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들 처리의 근거
생명의 체험
2014-04-05 , 조회 (1137)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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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그대가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형제가 그대에 대하여 거리낌이 있다는 것이 기억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십시오. (마 5:23-24) 

Therefore if you are offering your gift at the altar and there you remember that your brother has something against you,  Leave your gift there before the altar,  and first go and be reconciled to your brother, and then come and offer your gift.(Matt. 5:23-24)

우리가 죄들을 처리하는 대상은 우리가 범한 온갖 죄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수행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단번에 온갖 죄들을 처리하도록 하지 않으시고 그분과 교통하는 중에 의식하는 모든 죄들을 처리하도록 하신다. 이것은 우리가 실제로 범한 모든 죄들을 처리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통하는 동안에 의식되는 것들만을 처리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죄들을 처리하는 근거는,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동안에 갖게 되는 의식(意識)이다. 이에 대해서 마태복음 5장 23절과 요한일서 1장 7절을 읽어 보자. 마태복음 5장 23절에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 가서 즉시 그것을 처리하라고 말씀하신다. 제물을 드리는 일은 하나님과의 교통을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우리가 하나님과 교통을 하다가, 우리 자신과 타인간에 어떠한 불화가 있었음을 의식하거나 그 반대의 사실을 의식할 때 하나님과의 교통이 영향을 받아 막히지 않도록 즉시 이러한 상황을 바로잡기를 힘써야 한다는 말이다. 요한일서 1장 7절에서도,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교통이 있을 때 하나님의 빛 안에서 죄들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때에 하나님의 빛 안에서 본 것을 따라 하나님께 자백하고 하나님의 죄 사함과 깨끗게 하심을 얻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그러한 것을 처리해야 함을 보여 준다. 마태복음 5장에서는 타인과의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며, 요한일서 1장에서는 하나님과의 문제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하나는 제단 곁에서 기억하는 것이요, 또 하나는 빛 가운데서 보는 것이다. 둘 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중에 의식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람과 하나님에 대하여 처리하는 것은 이러한 의식에 근거를 둔 것이다.

그러므로 죄들을 처리하는 근거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중에 갖게 되는 의식이다. 죄들을 처리하는 것은 하나님과 교통하는 중에 갖게 되는 의식에 근거를 두고 있을 뿐이지, 우리가 범한 온갖 범죄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근거의 범위는 대상의 범위보다 훨씬 더 작다. 예를 들어, 우리가 실제로 백 가지 죄들을 지었으나,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중에 단지 열 가지 죄들만 기억한다면, 우리가 의식하는 그 열 가지 죄들을 처리해야 한다. 우리가 단지 십 퍼센트만 깨닫고 있다면 십 퍼센트를 처리하고, 이십 퍼센트를 알고 있다면 이십 퍼센트를 처리하는 것이다. 바꿔 말해서 우리가 기억하는 만큼의 죄들만을 처리하는 것이다. 우리가 인식하는 만큼의 죄들이 우리가 처리해야 하는 죄들이다. 이것이 마태복음 5장에서 언급된 ‘생각나는’ 원칙이며, 이것이 죄들을 처리하는 우리의 원칙이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죄들은 당분간 처리하지 않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중에 진정 깨닫게 되는 그때까지 미뤄 놓아도 된다.

실제적으로 말해서, 죄들을 처리하는 일은 율법의 명령이 아니라 교통에 필요한 조건이다. 왜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그 죄들을 당분간 처리하지 않고 남겨 놓아도 되는가?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의식하지 못하는 죄들은 하나님과의 교통을 방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불의한 행동을 저질렀을 때, 타인은 그가 잘못한 것을 아는데 그 자신은 깨닫지 못할 수 있다. 그 사람의 양심은 여전히 아무렇지도 않다. 이러므로 여전히 기도하며 주님과 교통하고 하나님을 섬기며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위해 간증할 수도 있다. 그의 영적인 생활과 봉사는 여전히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이러한 죄를 의식하고도 처리하지 않은 채 내버려둔다면, 죄책감을 느끼고 주님과의 교통도 막히게 되며, 영적인 생활과 봉사도 비정상적이 될 것이다. 마태복음 5장에 따르면, 사람이 처리해야 할 것을 생각하고도 처리하기를 거부한다면, 하나님과의 교통이 즉시로 끊어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그것을 완전히 깨끗해지도록 재빨리 처리해야만 하나님과 교통을 할 수 있게 된다. 요한일서 1장 7절에서도 같은 사실을 말하고 있다. 사람이 교통의 빛 속에 있을 때 자기의 죄를 깨닫고도 그것을 처리하지 않는다면, 그의 교통은 즉시로 막히게 된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범한 죄들을 의식하지 못한다면, 그것들을 처리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 죄들을 의식한다면, 신속하게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양심이 우리를 송사할 것이고, 믿음도 파선하게 되며, 그로 인해 영적인 것들이 새어 나가버릴 것이다(딤전 1:19).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을 도와 죄들을 처리하게 할 때 그들이 의식하지 않는 죄들을 처리하라고 하지 말고, 그들이 의식하는 죄들을 처리하라고 해야 한다. 사람이 자기의 죄를 깨닫고서 그것을 처리하기를 무시하거나 거절할 경우에 우리는 그를 도와 그것을 처리하도록 인도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죄들을 처리한 체험을 보아도 사실은 동일하다. 우리는 우리가 처리하지 않은 범죄가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의식하는 죄들 중 처리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죄들은 당분간 처리하지 않고 내버려두어도 좋으나, 의식하는 죄들은 신속히 처리해야 한다. 지금까지 하나님과 교통하는 중에 가진 느낌에 대하여 절대적으로 순종하지 않는 형제자매들이 많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백 가지의 불의한 행동을 저지르고 하나님과 교통하는 중에 그중 스무 가지를 깨닫는데, 실제로는 다섯 가지만 처리한다. 그러므로 주님과 교통하는 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의 영은 강하지 못하며, 그의 기도는 해방되지 않는다. 주님 앞에서 그의 상태는 크게 손해를 보고 있다. (생명의 체험, 제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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