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성령의 더 깊은 역사 (2)
영에 속한 사람
2014-03-03 , 조회 (1035)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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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이제 내가 육체 안에 사는 생명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 안에서 사는 생명입니다. (갈 2:20)

 
I am crucified with Christ; and it is no longer I who live, but it is Christ who lives in me; and the life which I now live in the fresh I Live in Faith, the faith of the Son of God, who loved me and gave Himself up for me.(Gal. 2:20)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그리스도의 할례 안에서 육신의 몸을 벗는 것이라』(골 2:11). 우리는 십자가의 능력이 할례의 칼처럼 우리의 모든 육에 속한 것을 온전히 잘라내기를 기꺼이 원해야 한다. 이 「잘라냄」은 모든 육에 속한 것들이 숨겨져 있지 못하고 남아 있지 않도록 깊고 분명하게 쪼개는 것을 필요로 한다. 십자가와 저주는 나눌 수 없다(갈 3:13). 만일 우리가 우리 육체를 십자가에 넘긴다면, 이것은 바로 육체를 저주에 넘기고,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없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것 외에 다른 결과가 없다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에게 이러한 마음이 없다면 어떤 육신의 할례도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육체적인 감정과 정욕과 사상과 지식과 뜻과 경배 그리고 육체적인 일들은 모두 십자가로 가야 한다. 주님과 함께 못 박혔다는 것은 주님이 받으신 저주를 받았다는 뜻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 달리신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 아니다(히 12:2). 그분이 나무에 달리셨다는 말은 거기서 그분이 저주를 받았다는 뜻이다(신 21:23). 그러므로 우리 육체가 주님과 함께 못 박혔다는 것은 주와 함께 저주를 받았다는 뜻이다. 우리는 십자가의 공로를 받아들여야 할 뿐 아니라 또한 십자가와의 교통을 가져야 한다. 믿는이는 마땅히 자기 육체가 죽음의 저주를 당하는 것 외에 다른 자격이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의 관념대로 육체의 가치를 볼 때만이 믿는이는 십자가와 실제적인 교통을 가질 수 있다. 믿는이가 성령의 다스림을 온전히 받기 전에 그의 육체가 온전히 십자가에 넘기워져야 한다. 우리가 육체의 진상을 이해하고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있도록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형제들이여, 우리는 너무나 겸손하지 못하다! 우리는 너무나 주님의 십자가를 꺼려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의지할 데 없는 자요 아무 쓸모가 없는 자요 부패하고 더러운 자로서 죽는 것 외에 다른 분깃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형제들이여,현재 우리에게 결핍되어 있는 것은 선한 생활이 아니라 아름다운 죽음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죽음이고 철저히 죽고 깨끗이 죽는 것이다. 생명과 능력과 성결과 공의에 대하여 우리는 너무나 많이 말해왔다. 이제는 죽음을 주의하자! 십자가가 우리의 생명에서 실제적인 체험이 될 수 있도록 성령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우리 육을 더 깊이 찔러 쪼개시기를 원한다! 만일 우리가 합당하게 죽었다면 합당하게 살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분의 죽음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될 것이다. 주님께서 우리 눈을 열으사 우리가 죽어야 하는 것의 중요성을 알게 하시기 바란다. 그분은 이미 준비되셨다. 당신은 주님이 이렇게 역사하시도록 준비되었는가?

당신은 주님이 당신의 약점을 지적하시기를 원하는가? 당신은 공개적으로 모든 사람 앞에서 성 밖에서 못 박히기를 원하는가? 당신은 십자가의 영이 당신 안에서 역사하기를 원하는가? 아, 우리가 주님의 죽음을 더 많이 얻기를! 우리가 철저히 죽을 수 있기를! 우리는 십자가의 죽음이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아야 한다. 우리가 죽음의 단계를 버리고서는 결코 부활의 단계로 들어갈 수 없다. 부활 생명을 얼마나 체험하는가는 당신이 얼마나 죽음을 체험하는가에 달렸다. 최근에 승천의 생명을 추구하는 믿는이들 중에 육체의 죽음이 제쳐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죽음의 위치를 저버린채 전진한다는 위험에 떨어지는 사람들이 있다. 결국은 육체의 행위를 경시하고 육에 속한 것을 영에 속한 것으로 여기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것은 바로 육체를 영에 속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오, 죽음은 모든 것의 기초이다.

사람은 진보할 수 있어도 이 기초를 잃어버릴 수는 없다. 만일 육체가 죽어야 한다는 이 사실을 견고히 붙잡지 않는다면 부활하고 승천한 생명도 헛된 것에 지나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육체가 더이상 우리를 미혹할 권리가 없을 정도로 신령하고 진보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대적은 우리로 십자가의 경계를 떨쳐 버리고 외형적인 신령함에 빠지게 한다. 그리고 육에 속한 사람의 많은 말, 즉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 나는 어떠어떠합니다. 더이상 과거와 같이 행하지 않습니다.』라는 말들은 누가복음 18장 11, 12절의 기도 소리와 같다. 이들은 육체를 벗었다고 생각할 때에 육체에 의해 속임을 당하게 된다. 우리는 늘 주님의 죽으심 안에 거해야 한다. 우리의 안전은 성령 안에 있다. 안전한 길은 온전히 가르침받기를 원하고, 조금이라도 육체를 좇아 행하는 것을 십분 두려워하며, 그리스도께 항복하기를 기뻐하며,

성령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의 생명을 우리에게 적용시키게 하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생명을 다스리고 살아 나타나게 하는 이것이다. 본래 우리가 육체로 충만된 것 같이 성령이 우리에게 충만되시도록 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새 생명이 되고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도록 성령이 우리를 다스리고 온전히 육체의 세력을 정복하시게 해야 한다.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이제 육체 안에 사는 것은 더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거하시는 그리스도』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 생명은 여전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갈 2:20)에 근거한다. 만일 우리가 믿음과 순종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우리는 성령이 우리 안에서 가장 거룩하고 놀라운 역사를 하시기를 바랄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이것이 우리가 응당 가져야 할 믿음으로서, 우리는 성령이 우리 안에 내주하신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성령으로 행하라』(갈 5:25)―이것은 우리에게 있어야 할 순종이다. 우리는 주님이 그분의 영을 우리 안에 분배하셨다는 것을 단순히 믿고 안식하면서 믿어야 한다. 그분의 은사를 믿고 성령이 우리 안에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우리 속 가장 은밀한 영 안에 성령이 내주하신다는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비결이다.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성령이 당신 안에 내주하신다는 이 진리의 영광과 진실성으로 인해 거룩한 경외와 놀라는 마음을 발할 때까지 이것을 묵상하고 믿으며 기억하라! 그리고는 그분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라. 인도하심은 생각이나 우리의 사상 속에 있지 않고 생명과 의지함에 달렸다. 성령이 모든 행위를 지배하시도록 하나님께 복종해야만 한다. 그럴 때 성령은 주 예수님으로 우리의 생명 안에서 나타나시게 하신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이다.(영에 속한 사람 2부,  제 5장) 

신령함 할례,진보 저주,경시 경계, 신령함,경외,진실성 묵상,지배 복종,갈라디아서 2장 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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