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경륜의 적용(7)-책망하고, 용서하라
진리의 언덕
2014-01-15 , 조회 (759)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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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도 많은 분들이 '당신의 뜻(Thy will)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소위 주기도문의 문구를 빌어 기도를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토록 오랫동안 반복해서 사용해 왔던 내용들이 가리키는 참된 
의미를 제대로 알 고 있는 분은 과연 몇 분이나 될런지요? 

즉 위 기도문에서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은 과연 무엇이며, 그것이 '땅에서 
이뤄진다'는 말은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누가 어떻게' 이룬다는 말입니까? 
이런 질문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해답을 추구하려는 마음이 없는 분들은 아래 
제가 쓰고자 하는 내용들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의 충만인 그분의 몸(교회)을 
얻는 것(엡1:23, 마16:18, 엡1:4-5, 4:13)임을 보신 분들, 
그리고 저를 포함해서 이러한 주님의 몸을 건축하는데 자신의 남은 생애를 다 
쏟아 붓기를 갈망하시는 분들은 다음 두 가지 일들이 참으로 엄중한 것임을 
함께 새기기 원합니다. 



원칙적으로 '주님의 몸'은 '누룩없는 떡'으로 상징됩니다. 

즉 고운 밀가루와 같은 주님의 인성과 기름으로 상징되는 그리스도의 
신성이 연합된 것이 소제이며 또한 그 몸의 본질입니다(레2:4, 고전11:23-24). 
이러한 주님이 사람 안에 들어오셔서 충만케 되시는 과정이 바로 주님의 
몸이 건축되어 가는 실재입니다(엡1:23, 골2:19). 

여기에서 우리는 두 가지를 붙잡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는 '누룩'으로 
상징된 거듭 난 성도들 사이에서의 '죄 짓는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죄와 
허물이 있으되 한 번 거듭 난 성도라면 영원히 배제시켜 버릴 수는 없는 
몸의 지체들을 받는 문제입니다. 이러한 두 가지 문제는 오늘 날 많은 경우 
소홀히 다뤄지거나 치우쳤다고 느낍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음부로 부터 올라온 
사망의 기운이 금등대로 예표되는 교회들의 간증을 흐리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마태복음 18장에서 주님이 말씀하신 죄지은 자를 책망하는 문제와 
자신에게 상처를 주고 죄 지은 동료를 용서하는 문제를 조금 더 상세하게 
보기 원합니다. 


1. 죄 지은 자를 책망함 

주님은 마18:15에서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tell him his fault, reprove)'고 말씀하십니다. 

이와 유사한 구절인 레19:17 은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rebuke)고 말합니다. 
갈6:1 은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영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restore)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 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에서 더하여 당사자인 너 혼자 찾아가서 말해도 안 들으면 
한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서 말하라고 하십니다. 그래도 말을 안 들으면 
교회에게 말하고 교회 말도 안 들으면 (하나님의 법도를 모르는)이방인과 
세리 취급을 하라고 강하게 말씀하십니다(16-17절). 


여기에서 이런 실행을 실제로 하려고 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세부적인 요점들이 있다고 느낍니다. 


1) 그 죄 지은 지체를 세우고 얻고자 할 목적으로 가야 합니다. 

이 대목이 99마리 양을 놓아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를 말한 바로 다음에 언급된 것임을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18: 15 하반절의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 는 우리가 화풀이 
하거나 따지기 위해서 또는 지체의 허물을 폭로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얻기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임을 잘 말해 줍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각 사람 
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위함이지 넘어지게 함이 아닙니다. 


2) 피해를 입은 그 본인이 먼저 찾아가야 합니다. 

많은 때 피해 당사자는 '꼴도 보기 싫어서' 또는 '이미 마음이 많이 상해서 
찾아가면 좋은 소리가 안 나올 것 같아서' 또는 직접 찾아가서 말을 하는 것이 
그냥 마음에 내키지가 않아서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본인이 혼자 감당하지 못하고 괴로우니까 당사자 아닌 자기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말을 털어 놓곤 합니다. 그러면 이것이 교회 안에 돌고 
돌아 원망과 시비거리가 되고 '가십' 거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이런 음부로 부터 올라온 말들은 얼마나 옛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고 
빨리도 퍼져 나가는지요. 어렵더라도 본인들끼리 참으로 자신을 부인하고 
몸의 간증과 건축을 위하여 이런 상처와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들을 처리할 
수 있다면 주님의 몸 안에서 많은 누룩들이 제한을 받을 것입니다. 
오 얼마나 많은 때 소위 걸려 넘어진 사람들의 독이 묻은 말들이 다른 지체들의 
사기를 끌어 내리고 대적에게 틈탈 기회를 주어 왔던지요! 


3) 교회의 치리는 다시 얻고자 함입니다. 

