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의 의의
50 필수과정
2014-01-28 , 조회 (110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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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번제물의 머리에 손을 얹어야 한다. 그러면 그 제물이 그를 위한 제물로 기쁘게 받아들여져 그를 위하여 속죄를 이룰 것이다. (레 1:4)
And he shall lay his hand on the head of the burnt offering, and it shall be accepted for him, to make expiation for him.(Lev. 1:4)

히브리서 6장은 사람이 마땅히 그리스도의 도(道)의 초보에서 떠나 완전한 단계에까지 힘써 들어가야 함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소홀히 할 수 없는 기초인 몇 가지 진리가 있다. 믿는 이들은 다시 반복해서 기초를 세울 필요는 없지만 기초는 반드시 세워져야 한다. 그리스도의 도(道)의 초보는 무엇인가? 이것은 곧 회개와 믿음과 침례와 안수와 부활과 심판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침례와 안수가 그리스도의 말씀의 기초임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 준다. 만일 우리가 침례를 받은 뒤 안수를 받지 않는다면 주님을 따르는 일에 있어서 우리에게 한 가지 기초가 결핍되게 된다. 오늘날 교회의 잘못은 당시 히브리인의 잘못과 완전히 다르다. 당시 히브리인은 기초를 가지고 있는데 또 세우려고 했고 그 기초 위에서 방황했다. 오늘날 교회는 어떠한가?

진보했지만 기초가 세워지지 않았다. 사도는 히브리인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의 초보를 떠나 완전한 데에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말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은 이런 기초들이 세워지지 않은 채 전진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 말씀은 너무 이른 것이다. 여러분은 안수가 그리스도의 말씀의 기초 중 하나임을 보아야 한다. 기초가 이미 세워진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야 하고 아직 세워지지 않은 사람은 반드시 세워져야 한다. 우리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가르침의 다른 점은, 그들은 사람들에게 초보를 떠나라고 권하고 우리는 그 곳으로 돌아가라고 권하는 것이다. 만일 집 한 채를 짓기 위해 여섯 개의 기초 돌이 필요하다면 그 돌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된다. 하나라도 부족할 때 언젠가 문제가 생긴다. 기초에 속한 것은 하나라도 결핍되어서는 안 된다. 침례는 기초이다. 이것이 없다면 장래에 문제가 된다. 안수도 기초이므로 이것이 없다면 역시 장래에 문제가 된다.

기초를 소홀히 할 수 없다. 기초를 세우지도 않은 채 집을 지을 수 없다. 여러분에게 기초가 하나 부족하다면 반드시 보충해야 한다. 그래야 위로 건축할 수 있다. 우리는 이미 침례가 우리를 위해 이룬 일을 말했다. 침례는 사람을 세상에서 나와 구출되게 하고 세상을 벗어나게 하며 또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게 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한다. 그러나 대체 안수는 우리를 위하여 무슨 일을 이루는가? 안수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 문제에 관하여는 레위기 1장과 3장과 4장을 읽을 수 있다. 이 몇 군데가 구약에서 안수를 가장 많이 언급한 곳이다. 구약에서 사람이 생축의 머리 위에 안수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것은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연합이다. 레위기 1장에서 말한 생축의 머리 위에 안수한다는 것은 제물을 드린 사람이 제물과 연합한다는 뜻이다.

이제 한 가지 문제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제물, 곧 속죄제나 번제를 드릴 때 왜 자신을 드리지 않고 소나 양을 드렸는가 하는 것이다. 수많은 소와 양들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그가 소나 양을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드렸는데, 하나님에게 소와 양들이 부족하다는 말인가?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와서 자신을 드리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 제물을 드리는 것은 소나 양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제단에 와서 자신을 드리기 위해 죽고 불태워짐으로 번제가 된다면, 구약에서 몰록(Moloch)을 숭배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가 아닌가? 몰록을 숭배하는 자들은 소나 양을 몰록에게 드리지 않고 자기의 아들을 몰록에게 드렸다. 만일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그분께 드리라고 요구했다면 우리 하나님은 몰록과 비슷하다.

몰록은 우리의 자녀가 피를 흘리도록 요구하고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희생으로 드리라고 요구하신다. 만일 우리가 참으로 자신을 불 속에 넣어야 한다면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는 몰록보다 더욱 심한 것이다. 한 면에서 하나님의 요구는 더욱 심하지만, 또 한 면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불태워지지 않고 희생이 되는 방법을 우리에게 주셨다. 무슨 방법인가? 곧 소를 데려와서 그 머리 위에 안수하는 것이다. 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머리이다. 또는 양 한 마리를 데리고 와서 그 위에 안수하는 것이다. 내 두 손을 소나 양의 머리 위에 안수한다는 것은 입을 열든 묵도를 하든 하나님 앞에서 그것이 나임을 시인하는 것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본래 내 자신이 제단 위에 올라가야 하고 불태워져야 하고 희생이 되어야 하며, 나는 마땅히 죽어야 하고 내 자신을 당신 앞에 향기로운 번제로 드려야 합니다.
 
주여, 이제 이 소 한 마리를 데려와 그것으로 나를 삼아 그 위에 안수합니다. 이제 내가 제사장에게 의탁하여 그것을 잡게 하는 것은 곧 나를 잡는 것입니다. 그 피를 흘리는 것은 곧 내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제단 위에 놓인 희생은 곧 나 자신입니다.”  여러분이 침례를 받을 때에도 이렇지 않았는가? 여러분이 물속에 들어갈 때 그것은 여러분이 “이것은 나의 무덤입니다. 여기에 묻으소서.”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은 물을 무덤으로 여기는 것이다. 여러분이 두 손을 소의 머리 위에 얹어 안수하는 것은 여러분이 이 소를 여러분 자신으로 여기는 것이다. 여러분이 이 소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곧 여러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이 소는 여러분 자신을 대표한다. 그러므로 안수는 연합을 뜻한다. 구약에서 언급한 안수는 주로 내가 그것과 연합했고 내가 곧 그것이며 그것이 곧 나임을 뜻한다.

오늘 내가 그와 같은 위치에 서 있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 앞에 이끌려지는 것은 곧 내가 하나님 앞에 이끌려지는 것이다. 구약의 안수는 또 하나의 뜻을 가지고 있다. 창세기에서 우리는 이삭이 그의 두 아들에게 안수하고 야곱이 그의 두 손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안수하는 것을 본다. 야곱이 그의 두 손자에게 안수할 때 그는 한 손씩 손자들의 머리에 두고 그들을 위하여 축복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축복을 그들 둘에게 전달해 주었다. 이것은 곧 야곱이 그들을 위해 축복을 구하므로 이 복이 그들에게 임하고 그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의 안수가 하나는 연합이고 또 하나는 전달임을 보아야 한다. 둘 다 교통이라고 말할 수 있다. 교통은 나를 상대와 합하게 하고, 교통은 내 능력을 상대에게로 흘러가게 한다.(50 필수 과정, 제 7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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