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창세기
2014-01-23 , 조회 (824)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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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시어, 사랑 안에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의 뜻의 기쁨에 따라 우리를 미리 정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아들의 자격을 얻어 하나님 자신께 이르도록 하셨습니다. (엡 1:4-5)

Even as He chose us in Him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to be holy and without blemish before Him in love, Predestinating us unto sonship through Jesus Christ to Himself, according to the good pleasure of His will, (Eph. 1:4-5)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하여 선택되었고 부르심을 받았다(롬 9:11). 이 목적이 무엇인지를 아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지 않다. 젊었을 때 나는 아브라함에 대한 여러 메시지들을 계속 들었고 아브라함에 대한 여러 책을 계속해서 읽었다. 이 메시지들과 책들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은 것과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을 말했으나 어느 것도 하나님이 목적을 가지고 아브라함을 불렀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아브라함에게서 이 목적을 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생명 안에서의 성숙함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체험의 시작을 보지 못하며 그의 체험 안에서 합당한 생명의 충분한 끝도 보지 못한다. 아브라함이 갈대아에서 살고 있었을 때, 갑자기 하나님이 그에게 빛을 비추셨고 그는 「붙잡혔다」. 하나님은 그를 부르셨고 그는 사로잡혔다. 그러나 참 시작은 갈대아에서 출발하지 않았다.

그것은 창세 전에 하나님의 선택하심으로 시작되었다. 이 시작은 아브라함에게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야곱에게서 발견된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삶이 재혼으로 끝나는 것을 보았다. 그는 아주 늙어서 재혼했고 여섯 아들을 낳았다. 이것은 분명히 생명 안에서의 성숙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왕자로 변화된 것을 보지 못했다. 하나님에 대한 체험의 시작과 끝을 보려면 우리는 야곱을 보아야 한다. 하나님에 대한 야곱의 체험은 영원 과거에 시작되었고 영원 미래에 끝날 것이다.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그분이 부르신 자들을 왕들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는 야곱에게서 이 목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아브라함이나 이삭에게서 이것을 볼 수 없다. 이삭은 「사슴고기」를 먹는 것만 알았다. 만일 당신이 이삭에게 삶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나의 삶의 목적은 누리는 것이다.』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삭은 다른 어떤 것도 알지 못했다. 이와 같이, 오늘날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도 그들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모른다. 그들은, 『우리는 행복한 삶을 살고 평안을 가지고 오늘 기뻐하기 위해 구원받았다. 그리고 미래에 하늘로 가기 위해 구원받았다.』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신약은 하나님의 선택과 예정과 부르심의 목적이 아들을 얻는 것임을 분명히 계시한다(엡 1:4-5). 우리는 아들이 되기 위해 예정되었다. 우리는 평범한 아들들이 아니다. 우리는 왕의 아들들, 왕이 되도록 정해진 왕가의 아들들이다. 로마서 8장 29절은,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오니』라고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우리를 선택하시고 예정하시고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은 가련한 죄인들을 왕의 아들들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변화의 과정을 다 겪은 후에, 우리는 왕들이 되어 통치할 것이다.

창세기 1장 26절은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사람으로 하여금 그분의 형상 안에서 그분을 표현하고 그분의 통치권으로 그분을 대표하게 하는 것이었음을 계시한다. 신약도 우리가 제사장들과 왕들이 되었다고 말한다(계 1:6, 20:6). 제사장들로서 우리는 그분을 표현하기 위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있고 왕들로서 우리는 그분을 대표하기 위한 하나님의 통치권을 가지고 있다. 천년 왕국 동안, 우리는 그분의 제사장들로서 그분을 표현할 것이다. 또한 우리는 왕들로서 땅을 지배하기 위해 그분의 권위를 가지고 그분의 통치권을 사용할 것이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한 형상을 가지고 그분의 권위를 행사하기 위해 매일 변화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본다면 우리는, 『내 자신을 볼수록 나는 더 하나님의 아들 같지 않고, 더 왕의 아들 같지 않다.

나는 얼마나 불쌍한가! 나는 수년 전에 구원받았지만 여전히 너무나 형편없다.』라고 말할 것이다. 우리가 너무나 형편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음을 인해 주님을 찬양한다. 실망하거나 용기를 잃지 말라.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변화시키시는 과정에 있다는 증거이다. 창세기 오십 장에서 스물다섯 장 반이 요셉을 포함한 야곱의 기록이다. 이 장들에서 우리는 야곱이 하나님의 다루심과 훈련하에 있었음을 본다. 야곱의 친척이나 야곱과 관계되어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그를 다루시기 위한 수단이었다. 하나님은 그의 아버지, 어머니, 형제, 삼촌, 아내들, 아이들을 사용하셨다. 그러나 마침내 야곱이 솥에서 나왔을 때, 그는 하나님의 왕자가 되었다. 야곱의 체험의 목적은 무엇이었는가? 그가 평안과 기쁨과 행복한 삶을 갖기 위한 것이었는가? 만일 우리가 그렇다고 말한다면, 야곱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나는 당신의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전생애 동안 나는 평안을 가지지 못했다. 심지어 내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에도 나는 평안을 가지지 못했다. 하나님은 나를 첫째에 두시지 않았다. 나는 그것 때문에 싸웠다. 그리고 나는 싸움에 졌으므로 평안이 없었다. 나는 내 형을 속였고 그는 나를 죽이려 했다. 그러자 나의 어머니는 나를 삼촌 라반에게 피신하도록 도왔다. 라반은 속이는 데 있어서 나보다 더 능숙하였다. 평안에 대해서 나에게 말하지 말라. 나는 많은 평안이나 즐거움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많은 다룸을 받았다.』 야곱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그에게 평안이나 기쁨이나 행복한 삶을 주고 그를 하늘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목적은 이 불쌍한 탈취자를, 그분을 표현하는 그분의 형상을 지니고 그분을 대표하는 그분의 통치권을 행사하는 하나님의 왕자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다루는 것이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창세기의 끝에 올 때 우리는 이스라엘이 바로 이러한 사람의 전형임을 본다. 바로를 만났을 때 그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그의 손을 뻗어 그를 축복했다(47:7, 10). 야곱은 하나님의 형상을 가졌고 그분을 온전히 표현했다. 더 나아가 그는 요셉을 통해서 땅 위에서 하나님을 대표하여 모든 땅을 통치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창세기 끝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 그분의 선택의 목적을 본다. 오늘 우리는 야곱의 길에 있다. 우리 모두는 부르심받고, 의롭다함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의 다루심 아래 있다. 우리 위에 하나님의 새끼 손가락이 있을 뿐 아니라 그분의 엄지손가락도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다루심이며 변화시키심이다. 이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 뿐 아니라 하나님의 왕자인 이스라엘로 만들 것이다. (창 LS 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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