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겨울 훈련 집회에서 누린 항목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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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2-31 , 조회 (1628) , 추천 (0) , 스크랩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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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훈련집회는 체험에 관한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이전 어느 때보다도 실제적으로 존재를 만지는 말씀의 연속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많은 빛비춤과 폭로와 이상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앞으로의 실제적인 교회생활인 브엘세바에서 어떻게 체험할지 기대가 됩니다
.


[교회의 실재는 얼마나 체험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지방교회에 있지만, 우리가 참된 이스라엘,
삼일 하나님 안에 있는 교회가 되는 가는 또 다른 문제인 것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체험들의 절정, 그 요소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실재를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아버지로 부터 비롯 된다는 것이고,  자아나 육체, 타고난 생명이 하는 것을 두려워 해야 한다 것입니다. 우리는 받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고, 사역에서 다 받은 것을 알아야 하고, 또한 성령의 징계를 말할 때 다룸을 많이 받은 줄 알지만, 매일의 크고 작은 일들의 부분적인 다룸은 오히려 근본적인 다룸, 완전히 무너뜨리고 깊이 만지고, 큰 수술을 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균열도 없는 사람인지 모르고, 마치 야곱이 20년 동안  다룸을 받았지만 그 에게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것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역사를 반복하기 위해 믿음을 주입받아야]
이번에 아브라함을 많이 누렸는데, 그는 사실 우리와 비슷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였습니다.  그러나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시고 하나님의 요소가 그의 존재 안에 옮겨 부어지고 주입 됨으로 반응하고 헌신하여 제단과 천막에서 살며, 하나님의 임재를 지도로 취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가 아브라함의 역사를 반복하는 단체적인 씨가 되기 위한 비결은 계속 주님께서 나타나시고 계속 말씀하시도록 간청하며, 말씀을 통해, 주님을 부르며, 주님을 감상하며, 누리므로 믿음을 들으며,
매일 매일 옮겨붓고, 주입받고, 침투되고 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엘리에셀도 이스마엘도 후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속에서 나온 사람이 후손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옆에 같이 있는 종인 엘리에셀도 후손이 될 수 없고, 그렇다고
속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고 주제넘게 육체를
사용하여 낳은 이스마엘도 하나님은 거절하셨다는 것이 인상이 깊었습니다.
엘리에셀은 다만 여행 중 얻은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배설물로 여기는
우리의 천연적인 역량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어 죽은 지팡이
같은 사람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씨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끝나야 하고, 일해 넣으시도록 허락해야 하고,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때를 기다리십니다.   

[사역과 협력하기 위해 형제를 위해 싸울 줄 알아야]
이번 집회에서 새로운 문장 "형제를 위해 싸운다". 이것은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를 떠난 조카 롯이 포로 되었을 때,
롯의 약점을 마음에 두고, 형제의 고난과 재난을 즐거워하지 않고, 오히려
잘못된 것을 수치로 생각하고, 즉시 군대를 이끌고 싸우기를 결심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형제를 위해 싸운다는 것'은,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함'
으로, '성도들 안에 하나님을 공급함'으로, '어린 양을 목양 함으로',
'전시간자 들을 위해 주님께 드리므로',  Nee형제님 제정관리 "주님께 드리라"
 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위해 싸우기 위해 누군가 중보기도해주시길...

