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 ?
아가
2014-04-02 , 조회 (120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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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천사는 나에게 수정처럼 빛나는 생명수의 강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 강은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에서 흘러나와 그 성의 길 가운데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강의 이쪽과 저쪽에 생명나무가 있어서 열두 번 열매를 맺는데, 달마다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 나무의 잎들은  민족들을 치료하기 위해 있었습니다.(계 22:1-2)  
 
And he showed me a river of water of life, bright as crystal, proceeding out of the throne of  God and of the Lamb in the middle of its street. And on this side and on that side of the river was the tree of life, producing twelve fruits,yielding its fruit each month; and the leaves of the tree are for the healing  of the nations.(Rev. 22:1-2) 
 

위의 구절들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생명과 건축을 볼 수 있다. 우리 중에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된 지 수년이 되었고 생명에 대하여 들어 보았지만 건축에 대한 것은 결코 들어 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생명은 건축을 위한 것이다. 생명은 내용이요, 건축은 이 내용의 단체적인 표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생명을 가지고 있다면, 정상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건축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건축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생명을 소유해야 한다. 하나님은 한 단체의 사람을 통하여 그분 자신을 표현하기를 목적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분 자신을 단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건축될 한 무리의 사람들에게 생명이 되셔야 한다. 생명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며, 건축은 단순히 한 단체적인 몸 안에서의 생명이신 하나님의 표현이다. 생명과 건축은 성경의 기본적이고 중심적인 계시이다.

창세기 2장은 하나님이 창조를 완성하신 후, 특히 사람을 창조하신 후 생명나무가 중심 항목으로 있는 한 동산 안에 사람을 두셨다는 것을 보여 준다. 여기서 우리는 ‘생명’이란 단어에 주의해야 한다. 생명을 정의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처럼 생명나무도 역시 정의하기가 어렵다. 여러분은 복숭아나무가 무엇인지, 사과나무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그러나 여러분은 생명나무가 무엇인지 아는가? 성경의 다른 책으로부터 우리는 이 생명나무가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삼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나무이시다. 그런 다음 우리는 이 생명의 흐름에서 나오는 보배로운 어떤 것들을 볼 수 있다. 생명나무 옆에는 흐르는 강이 있고, 강의 흐름에서 금과 베델리엄(진주의 일종)과 호마노가 나온다(창 2:9-12). 생명은 생명의 흐름을 산출하고, 생명의 흐름으로부터 이들 세 가지의 보배로운 재료들이 나온다.

그것들은 금과 진주와 보석이다. 이것들이 무엇을 위하는가를 알기 위해 우리는 금과 진주와 보석으로 건축된 한 성이 있는 성경의 마지막을 읽어 보아야 한다(계 21:2, 18-19상, 21, 22:1-2상). 그러므로 이 세 가지 보배로운 재료들은 건축을 가리킨다.  그처럼 우리는 성경이 건축을 위한 생명으로 시작됨을 볼 수 있다. 생명은 근원이요, 건축은 생명의 결과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생명의 책이라는 것을 알지만 합당하고 충분하게 생명을 인식하는 자들은 많지 않다. 우리는 생명에 관하여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잘못된 관점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그러나 창세기와 계시록에서의 이 구절들로부터 우리는 생명이 건축을 위한 것이고 건축은 생명으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분명히 볼 수 있다.  생명은 지식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 대신에 지식은 생명과 대립된다.

창세기 2장 9절에 두 나무가 있는데 하나는 생명나무요 다른 하나는 선과 악의 지식나무이다. 이 그림에 따라 우리는 지식은 생명과 반대되며 심지어 생명과 대립됨을 이해할 수 있다. 내가 왜 이것을 언급해야 하는가? 그것은 어떤 종류의 종교 안에서든, 특히 기독교 안에서 사람들이 항상 지식에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기독교 안에서 구원받은 후, 우리는 지식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들어왔다. 그러나 성경은, 지식이 생명과 반대될 뿐 아니라 생명과 대립됨을 보여 준다. 생명이 무엇인지 알려 하고 생명의 체험을 깨닫기 원한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생명과 지식의 차이에 대해 매우 분명해져야 한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우유 한 잔을 마신다면 여러분은 생명을 얻을 것이다. 만일 그것을 마시지 않는다면, 우유에 대해 아무리 많이 알고 있을지라도 단지 지식뿐일 것이다.

우유에 대해 아는 것은 다만 지식이지만, 우유를 여러분 안으로 취하는 것은 영양분이고 생명이다. 생명은 지식이 아니며 지식은 결코 생명을 대치할 수 없다. 그 대신 지식은 생명과 상반된다.  만일 우리가 생명에 주의한다면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지식을 주의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지식을 관심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오직 우리에게 양분이 되는 어떤 것을 우리 안으로 취하는 것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식은 우리에게 생명 대신 죽음을 가져다줄 것이다. 더욱이 지식은 죽음뿐 아니라 분열까지 야기시킬 것이다. 만일 우리 가운데 지식이 주된 강조점이라면, 잠시 후에 우리가 여러 종파들로 분열될까 두렵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식의 왕관을 벗어버리고 그것을 우리의 발 밑에 두어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를 소유하게 될 것이다. 지식은 나누지만 생명은 하나 되게 한다. (아가서 강해. 제 1장)

요한계시록 22장 1-2절,수정 민족,치료 열매,반대 대립,분열 종교,우유,지식 건축, 베델리엄 호마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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