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경륜의 적용(4)-인간관계
진리의 언덕
2014-01-15 , 조회 (672)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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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경륜'(딤전1:4)이란 말은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제 마음을 적신 적이 많지 않습니다. 


그리스도 자신을 사람에게 분배하여(요10:10, 엡3:8) 주님의 몸인 
교회를 건축하는 이 거대한 우주적인 프로잭트(마16:18)에 아무 것도 아닌 
저 같은 자도 뭔가 할일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하나님의 경륜의 두 주인공은 당연히 '하나님' 그리고 '사람'입니다. 


1. 우선은 하나님과 사람 간의 수직적인 관계가 바로 서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바로 선다는 말을 조금 더 풀어서 말하자면, 아침마다 '주님자신'을 우리의 참 
양식 (요6:57)으로 먹는 시간을 갖는 것이고, 매일의 생활에서는 바로 그 
아침에 주님먹은 그 힘으로 자신을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사는 실재를 갖는 
것입니다 (요6:57 하반절, 갈2:20). 

(예전에는 주님을 먹는다 또는 우리가 주님자신을 얻고 더 얻는다고 하면 
뭔가 모르게 불편해 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엊그저께 잠깐 기독교 
방송을 듣는데 한 목사님이 설교에서 요1:16의 '은혜위의 은혜'를 받는 구절을 
설명하시면서 여기서 은혜는 바로 주님자신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은혜 그러면 물질적인 복받는 것을 생각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은혜는 주님자신이다. 여러분 중 물질적인 복을 마음껏 받는 것과 주님 
자신을 더 얻는 것 중 어느 것을 더 귀하게 생각하느냐고 성도들에게 질문했 
습니다. 저는 속으로 '와 이 분은 참으로 깨인 분이시구나'라고 생각을 했습 
니다. 에딘버러 직제문서라는 개신교 교리집에도 '은혜는 사람 안에 오신 
하나님 자신'이라는 취지의 정의를 내려 놓고 있습니다. 

제가 사람이 '주님자신' 얻는 문제를 놓고 이런 저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이 문제가 선명하게 계시되는 것이 하나님의 경륜의 성취에 있어서 너무 너무 
중요한 것을 어느 날 눈이 열려 보았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순간에도 주님자신과 무관하거나 '주님+ 알파'를 위해 바삐 움직이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의 하나님자신의 증가'(골2:19)라는 이 비밀을 
밝히 보고 담대하게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2.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수평적 인간관계 

하나님의 경륜이라는 하나님의 사업은 쉽게 말해 '사람 비지니스'입니다 
(롬14:20). 그러므로 사람을 싫어 하거나 사람과 함께 있는 시간들을 
거북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이 일에 있어서 큰 결함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그러하신 것처럼(요3:16) '사람을 사랑하게 해 달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 만나는 것이 취미가 되도록 
습관을 키워갈 필요가 있습니다. 워치만 니 형제님은 '사람 만나는 것'이 
취미 중에 하나라고 들었습니다. 

(저도 혼자서 방 구석에 틀어 박혀 하루 종일 책이나 읽고 놀라고 하면 그 
게 좋지 사람 만나서 함께 있는 것이 매우 거북스러웠던 사람들 중에 하나입 
니다. 우선은 만나면 할 말이 없어서 부담스럽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 라고 
하고 싶은데 막상 입을 열어 말하면 '어'가 나온 적이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말이 헛 나오뿐 아니라 다리가 후들거리고 얼굴이 달라 올라 
사람 만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륜을 본 후 저의 이런 
옛사람의 기질을 뒤짚었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지금도 뒤 짚고 있습니다.) 


아침에 읽은 마태 복음 18장은 전체가 왕국 안에서의 (인간) 관계를 말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즉 주님은 '천국에서는 누가 가장 크냐'는 제자들의 질문을 받으신 후 긴 답변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주님의 답변내용을 조금 깊이 살펴 볼 때 그 
핵심은 천국백성이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의 바른 태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경륜은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주 안에서 온전하게 세우는 
것인데(골1:25-28) 주님은 바로 이 일을 위하여 이 땅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먼저 마 18장 내용을 간략히 분석 요약해 보자면, 

1) 어린아이처럼 되라(2-4절) 
2) 남을 실족케 말라(5-9절) 
3) 남을 멸시(despise)치 말라(10-14절) 
4) 교회의 말을 들으라(15-20절) 
5) 제한없이 용서하라(21-35절) 가 될 것입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단체가 있는데 그 구성원들이 참으로 
어린아이같이 단순하고, 서로 마음 상하게 함이 없고, 멸시함도 없으며, 
권위에 순종하고, 서로 미안하다고 하고 또 조건없이 용서한다면 그들이 
사는 곳이 바로 천국이 아니겠습니까? 

먼저는 내 가정 안에서, 그리고 자신이 소속된 소 그룹, 그 지방의 교회에서 
이런 무리들이 세워져 간다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는 것입니다. 


이제 실제적인 적용에 있어서 보다 선명한 인상을 받도록 위 요점들 중 
몇 가지만 조금 더 깊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1) 어린아이(little children)처럼 됨 

주님은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제자들 가운데 세우시고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 
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2절). 

그러나 사도 바울은 고전14:20에서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어린아이같이 되라고 하신 위 말씀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되라는 것입니까? 이 문제는 어린아이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진지하게 받을 때 참으로 우리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위 본문과 유사한 개념을 전달하는 다른 성경 본문들로는 마19:14, 막10:15, 
눅18:17, 시131:2, 벧전2:2 등을 들수 있습니다. 이런 본문들을 묵상해 
볼 때 '어린아이와 같이 되는 것'은 '너무 많은 것들이 이미 그 사람의 생각을 
점령하여 복잡하지 않은 것, 단순하고 순수한 것,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상태' 등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눅18:17 
각주1참조). 

