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주의 인도하심에 주의해야 할 필요
그 영과 몸
2014-01-04 , 조회 (1129)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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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 아시아에서 말씀 전하는 것을 막으셨으므로,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지역을 거쳐, 무시아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하였지만, 예수님의 영께서 허락하지 않으셨다.(행 16:6-7)

 

And they passed through the region of Phrygia and Galatia, having been forbidden by the Holy Spirit to speak the word in Asia. And when they had come to Mysia, they tried to go into Bithynia, yet the Spirit of Jesus did not allow them.(Acts 16:6-7)


주님은 우리들에게 대학 구내에 가도록 부담을 주셨지만 이것을 하나의 운동으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당신 스스로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결정은 모두 그 영에 대한 모욕이다. 만약 이와 같은 일을 했다면 회개해야 한다. 또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그들이 할 일에 대해서 지시를 했기 때문이다. 우리들 중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어디에 가야 한다고 명령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주님께 대해 얼마나 큰 모욕인가! 당신은 누군가? 누가 당신에게 다른 사람에게 제안하도록 권위를 부여했는가? 당신은 다른 사람을 주께 접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젊은 형제 자매들이여, 당신은 기도해야 한다. 그렇다. 우리는 대학에 대하여 주께서 부담을 주셔서 인도함을 받았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주님께 가져가 기도하며 주님께 다시 한번 자신을 바쳐서 말해야 한다.

『주여, 나는 당신과 함께 가고자 합니다. 주여, 내가 어디에 가기를 원하십니까?』 모든 사람은 주님의 인도가 분명할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 당신이 어디에 가야 할지를 다른 사람이 지시해야 한다고 기대하지 말라. 그것은 조직이요 종교다. 인도자로부터 가장 작은 자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는 주를 접하기 위해 주님의 임재에 나가야 한다. 그렇다. 주님은 대학에서 역사하신다. 그러나 그의 주권에 의하여 당신이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는 다른 수백 사람에게는 가도록 인도할지 모르나 당신에게는 그대로 머물러 있도록 명할지도 모른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일어나는 일이 운동이 아니라 절대로 주께서 인도하는 것임을 증명한다. 우리는 모두 주의 임재 앞에 나아가 얼마 동안 기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몇 년 동안 이 교훈을 배우며 실행하여왔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운동 안에도 있지 않다. 모든 것을 주의 임재 앞에 가져와야만 한다. 내가 당신을 대신해서 주님 앞에 갈 수 없다. 당신 자신이 주님 앞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누구도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주님 앞에 갈 수 없다는 교훈을 배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성직자 -평신도라는 계급제도로 되어버린다. 내가 주님 앞에 갈 수 있다면 당신도 주님 앞에 갈 수 있다. 최근에 구윈받은 가장 새로운 사람이라 할지라도 역시 스스로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결국 우리는 『나는 거기에 간다. 주님께 물어본 결과 주님이 거기에 가도록 나를 인도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결코 어느 형제가 당신에게 그렇게 하도록 권했다는 이유로 가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또 누구에게든지 어느 곳에 가야 한다고 명해서도 안 된다. 그보다도 당신에게 주님이 인도하고 계시다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의 운동 안에 있는 것이 되며 우리가 하는 일에는 아무런 영적 가치도 없게 될 것이다.
하루가 지나면 확실해질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라. 열흘이 되어도 확실치 않을지도 모른다. 많은 경우 나는 백 날이 되어도 주의 인도하심이 확실치 않았었다. 나는 『주여, 긍휼히 여겨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기도했다. 마침내 분명한 것이 임했는데 주님의 인도하심을 알게 되었다. 주님의 그와 같은 인도에 의하여 행동했을 때에는 언제나 후회가 없었다. 하나님의 새 언약의 경륜은 그 영의 문제이다. 사도행전 16장 6절은 바울과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이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이 「비두니아」에 가고자 할 때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셨다(행 16:7). 그러나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은 회의를 열어 그때의 상황에 대하여 토의하지 않았다.
 
오히려 바울은 주의 손길을 기다렸다. 그럴 때 밤이 되어 바울은 환상을 보게 되었다. 사도행전 16장 9절에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했다. 바울과 동역자들은 주님이 마게도냐에서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신 줄로 결정했다(행 16:10). 환상을 본 후에도 바울은 과연 주께서 그들을 마게도냐로 인도하고 계신지 아닌지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이로 인해 사도들은 자신의 결정에 의하지 않고 다만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기독교의 비극은 너무도 많은 사람이 주의 임재를 갖지 않고 주의 인도하심에 주의하지 않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실행 상의 문제에 대해서도 그들 자신이 주님이 될 정도까지 자신을 높이고 있다.(그 영과 몸, 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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