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은혜로
창세기
2014-01-21 , 조회 (973)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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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사랑 안에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의 뜻의 기쁨에 따라 우리를 미리 정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아들의 자격을 얻어 하나님 자신께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엡 1:4-5)

Even as He chose us in Him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to be holy and without blemish before Him in love, Predestinating us unto sonship through Jesus Christ to Himself, according to the good pleasure of His will, (Eph. 1:4-5)

하나님의 선택은 또한 그분의 은혜로 인한 것이다(롬 11:5). 하나님의 선택에 관계된 긍휼과 은혜를 이해하기는 약간 어렵다. 비록 영원 과거에 하나님이 우리를 선택하셨고 미리 아셨지만,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가련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대적 사탄은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당신이 선택한 이 자를 보십시오. 얼마나 가련합니까?』 그때 하나님은 사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다. 『사탄아, 너는 내가 나의 긍휼을 베풀 가장 좋은 기회가 이것인 줄 모르느냐? 이런 가련한 사람이 없다면, 내가 어떻게 나의 긍휼을 베풀 수 있겠느냐? 만일 모든 사람이 완전하여 너의 표준에 도달한다면, 내가 긍휼을 베풀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탄아, 선택된 이 사람이 바로 나의 긍휼을 받을 그 사람이다.』 은혜란 무엇인가?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은혜란 우리 존재 안으로 역사해 들어오신 하나님이다. 비록 우리는 너무나 가련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거절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사탄의 송사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셨다. 하나님은 사탄에게,『사탄아, 나는 나의 택한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 뿐아니라 내 자신이 그들 안으로 들어가겠다.』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존재 안으로 들어오실 때, 그것이 은혜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의 대상일 뿐 아니라 그분의 은혜의 대상이기도 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 아래 있고, 그분의 은혜는 우리 안에 있다. 나는 내가 신성한 긍휼 아래 있고 내 안에 신성한 은혜가 있음을 간증할 수 있다.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선택하심 때문이다. 당신의 체험도 이와 같지 않은가? 우리 모두는, 우리가 가장 가련하고 비참한 상황에 있었지만,

하나님이 오셔서 우리에게 긍휼을 베푸셨고 우리가 회개했다는 것을 간증할 수 있다. 바로 그때, 신성한 것-하나님의 은혜-이 우리 안으로 들어왔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 아래 있을 뿐 아니라 그분의 은혜, 그 영이신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인격이 우리 안에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택이다. 야곱의 생애의 기록에서, 우리는 긍휼이라 불리울 수 있고 은혜라고 불리울 수 있는 것을 본다. 영원 과거에 있었던 하나님의 선택 뒤에 그분의 예정하심이 따른다(롬 8:29, 엡 1:5). 예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헬라어 원어의 뜻은 미리 점찍음(pre-marked)이다. 하나님은 미리 우리를 점찍어 놓으셨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보셨고 미리 아셨다. 우리는 영원 과거에 하나님에 의해 선택되었을 뿐 아니라 미리 점찍어져 있었고 그분의 표가 지금 우리에게 있다.

천사들조차도 우리가 미리 점찍어져 있음을 안다. 그러므로 예정은 하나님이 미리 어떤 운명-그분의 아들들이 되는 것-을 우리에게 표하셨다는 의미이다. 그분은 우리를 선택하셨고 아들의 명분을 얻도록 우리를 예정하셨다(엡 1:4-5). 하나님의 선택 뒤에 그분의 부르심이 따른다. 하나님은 영원 과거에 우리를 택하셨고, 정한 때에 우리를 부르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택이나 예정을 체험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의 부르심에서 모든 것을 체험해왔다. 우리 모두는 「붙잡혔다」. 나는 아주 야심 있는 젊은 학생이었던 어느 날 주님에게 붙잡혔다는 것을 강하게 간증할 수 있다. 이 낚시에서 벗어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나는 실패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와 같은 체험을 했다. 우리가 우리의 길을 가고 있었을 때 어느 날 주님이 우리를 낚아채셨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지 않다. 우리가 낚시에서 빠져나오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더 큰 낚시가 올 것이다. 이 낚시는 전우주를 꿸 만큼 크다. 우리가 가는 모든 곳에 낚시가 있다. 만일 당신이 라스베가스의 도박장으로 도망간다면, 당신은 그곳에 낚시가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이다. 많은 부모들은 하나님이 낚아챈 그들의 아이들에게 화내며 이렇게 말한다. 『너는 왜 그렇게 어리석으냐? 왜 너는 매일밤 집회에 가야 되느냐? 네 장래가 있다는 것을 모르느냐?』 우리는 신성한 낚시에 잡혔기 때문에 집회에 간다. 누가 이 낚시에 저항할 수 있겠는가? 아무도 없다. 이 신성한 낚시가 당신을 방문하기 위해 올때, 당신은 어떤 저항도 할 수 없다. 이것이 주님의 부르심이요 그분의 은혜로운 방문이다.(창 LS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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