 이상한 존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은혜에서 떨어져 분리되어 우리의 체험에서 그리스도는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사라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처럼...

우리 모두가 그동안 얼마나 육체의 노력을 통해 타고난 생명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했습니까? 우리는 지금 세상에 있지 않고 집회 안에 있지만, 육체의 노력이 율법과 협력할 때 율법이 여러 종류의 형태로 때지어
다니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사역의 말씀을 선별적으로 취하여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고 그 안에 율법을 만들고 노력을 사용하여 협력합니다.
어떠한 것이 산출되지 많으면 문제가 없지만 산출될때 문제가 생깁니다.

갈3장에서 바울은 율법이 언약을 무효화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약속의 언약이 율법의 언약보다 먼저 왔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그분의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노력으로 율법을 지키게 하실 의도가 없으셨습니다. 주님만이 사랑스런 성도들이 매일의 생활에서 수고하며 분투하고 사는지 아십니다. 수고와 노력에 대해 기도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애쓰고 분투하는 것을 우리의 천연적인 생명에서 즉시 조절합니다.
어떤 것을 들었을 때 마음안에서 해야되겠다 하지 말아야 겠다
즉시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의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강한 생명이나 능력이나 육체가 필요없으십니다.

이렇게 사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까?
주님! 당신을 일해 넣으십시오. 여기에 열린 그릇으로 여기에 있고,
당신께 드립니다. 당신을 하루종일 일해 넣으소서 이렇게 기도하며
실제로 하나님의 경륜안에 사는 그 때가 우리에게 와야 합니다.
빛의 폭로로 하나님을 원해야 하며 헌신함으로 하나님께서 환경을
통과하게 하여 가속화 시키시고 중심일을 이루게 하고 댓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무엇이 육체인가, 노력인가, 왜 하나님께서 육체를 거절했는지,
하나님의 응답을 이해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을,
왜 타고난 생명으로 한 것을 거절하시는 지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에게 육체에 대한 이상이 필요합니다.
옛사람(롬6:6)은 타락한 세분으로 된 온 존재, (갈2:20) 의 "나" 입니다.
"옛사람"은 끝나고 "나"는 십자가에 못박혀야 합니다. 
옛사람이 살아나타내어지는 것이 육체, 옛사람이나 자아의 활동을 말합니다.
육체를 악하고 죄악되고 정욕으로 가득한 것도 부분적으로 옳지만,
다만 부정적인 것으로 제한하면 다만 죄를 처리하는 것을 반복할 것인데,
심지어는 좋은 육체도 있다. 옛사람. 기쁘게하려는 노력,겸손, 친절하게 하려는
모든 것도 자아다. 아브라함도 씨를 산출하기 위해 좋은 육체를 사용했다.
필사적으로 빛을 구해야 한다. 빛이 없다면 3번째 단계에서 벗어나 생을 마칠
것이다. 육체는 옛사람의 삶의 총체이다. 사랑,인내,분노, 미워하는 것,
왜 사울이 왕국을 잃었나? 아말렉을 철저히 진멸하라고 했으나, 사람이
보기에 나쁜것은 죽였지만, 좋은 것을 남겨서 제물로 드리려고 하는
불손종을 하였다. 인내, 상황을 다루는 능력은 남겨놓겠다. 그것이 어떤것이든
육체이다. 사무엘은 이것을 반역, 우상에 절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브라함의 종교적인, 선한 육체가 종결되어야 하나님께서 들어오셔서
은혜로 이삭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은혜는 우리 안에 육체가 만져질 때 까지 들어오지 않는다. 주여! 저는 살수 
없습니다. 차도 운전하지 못하고, 가정을 돌보수 없고, 형제, 훈련생도 될 수
없습니다. 저는 아니고, 할 수 없습니다. 주님! 당신자신을 매일 매일 분배
해주소서! 즉시 은혜가 들어온다.

영적인 할례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육체에 끊임 없이 적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방법이 아니라.
1.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힌 것을 알아야 하고, 사실이다.
2. 그리스도께서 그분자신을 하나님께 영원한 영을 통해 드렸다.
그 영안에 죽음의 효능과 능력은 영안에 있다.
3. 육체가 우리 안에 일어날 때 질투,증오, 교만, 정욕, 듣는 척, 겸손한 척하는 것, 그영의 느낌이나, 생명으로 이것은 흐르는 강이 아니고, 내가 노력하고 있구나! 말해줄 때 이것이 육체라는 것을 알고 깨달아야 한다.
그럴 때 적용은 간단합니다. 어떠한 기도를 지어내려하는 것을 멈추고,
주! 예수님! 이라고 불러야 한다. 주님은 그 순간에 그 육체에 적용할 것이다.
란 형제님이 질투를 느꼈을 때, 주님! 죽음의 효능이 복합된 영에 있다고
했습니다. 주님께 구하겠습니다. 지금 그 효능을 질투에 바로 적용해주십시오.
그 질투가 죽임 당했습니다.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솔직하십시오.
나는 질투합니다. 질투는 육체입니다. 가장하지 말고...  
인정한다. 나의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박혔다. 침례로 증명된다.

그 효능은 영안에 있다. 나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선택한다.
그때 그영은 정확하게 그 부분을 처리하고 육체는 죽임당하고
은혜는 강으로서 흐른다. 이것은 좋은 소식입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영적할례는 육체의 확신을 잘라내는 것.
  
무엇이 육체에 둔 확신을 깨뜨릴 수 있나?
이것은 교리가 아니고 체험적인 관찰입니다. 빌3:3 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으로 봉사하고...육체를 신뢰하지 않은 우리가 참된 할례를 받은 사람들..
육체에 대한 신뢰, 상황을 견딜 수 있고, 벗어날 수 있고, 처리, 영리하고,
알수있다는 확신을 처리하는 것, 무엇이 처리할 수 있는가?
오직 하나님 앞에 "큰 실패" 만이 그것을 처리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의 자신에 대한 확신이 실패를 통해 만져졌습니다. 베드로가 실패한
상황이 왔다. 저주하며 부인한것, 주님이 바라보았다. 시몬아 사탄이 밀처럼
날려버리려하나. 내가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간구한다.
실패만이, 자기 확신이 깨어진 사람만이, 그후 주님의 긍휼로 복원된 사람만이
목자가 될 수 있습니다
. 은혜의 문이 열려 강처럼 흘러 들어올수 있습니다.


기도와 봉사가운데 육체가 활동적이라고 합시다. 그것을 모르고 있다가
빛이 와서 내가 그동안 너무나 육체 안에 있었구나. 제한하게 되고,
수동적인 면이 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 기도하지 않고,
복음도 전하지 않고, 신언하지도 않고, 나자신이 폭로되니까.
이것은 더 나쁘다. 원수가 여러분가운데 떼를 지어 다니기 때문에.

육체의 활동과 영을 사용하는 사이에 구분을 할 줄 알아야 한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무효화 한다는 것은
육체를 사용하는 것이고(갈2;21), 은혜에서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갈5:4).
라는 것은, 실재적인 삶의 상황에서 그리스도 은혜가 없게 되었다.
육체를 사용하여 활동적였기 때문이다. 라고 합니다.
영으로 돌이키고 영을 사용하고 은혜를 받아드여야 합니다.
영을 따라 행하십시오(5:16). 활동적으로 영의 기름부음 따라 사는 것이고,
영의 인도를 받는 것(5:18). 그러므로 그 영이 중요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배워야 하는 것은, 자기의 노력이 아니라
영의 움직임에 반응하고 협력하는 것입니다.
"형제님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의 영과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아멘!"  (갈6:18)  이렇게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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