세상 일도 어떤 것은 어설프게 알아 고집만 센 사람보다 차라리 그냥 아무 
것도 모르는 초보자를 데려다가 제대로 가르쳐 주인의 의도에 맞게 일을 시키 
는 것이 더 나을 때가 많습니다. 이것 저것 이미 그려진 종이를 지우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느니 차라리 백지 위에 처음부터 다시 그리는 것이 나은 것과 
같습니다. 성경공부를 함께 해 보아도 이 단체 저 단체를 거치며 이런 저런 
지식과 체험을 가진 사람보다 아예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체계적으로 
핵심 진리를 가르쳐 영적 진보를 이루게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일 때가 
많습니다. 이미 나이가 들어 자신의 주관이 확고하게 굳어진 중년이나 노년 
보다는 중고등부 학생 또는 대학생들이 훨씬 단순하고 순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2세들을 주목하는 것입니다. 

' 어린아이처럼 된다'는 것은 한 마디로 '심령이 가난한 자'(the poor in 
spirit)들 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마5:3). 왜냐하면 이 둘은 모두 
천국을 소유하는 특징들이기 때문입니다. 

오! 우리는 얼마나 쉽게 낡아지고 복잡해 지는지요! 
오 우리 안에 얼마나 쉽게 높아지려는 야심과 교만이 스며들어 오는지! 
적어도 교회 안에서 위 제자들처럼 자신의 입지를 고려하고 지위를 추구하는 
사람은 어린아이같은 자는 아님이 분명합니다. 
오 주님! 우리를 더 단순하게 하옵소서! 
이 공간을 드나드는 모든 이들이 다 어린아이와 같게 하옵소서! 


(2) 실족케 하지 않음 

주님은 실족케 하는 일(offences, offend)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라고 경고하십니다(마18:7). 
오! 우리 중에 누가 남을 실족케 하길 원하며 또 실족하고 싶어 하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일이 본인이나 주변에서 쉽게 생기곤 합니다. 

성경에서도 실족에 대한 언급이 다음과 같이 여러 군데 나옵니다. 

그런즉 너희의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전 
8:9). 그러므로 만일 식물(고기)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8:13).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10:32). 이 사역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고 무엇에든지 아무에게도 거리끼지 아니하고(고후6:3). 누가 약하면 내가 
약하지 아니하며 누가 실족하게 되면 내가 애타지 않더냐(11:29) 그런즉 우리가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롬14:13). 무엇이든지 내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14:21).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들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가두어(마13:41). 


많은 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세우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때 남을 실족케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참으로 
남을 세우는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같이 되고, 
율법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그들처럼 되고,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가 
되고,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양이 되었습니다(고전9:20-22). 

그는 마치 여러 모양의 그릇에 담긴 물처럼 쟁반에 담기면 넓게 퍼졌고 
호리 병에 담기면 길게 쌓였고, 빨간 그릇에 담기면 빨간 그릇 안에 담긴 
물이 되었고 사기그릇엔 또 그 그릇 안에 담긴 물이 되었습니다. 
이런 것이 그에게 아무런 저항이 없을 수 있게 된 것은 자기의 개성을 
살리거나 고유의 무엇을 고집하는 것은 남을 거치게 할 뿐임을 알았기 때문 
입니다. 그리고 밖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본질인 물로 마른 사람에게 
흘러들어가 그들의 참된 필요인 목마름을 채워주는 것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때 방법과 절차와 형식과 체면과 자존심과 
자기 이익을 고려함으로 핵심을 놓치고 사람을 다치게 했던지요!! 

사람의 마음은 한 번 다치거나 상하면 원상회복이 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림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상처주었다면 회개하고 용서하면 된다 
는 생각으로 생긴대로 내키는 대로 말도 함부로 하고 아무렇게나 
사는 태도는 반드시 재고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교회생활은 물론 
일반 사회생활에도 큰 어려움이 있게 될 것입니다. 



이 밖에 '남을 멸시치 않음', '교회의 말을 들음' '남을 제한없이 용서함' 
등의 공과를 더 배우기 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사랑하되 자기 야심을 성취할 길이 보이지 않거나 
남에게 상처받은 것을 도저히 용서하지 못함으로 실족합니다. 
주님의 몸을 건축하는 생명의 길을 끝까지 가지 못하고 중도 하차를 하거나 
뒤로 물러서 침륜에 빠지는 것은 참으로 마음 아픈 일입니다. 어쩌다가 
자신도 모르게 이런 상황에 처한 사람은 마18:23-35을 여러 번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지체가 자신에 대해 가한 상처는 눈에 흙이 들어가더라도 도저히 
용서 못할 일일지 모르나 위 본문 내용에 의하면 '백 데나리온' 빚에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마18:28). 그러나 그가 우리 주님에게 탕감 받은 빚은 '일만 
달란트'입니다(18:24). 이 둘의 차이는 자그마치 60만분지 1입니다. 6천배나 
6만배도 아니고 60만배입니다. 이처럼 천연적인 옛사람인 우리의 마음은 
좁습니다. 만일 이런 좁은 마음을 고수하며 자신에게 상처를 준 어느 형제를 
마음의 중심에서 용서치 않는다면 그는 하늘 아버지로부터도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35절). 이런 사람은 아마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 그러나 남을 용서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배우기 어려운 공과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오! 왕국의 표준은 얼마나 높은지요! 우리 모두가 우리 안에 
사시는 그리스도의 인격으로 인해 이 표준에 이르기 원합니다(고후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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