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의 자랑: 육체의 다른 방면
영에 속한 사람
2014-01-06 , 조회 (123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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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롬 8:8)
And those who are in the flesh cannot please God.(Rom.8:8)

내가 말합니다. 그 영을 따라 행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결코 육체의 욕망을 채우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육체는 욕망을 일으켜 그 영을 거스르고, 그 영은 육체를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서로 대적하여 여러분이 갈망하는 것들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갈 5:16-17)

But I say, Walk by the Spirit and you shall by no means fulfill the lust of the flesh. For the flesh lusts against the Spirit, and the Spirit against the flesh; for these oppose each other that you would not do the things that you desire.(Gal. 5:16-17)

육체의 행위가 앞에서 말한 것뿐인가? 이것들 외에 육체의 다른 일은 없는가? 육체는 십자가의 능력 아래 아무런 활동을 할 수 없는가? 이제까지 말한 것들은 육체의 죄 방면 곧 육신의 정욕 방면에 치중했을 뿐 육체의 다른 방면은 다루지 못했다. 앞에서 우리는 육체가 혼의 일과 몸의 정욕을 포함한다는 것을 말한 바 있다. 육신의 방면에 대하여 우리는 이미 말했다. 그러나 혼의 방면에서 우리는 아직 분명히 말하지 못했다. 육신에 관해서는, 믿는 이들이 모든 더러운 죄들을 마땅히 제거해야 하며, 혼의 일들에 관해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그 패괴함이 육신의 부분보다 못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이것도 거절해야 한다.

성경에서 볼 때 ‘육체’의 일은 불의와 스스로 의롭다 하는 것의 두 종류로 나뉜다. 그러나 이 둘은 다 육체의 일이다. 육체는 죄를 낳을 뿐 아니라 또한 의로운 것을 낳는다. 육체는 더러울 뿐 아니라 고상한 것들도 많이 가지고 있다. 육체는 정욕 뿐 아니라 선한 뜻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이제 우리가 다루어야 할 항목이다. 성경에서는 육체라는 단어를 부패한 사람의 천성이나 생명―혼과 몸을 일컬을 때 사용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의 혼을 영과 몸 사이에 두셨는데, 이는 곧 혼을 하나님과 영에 속한 것과 감각 혹은 세상에 속한 것 사이에 두신 것이다. 혼의 직책은 중간에서 적당한 위치를 각자에게 주어 서로 상합하게 하고, 이 완전한 화합을 통하여 최종적으로 사람으로 영의 몸을 얻게 하는 데 있다.

그러나 혼은 감각의 유혹에 순종하여 영의 권위에서 벗어나 육신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이 양자는 긴밀히 연합하여 ‘육체’가 되었다. 이 육체는 ‘영이 없을 뿐 아니라’ 또한 직접적으로 영을 대항한다. 성경은 “육체의 소욕이 성령을 거스른다”라고 말한다(갈 5:17). 사람의 영과 성령을 대항하는 인간의 육체에는 두 방면이 있다. 범죄하고 하나님을 거스르며 하나님의 율법을 파하는 일에서 육체는 영을 대항한다. 또한 육체는 선을 행하고 하나님께 복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서 영을 대적한다. 육체의 ‘몸’의 부분은 죄와 정욕으로 충만하기 때문에, 육체가 드러날 때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케 하는 많은 죄들을 범하게 된다. 그러나 육체의 ‘혼’의 부분은 몸의 부분과 같이 더럽지 않을 수도 있다. 혼은 사람이 생활하는 원칙이고 사람의 자아이다.

이것은 사람의 의지와 생각과 감정 등의 기관을 포함한다. 사람 눈에 혼의 일은 다 더러운 것이 아닐 수가 있다. 혼은 자신의 의사와 사상과 애호와 자신의 감정만을 관심한다. 혼의 모든 일이 꼭 더러운 죄를 범하는 일이 아닐 수도 있다. 혼은 자신을 중심 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독립과 자립이 바로 혼적인 일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이 부분에 속한 육체의 행위가 다른 부분과 같이 더럽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전히 이것은 성령을 대적한다. 육체는 자기를 중심 삼고 하나님의 뜻보다 자아의 뜻을 높인다. 비록 혼이 하나님을 섬길 수 있지만, 그 섬김은 하나님의 방법대로가 아닌 자기의 뜻대로 한 것이고 자기 눈에 좋아하는 대로 행한 것이다. 자아는 혼의 모든 행동의 원칙이다. 비록 이것이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죄들을 범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최선을 다해 지킨 것일지라도

그 모든 활동의 중심은 ‘자신’이다. 이 자아의 간사함과 강함은 참으로 사람의 상상을 초월한다. 육체는 하나님께 득죄하는 일들에서 영을 대적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일과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들에서도 단순히 영의 인도를 받거나 온전히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고, 자기의 능력을 사용함으로써 성령의 대적이 되고 성령을 소멸한다. 우리 주위 사람들 가운데서 우리는 천연적으로 선하고 인내심이 있으며 자상한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다. 믿는 이들은 죄를 미워한다. 그들은 죄에서 벗어나 갈라디아서 5장 19절부터 21절에 기록된 육체의 일들을 다시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의를 사모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의 아홉 가지 열매 중 하나라도 갖기 위해 최선을 다해 의를 행한다. 그러나 위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믿는 이들은 자기의 육체―육체의 전부―를 미워하는 것을 배우지 않은 채, 육체에서 나온 죄들에서 벗어나기만을 사모한다. 그는 육체의 행위를 거절하는 것을 알 뿐 육체 자체를 제할 줄은 모른다. 내가 말하는 요점은 육체의 행위가 죄만 범하지 않고 선도 행한다는 것이다. 육체가 선한 일을 행한다는 것은 아직 육체가 살아 있다는 뜻이다. 만일 사람이 죽었다면 그가 행할 수 있는 선과 악도 그와 함께 죽어야 합당하다. 만일 그 사람이 아직 선을 행할 수 있다면 그는 아직 죽지 않은 것이다. 우리가 알듯이 사람은 본래 다 육에 속한 존재이다. 성경의 가르침에 의하면 모든 죄인은 육에서 났기 때문에 이 세상에 육에 속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나 우리는 거듭나기 전에(혹은 끝내 주님을 믿지 않고 거듭나지 않을 수도 있음) 선한 행실을 가진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 이러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가 아주 인자하고 인내성이 있으며 선량할 수 있다. 주 예수님의 말씀(요 3:6)에 의하면, 이 사람이 이렇게 선할지라도 그는 여전히 육에 속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 사실은 우리에게 육체가 선을 행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육체도 선을 행한다는 것은 바울이 갈라디아인들에게 한 말에서도 볼 수 있다. “너희가 …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3:3). 갈라디아의 믿는 이들은 육체를 힘입어 선을 행하는 과오를 범했다. 그들은 이미 성령으로 시작하였지만 계속적으로 성령으로 마치지 않고 자기의 의(율법의 의)를 행하여 마치려고 했다. (영에 속한 사람 2부, 제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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