[육체의 활동을 볼 수 있는 빛이 와야]
아브라함이 생명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사라의 제의를 받아들여
하갈(율법)과 연결되어 이스마엘을 산출했다는 것은 영적의미가 큽니다.
육체는 기다리는 것이 힘듭니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 육체가 활동하기 시작 할 때 우리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하고, 주! 예수님, 지금 그 효능을 육체에 적용해주십시오. 기도와 봉사가운데 육체가 주도적인 사람들은 빛이 와야 합니다.
베드로 같이 '육체의 확신' 이 "큰 실패"를 통해 깨뜨려지고 복원된 사람만이
"목자" 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통하며 생활하는 것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경향을 보면 소돔과 같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방교회에 있다고
해서 예방접종이 되어있고 세상의 마취시키는 일에 무조건 구출된다고 생각
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은 수치심과 도덕심이 마취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마늘이 가득한 방에 살고 있어 마늘 냄새를 맡는 기능이 상실된 것과 같습니다.
젊은이들도 죄악이 가득한 분위기 안에 자라서 감각이 마취되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순수한 분위기에 머물러야 하고, 소돔에서 도망쳐 나와야 하고, 악한
분위기를 향해 우리의 문을 걸어 잠가야 합니다.
주님을 절대적으로 쫒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야]
온 우주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한 사람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는 거기에 심오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4번 나타나시고,
2번 부르시고, 12번 말씀하시고, 1번 이상을 보여주시고, 3번의 실패와 간접적인 일들을 통해 영광의, 축복의, 하늘과 땅의 높은 하늘의, 엘샷다이,
인간적인 우정을 가지신 사람수준의 하나님으로, 아브라함은 자신을 대하시고 나타나신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한 사람의 체험이 오늘날 온 우주의 모든 세대의 사람들의 하나님이 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내 하나님이 되기 위해 우린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알고 한 항목씩 체험하는 하나님의 역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남은 날이 계수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요?

[어떤 근원에서 나오는 우물을 마실 것인가?]
우리가 어떤 종류의 생활을 할 것인가? 는 어떤 우물을 마시는 가에 달려 있습니다. 한 우물은 이스마엘이고 이집트(세상)로 내려가게 합니다. 
또 다른 우물은 이삭의 우물로 우리를 모리아산으로 이끕니다. 매순간 우린
어떤 우물을 선택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5분후에 다른 우물을 마실지도 모릅니다. 이삭의 우물을 마시려면 우물아 솟아라! 노래하며, 우물에게 말해야 합니다. 주! 예수님, 우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신성한 우물을 덮고 있는 "흙"을 파내야 합니다. 파내십시오!!! 메마르다고 느끼면, 뭔가 솟아나는 것이 없다면, 힘이 없다면, 복잡한 생각들, 자기연민, 고집세고 완고한 의지의 흙들을 기도로 파내야 합니다. 빛비춤을 근거로 해서, 개인적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주님께 나가서 파냅시다.

[이삭이 다시 돌아오는 체험을 하기 위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안주하고 붙어있으려는 자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무엇이든지 돌려드려야 하고, 붙잡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의 원칙이고 믿음의 생활입니다. 100세에 나은 이삭은 너무나 소중했지만 되돌려 드려야 하는 공과를 배웠습니다. 우리는 모리아산으로 바로 뛰어 갈 수 없습니다. 브엘세바에 머물수록 모리아로 더 많이 이끕니다. 이삭은 드려진 후 부활한 이삭이 되 돌아왔습니다. 우리의 축복, 성공, 일등은 죽음을 통과하여 모리아 산에서 되돌아 올 때 우리에게 복이 될 것입니다. 마치 란 형제님께 30여년 만에 이삭이 다시 돌아온 것처럼,,,, 

[주님의 미소를 관심하는 실지적인 생활은]
아브라함은 주님과 하나님 되어 사는 실지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알았고, 내적인 느낌과 일치되어 행동하였습니다. 주님과 하나되어 산다면 이미 그분의 내적인 느낌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무엇을 갈망하시는지를 말씀하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린 하나님의 임재를 얻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 마음이 있어야 하고,
매순간 그분의 눈 언저리를 주목하고 그분의 미소를 관심해야 합니다.
영을 관심해야 하고 말씀을 관심해야 합니다. 성령의 가르침과 빛 비춤이
있도록 매일 말씀을 읽으며 치우치지 않도록 하고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2013년, 겨울 훈련, 아브라함, 싸움, 이삭, 브엘사바, 모리아산

트랙백:  수신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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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마음
이번 훈련집회는 체험에 관한 말씀을 주셨기 때문에
이전 어느 때보다도 실제적으로 존재를 만지는 말씀의 연속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많은 빛비춤과 폭로와 이상과 격려를 받았습니다.
앞으로의 실제적인 교회생활인 브엘세바에서 어떻게 체험할지 기대가 됩니다.

