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을 성취하시는 그리스도
갈라디아서
2014-03-02 , 조회 (210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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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아브라함의 복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방인들에게 이르게 하고, 또 약속하신 그 영을 우리가 믿음을 통해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입니다.(갈 3:14)

In order that the blessing of Abraham might come to the Gentiles in Christ Jesus, that we might receive the promise of the Spirit through faith.(Gal. 3:14)

우리는 이미 중요한 세 인물, 즉 아담과 아브라함과 모세를 보았다. 이제 우리는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중요한 네 번째 인물, 즉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로 하자. 그리스도는 모세를 통해 주신 율법의 의로운 요구에 따라 이 약속을 완성하셨다. 이러한 방법으로 주님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을 저주로부터 건져내셨다. 약속하신 모든 것이 이루어졌으므로 약속은 언약이 되었을 뿐 아니라 성약, 즉 유언이 되었다. 율법의 요구는 만족되었고, 저주는 사라졌고, 약속은 이루어졌다. 이제 이 아브라함의 유일한 씨 안에서 분열되고 저주받은 모든 이방이 복을 받게 된다. 오늘날 좋은 땅이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누림을 위한 만유를 포함한 영이시다. 아담은 저주를 가져왔고, 아브라함은 약속을 가져왔고, 모세는 율법을 가져왔으며, 그리스도는 약속의 성취를 가져왔다.

이제 우리 믿는이들은 믿음의 권속으로서 신약을 누린다. 믿음의 권속들은 교회 사람들(church people)이다. 우리는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듣는 사람들이다. 믿음의 권속인 우리는 듣고 믿으며, 우리의 축복이신 삼일 하나님을 기업으로 얻고 그에 동참하고 그를 누린다. 듣고 믿음으로 우리는 믿음의 백성 즉 믿음의 권속이 된다. 더 많이 들을수록, 우리의 믿음은 더 강해지고, 축복을 누릴 수 있는 분량이 더 커진다. 성경에서 걸출(傑出)한 이름, 혹은 항목 여섯이 있다. 즉 아담과 아브라함과 모세와 그리스도와 교회와 새 예루살렘이다. 영원 전에 하나님의 목적은 율법과는 관계가 없었다. 하나님의 생각은 율법에 초점을 두지 않고, 아담과 아브라함과 그리스도와 교회와 하나님과 사람의 동역의 최종 완성인 새 예루살렘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오늘 우리는 교회 안에 있다.

또 우리는 영원 안에서 새 예루살렘 안에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그들 자신과 자신들의 상태를 합당하게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태를 드러내기 위하여 잠시 동안 율법을 사용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백성들을 보살피고 지키기 위한 후견인으로와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한 보호자와 몽학 선생으로 율법을 사용하셨다. 그러나 일단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기능을 성취했다면 율법이 더 이상 사용되지 말아야 한다. 모세는 율법을 받은 사람일뿐만 아니라 장막의 식양을 받고 자신의 주관 아래 장막을 세운 사람이기도 하다.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가 거의 이천 년이고 아브라함으로부터 그리스도까지가 거의 이천 년이라는 사실은 의미가 있다. 그뿐 아니라 주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나타나신 지 거의 이천 년이 되었다.

나는 교회시대가 또다시 천 년을 지나리라고는 믿을 수 없다. 교회시대 후에는 왕국시대가 올 것이고, 그것은 천 년 동안 계속될 것이다. 그 후에 우리는 영원 가운데 들어갈 것이다. 나는 창세기 1장의 일곱 날이 아담으로부터 천년 왕국 끝까지를 포함하는 칠천 년을 예표한다고는 감히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타락으로부터 약속을 주시기까지가 약 이천 년이고, 약속을 주신 후로부터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오신 때까지가 또 다른 이천 년이고, 그 완성 기간이 또 거의 이천 년 동안 계속되어 왔다는 사실은 매우 의미 심장한 것이다. 우리는 왕국시대를 갈망하지만, 단지 왕국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천년 왕국시대의 천 년은 하나님의 눈에는 단지 한 날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갈망은 영원토록 새 예루살렘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을 이루는 데 있어서, 율법은 다만 일시적인 위치를 차지할 뿐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과 맺어진 뒤 사백 삼십 년 후에 주어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말미암아 율법은 완성되었고 끝이 났다. 믿음은 율법과 관련이 없고 은혜와 관련된다.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반영한 것이다. 믿음은 마치 어떠한 장면을 촬영하는 사진기와 같은 기능을 한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고, 우리의 믿음은 사진을 찍는 사진기와 같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반영(反映)이 된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믿음은 온전히 이루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반영하는 것이다. 믿음은 율법과 아무 관계없다. 갈라디아 사람들은 또다시 율법에게 기회를 주고 율법을 사용함으로써 실수를 저질렀다. 율법은 더 이상 장면이 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믿음의 사진기는 전적으로 은혜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율법을 지키는 대신, 우리는 은혜라는 장면을 사진에 담기 위하여 우리의 믿음을 사용해야 한다. 이제 믿음 안에서 우리는 우리의 누림을 위하여 만유를 포함한 생명 주는 영이 되기 위해 과정을 거치신 삼일 하나님이신 은혜를 누린다. 얼마나 놀라운가! 저주는 사라졌고, 율법은 치워졌다. 지금 우리는 모든 믿는이들의 축복인 하나님의 약속의 유일한 완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온전히 누리는 믿음의 아브라함들이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보고 이해한다면, 약속이 율법과 대조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제 율법에는 더 이상 어떤 근거도, 위치도 여지가 없다. 율법은 치워져 버렸다. 우리의 믿음의 사진기가 은혜의 장면을 담게 됨을 인하여 주님을 찬양하자! (갈 LS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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