교회는 마땅히 이 땅에서 하나님의 권위를 행사할 때를 알아 누룩이 
온 덩이를 부풀게 하지 못하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이 약하면 많은 혼잡으로 전 성도들이 어려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죄를 지었고 심지어 교회 말도 안 들어 치리를 당해도 
'이방인과 세리와 같이 여김을 당할 뿐'(마18:17)입니다. 이방인과 세리도 
여전히 복음의 대상이며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의 대상일 뿐입니다. 
무슨 세상 사람들이 전과자들을 선입관을 가지고 보듯이 '치리 받은 지체들'을 
사람 취급도 안 하려고 하는 것은 지나친 것일 수 있습니다. 
자식이 무슨 잘못을 해서 징계를 한 다음 그 자식이 마음을 열어도 냉랭하게 
대하는 부모는 그 자식을 다시 빗나가게 하는 주된 요인이 되고 말 것입니다. 
부모 자식 사이나 형제지간에 어떤 일로 인해 의를 끊자며 보려고 하지도 않고 
서로 연락도 안 한다면 그것은 그 가정에 큰 근심거리일 것입니다. 

이런 것은 마태복음 18장에서 주님이 가르치신 것과 다른 해법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이방인과 세리로 여기라는 말씀 이후에 나오는 묶고 푸는 이야기 
나 두 세 사람이 합심하여 구하면 하늘 아버지가 이루시겠다는 말씀은 
이 치리를 당한 지체를 다시 얻으려는 기도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 무정한 말세에 엄격한 공의로 죄와 누룩을 제하는 일과 
무한한 사랑으로 그를 위하여 기도하는 두 가지가 균형을 이룰 때만 
우리는 참되게 주님의 몸의 간증을 강하게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2. 마음의 중심 안에서 용서함 

주님은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다고 말씀하십니다(마18:7). 
심지어는 주님 자신도 나로 인하여 실족치 않는 자가 복이 있다라고 말씀하십 
니다. 성경은 일만 달란트 빚진 것을 탕감 받은 자가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닥달 하는 이야기(마18:28, 30)를 적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어떻게 100억 빚을 탕감받은 자가 자기에게 1000원 안 갚은 
사람을 빚 안 갚았다고 감옥가게 할 수 있느냐고 혀를 찰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말로 다 할수 없는 죄들을 주님의 보혈의 댓가로 인해 용서함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누가 자기에게 말 실수 한 것, 금전적인 손해 끼친 것, 
자기 자존심을 깔아 뭉갠 것, 사람 취급 안 하고 무시한 것 등등으로 
다른 지체들을 용서하지 못하는 사례들을 주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 돈이 어떤 돈인데..., 지가 나보다 잘 난 것이 뭐가 있다고 나를 무시해... 
장로면 다야.... 나를 공개적으로 그렇게 무안을 줄수가 있어.... 등등 
다른 사람을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이유가 사람마다 있습니다. 또 그 말을 
들어보면 수긍이 안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런 분들에게 '일만 달란트 탕감받은 자가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닥달하는 
이야기'를 들려 주시고 계십니다. 오 이 시간 이런 일에 연루된 분들이 혹시 
있다면 이 말씀에 빛 비췸을 받고 해방을 얻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어떤 분은 자신의 용서 못하는 마음 상태가 주님을 누리는 것을 방해하고 교회 
다른 지체들에게도 알게 모르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괴롭고 힘들지만 마지못해 
용서하고 화해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정도로는 참된 
화해가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from your hearts)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같이 하시리라'고 한 번 더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과연 누가 이런 말씀들을 마음에 담아 자기에게 죄 지은 지체를 찾아가서 
사랑으로 책망 할 용기를 가질 수 있습니까? 과연 누가 자기에게 참으로 견디기 
힘든 상처와 손해를 끼친 지체(세상 사람도 아니고)를 마음 중심에서 용서를 할 
수 있습니까? 

1) 하나님의 갈망이 이 허물 많은 지체들을 포함해서 모든 하나님의 택한 
자녀들을 변화시켜 주님의 몸을 건축하는 것임을 이상가운데 본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런 이상이 없으면 그냥 생긴대로 당한 대로 대우하고 처신할 뿐입니다. 

2) 깊은 기도가운데 그 문제에 대해서 자신을 십자가로 넘긴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그냥 이제 세월도 흘렀으니 털어버리자 하는 결심만 가지고는 
어렵습니다. 

3) 아버지의 사랑은 한 마리의 잃은 양까지도 포기하지 않고 찾고 찾아 
회복시키는 것임을 만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내가 방치하거나 용서치 못하고 
미워하며 사람 취급도 안 하는 바로 그 지체도 하나님 아버지는 여전히 사랑 
하신다는 것을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죄를 책망하여 바로 잡고,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무한한 용서가 이뤄짐으로 주님의 몸을 건축해 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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