[교회의 실재는 얼마나 체험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객관적으로 지방교회에 있지만, 우리가 참된 이스라엘,
삼일 하나님 안에 있는 교회가 되는 가는 또 다른 문제인 것을 알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체험들의 절정, 그 요소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실재를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아버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아버지로 부터 비롯 된다는 것이고, 자아나 육체, 타고난 생명이 하는 것을 두려워 해야 한다 것입니다. 우리는 받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고, 사역에서 다 받은 것을 알아야 하고, 또한 성령의 징계를 말할 때 다룸을 많이 받은 줄 알지만, 매일의 크고 작은 일들의 부분적인 다룸은 오히려 근본적인 다룸, 완전히 무너뜨리고 깊이 만지고, 큰 수술을 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균열도 없는 사람인지 모르고, 마치 야곱이 20년 동안 다룸을 받았지만 그 에게 큰 변화가 없었다는 것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역사를 반복하기 위해 믿음을 주입받아야]
이번에 아브라함을 많이 누렸는데, 그는 사실 우리와 비슷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였습니다. 그러나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시고 하나님의 요소가 그의 존재 안에 옮겨 부어지고 주입 됨으로 반응하고 헌신하여 제단과 천막에서 살며, 하나님의 임재를 지도로 취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가 아브라함의 역사를 반복하는 단체적인 씨가 되기 위한 비결은 계속 주님께서 나타나시고 계속 말씀하시도록 간청하며, 말씀을 통해, 주님을 부르며, 주님을 감상하며, 누리므로 믿음을 들으며,
매일 매일 옮겨붓고, 주입받고, 침투되고 하는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엘리에셀도 이스마엘도 후손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속에서 나온 사람이 후손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옆에 같이 있는 종인 엘리에셀도 후손이 될 수 없고, 그렇다고
속에서 나오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않고 주제넘게 육체를
사용하여 낳은 이스마엘도 하나님은 거절하셨다는 것이 인상이 깊었습니다.
엘리에셀은 다만 여행 중 얻은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배설물로 여기는
우리의 천연적인 역량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어 죽은 지팡이
같은 사람이 되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씨를 산출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끝나야 하고, 일해 넣으시도록 허락해야 하고, 은혜를 받을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때를 기다리십니다.

[사역과 협력하기 위해 형제를 위해 싸울 줄 알아야]
이번 집회에서 새로운 문장 "형제를 위해 싸운다". 이것은 많은 의미를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를 떠난 조카 롯이 포로 되었을 때,
롯의 약점을 마음에 두고, 형제의 고난과 재난을 즐거워하지 않고, 오히려
잘못된 것을 수치로 생각하고, 즉시 군대를 이끌고 싸우기를 결심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형제를 위해 싸운다는 것'은,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함'
으로, '성도들 안에 하나님을 공급함'으로, '어린 양을 목양 함으로',
'전시간자 들을 위해 주님께 드리므로', Nee형제님 제정관리 "주님께 드리라"
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위해 싸우기 위해 누군가 중보기도해주시길...

