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
요한복음
2014-04-09 , 조회 (2188) , 추천 (0) , 스크랩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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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영이시니, 경배하는 사람들은 영 안에서 진실함으로 경배해야 합니다.(요 4:24).   
God is Spirit, and those who worship Him must worship in spirit and truthfulness.(John 4:24)

주님의 또 다른 면은 그분이 인자라는 것이다. 한면으로 그분은 위대한 「나는 … 이다」이시고 다른 면으로 그분은 인자이시다(8:28). 유대인들은 인자를 매달았지만 위대한 자존자를 매달 수는 없었다. 이것이 매우 이상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28절에 따르면 그들은 인자를 든 후에 주님이 여호와 즉 위대한 「나는 … 이다」이심을 알게 될 것이다. 그분은 옛 뱀을 쫓아내기 위한 목적으로 뱀의 독에 오염된 죄인들을 위해 뱀의 모양으로 십자가에 들리셨다(요 3:14, 12:31-34, 계 12:9, 20:2). 그분은 뱀의 본성과 뱀 자체를 처리하기 위해 들리셨다. 어떻게 주님은 죄 없는 분이 될 수 있었는가? 왜냐하면 그분은 여호와 즉 위대한 자존자이시기 때문이다. 어떻게 주님은 죄를 정죄할 수 있었는가? 이것 또한 그분이 위대한 자존자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떻게 여호와이신 그분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는가?

여호와는 결코 죄를 용서할 수 없었음을 당신은 기억해야 한다. 만일 여호와께서 죄를 용서하셨다면 그분은 단순히 그분 자신을 불의하게 만드셨을 것이다. 그분이 죄를 용서하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며, 그 길은 인자가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분은 오직 구속에 의해서만 죄를 용서하실 수 있었다. 구속이 없이는 하나님 자신도 죄를 용서하실 수 없었을 것이다. 구속이 없이는 죄를 용서하실 근거가 없었을 것이다. 그분은 인자로서 십자가에 들리셨으며 우리의 죄들을 담당하셨고 우리의 모든 죄들로부터 우리를 구속하셨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죄들을 용서할 위치가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전체는 또한 주님이 말씀과 영임을 계시한다. 요한복음 전체에 이런 사상이 있다. 일단 당신이 이 복음서에 있는 주님의 놀라운 인격을 보면 당신은 『그분이 어디 계시며, 나는 어떻게 그분을 접촉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을 것이다.

주님은 말씀이며 그 영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말씀 안에 계시고 영 안에 계심을 인해 주님을 찬양하라. 지금 당신은 말씀과 영 둘 다를 소유하고 있다. 만일 당신이 그 영을 접촉하고 말씀을 영접하면 그때 당신은 주님 자신을 소유한다. 당신은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머무름으로써 모든 것을 소유한다(8:31). 당신 자신이 주님의 말씀을 접촉한다는 것은 당신이 주님 자신 안에 거하고 있음을 뜻한다. 말씀을 접촉함으로써 당신은 영원하고 항상 있는 생명의 근원을 접촉한다. 당신은 항상 주님 자신을 접촉하고 있기 때문에, 따라서 당신은 결코 사망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8:51). 이것은 역사에 의해서 증명되었다. 어떤 성도들은 죽음이 임박할 때 심지어 그들이 죽어 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죽음을 맛보지 않았다. 예를 들어서, 무디(D. L. Moody)는 죽어갈 때 용감히 죽었다.

 그는 주님 안에 거하고 있었으며 생명의 근원을 접촉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죽었다. 이와 같이 만일 우리가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하고 머문다면 우리는 또한 생명의 근원을 항상 접촉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결코 죽음을 맛보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죽음을 통과할 것이다. 요한복음은 생명의 책이다. 이 복음서에서 여러 번 사람들은 예, 아니요라는 대답을 얻기 위해 주님께 질문을 했다. 그러나 주님은 결코 예, 아니요라고 대답하지 않으셨다. 예를 들어, 4장에서 사마리아 여자는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경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경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4:20)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그녀는 주님께 어느 곳이 경배할 올바른 장소인지를 묻고 있었다. 주 예수님은 어느 곳이 올바른 장소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하나님은 영이시며 우리는 그분을 영 안에서 경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4:24). 이는 이곳인가 저곳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나무이신 하나님을 접촉할 수 있는 영 안에 있는가의 문제이다. 주 예수께서는 그녀에게 예, 아니요라고 대답하지 않으셨고 생명나무이신 하나님을 접촉하도록 그녀를 사람의 영으로 돌이키게 했다. 바리새인들이 죄 지은 여자를 데려와서 주님께 돌로 치느냐 마느냐를 물었던 8장에서도 원칙은 같다. 역시 주님은 예 또는 아니요라고 대답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8:7)고 말씀하셨다. 주님의 대답은 그들을 생명나무이신 주님께로 돌이키게 했다. 

그후 9장에 올 때 우리는 제자들이 날 때부터 소경 된 자에 관하여 그가 소경 된 것이 자기 죄로 인함인가 또는 부모의 죄로 인함인가를 주님께 질문한 것을 볼 것이다. 주님은 그들에게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9:3)고 대답하셨다. 다시 한번 주님은 그들이 생명나무이신 하나님께 향하도록 대답하셨다. 요한복음은 생명의 책이며 이 책은 결코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에 따라 대답을 주지 않고 항상 사람들을 생명나무로 돌이킨다. 여기에는 옳고 그름이나 좋고 나쁨이나 예나 아니요라는 대답이 없다. 여기에는 오직 한 가지-생명-밖에 없다. 당신이 틀릴 필요가 없는 것 같이 당신은 옳을 필요가 없다. 당신은 오직 생명만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당신에게 생명이 있을 때 모든 것이 좋다. (요 LS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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