[육체의 활동을 볼 수 있는 빛이 와야]
아브라함이 생명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고 사라의 제의를 받아들여
하갈(율법)과 연결되어 이스마엘을 산출했다는 것은 영적의미가 큽니다.
육체는 기다리는 것이 힘듭니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 육체가 활동하기 시작 할 때 우리는 구분할 줄 알아야 하고, 주! 예수님, 지금 그 효능을 육체에 적용해주십시오. 기도와 봉사가운데 육체가 주도적인 사람들은 빛이 와야 합니다.
베드로 같이 '육체의 확신' 이 "큰 실패"를 통해 깨뜨려지고 복원된 사람만이
"목자" 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통하며 생활하는 것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오늘날 경향을 보면 소돔과 같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방교회에 있다고
해서 예방접종이 되어있고 세상의 마취시키는 일에 무조건 구출된다고 생각
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은 수치심과 도덕심이 마취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마늘이 가득한 방에 살고 있어 마늘 냄새를 맡는 기능이 상실된 것과 같습니다.
젊은이들도 죄악이 가득한 분위기 안에 자라서 감각이 마취되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순수한 분위기에 머물러야 하고, 소돔에서 도망쳐 나와야 하고, 악한
분위기를 향해 우리의 문을 걸어 잠가야 합니다.
주님을 절대적으로 쫒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야]
온 우주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한 사람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때는 거기에 심오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4번 나타나시고,
2번 부르시고, 12번 말씀하시고, 1번 이상을 보여주시고, 3번의 실패와 간접적인 일들을 통해 영광의, 축복의, 하늘과 땅의 높은 하늘의, 엘샷다이,
인간적인 우정을 가지신 사람수준의 하나님으로, 아브라함은 자신을 대하시고 나타나신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이러한 한 사람의 체험이 오늘날 온 우주의 모든 세대의 사람들의 하나님이 될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내 하나님이 되기 위해 우린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알고 한 항목씩 체험하는 하나님의 역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남은 날이 계수되기 위해서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요?

[어떤 근원에서 나오는 우물을 마실 것인가?]
우리가 어떤 종류의 생활을 할 것인가? 는 어떤 우물을 마시는 가에 달려 있습니다. 한 우물은 이스마엘이고 이집트(세상)로 내려가게 합니다.
또 다른 우물은 이삭의 우물로 우리를 모리아산으로 이끕니다. 매순간 우린
어떤 우물을 선택하게 됩니다. 심지어는 5분후에 다른 우물을 마실지도 모릅니다. 이삭의 우물을 마시려면 우물아 솟아라! 노래하며, 우물에게 말해야 합니다. 주! 예수님, 우물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신성한 우물을 덮고 있는 "흙"을 파내야 합니다. 파내십시오!!! 메마르다고 느끼면, 뭔가 솟아나는 것이 없다면, 힘이 없다면, 복잡한 생각들, 자기연민, 고집세고 완고한 의지의 흙들을 기도로 파내야 합니다. 빛비춤을 근거로 해서, 개인적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주님께 나가서 파냅시다.

[이삭이 다시 돌아오는 체험을 하기 위해]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안주하고 붙어있으려는 자아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무엇이든지 돌려드려야 하고, 붙잡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의 원칙이고 믿음의 생활입니다. 100세에 나은 이삭은 너무나 소중했지만 되돌려 드려야 하는 공과를 배웠습니다. 우리는 모리아산으로 바로 뛰어 갈 수 없습니다. 브엘세바에 머물수록 모리아로 더 많이 이끕니다. 이삭은 드려진 후 부활한 이삭이 되 돌아왔습니다. 우리의 축복, 성공, 일등은 죽음을 통과하여 모리아 산에서 되돌아 올 때 우리에게 복이 될 것입니다. 마치 란 형제님께 30여년 만에 이삭이 다시 돌아온 것처럼,,,,

[주님의 미소를 관심하는 실지적인 생활은]
아브라함은 주님과 하나님 되어 사는 실지적인 생활을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알았고, 내적인 느낌과 일치되어 행동하였습니다. 주님과 하나되어 산다면 이미 그분의 내적인 느낌을 알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무엇을 갈망하시는지를 말씀하실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린 하나님의 임재를 얻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 마음이 있어야 하고,
매순간 그분의 눈 언저리를 주목하고 그분의 미소를 관심해야 합니다.
영을 관심해야 하고 말씀을 관심해야 합니다. 성령의 가르침과 빛 비춤이
있도록 매일 말씀을 읽으며 치우치지 않도록 하고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